소중한 내 친구. 이불과 베개

내가 외로움을 모르는 건 너 때문이야

by 금달

문득, 나의 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5평 남짓한 작은 원룸으로 이곳에서 머문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은 새롭게 이사갈 집을 (매우 고통스럽게) 알아보러 다니고 있는데, 내 첫 자취를 함께한 애정 가득한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 이름처럼 나는 혼자 살지만 외로울 틈이 없는 사람이다. 일단 집에서 매우 매우 바쁘다. 연재를 막 시작한 브런치북 <물욕 많은 집순이의 취미 이야기> 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집에서 혼자 사부작거리는 취미를 백만개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한.. 열개 정도 되는 것 같지만, 느낌은 백만개다. 일단 취미에 쓴 돈이 각 취미마다 백만원은 가뿐히 넘겼을 듯?) 가지고 있다보니 더 외로울 틈이 없는 것 같다.


여기까지 보면 '되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구나!' 싶을 수 있는데, 하고 싶은게 많아서 그렇지 천성은 게을러빠진 사람이라 일정이 없으면 하루 종일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 허다하다. 정말.. 정말 안 나간다. 나는 엄마가 잘못(?) 습관을 들여서 아침을 꼭 먹어야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일정이 하나도 없는 날은 첫 끼를 저녁 7시가 지나서 먹기도 한다. 대충 그 하루를 안 산거라고 보면 된다. 이불 속에 누워 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참다가 으아악 하면서 달려가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도 하고.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그만큼 이불 속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보통 이불과 베개를 합쳐서 '침대' 라고 통칭하지 않는가? 내가 굳이 굳이 이불과 베개라고 나눠서 말하는 이유는 별 거 없고, 우리 집에는 침대가 없기 때문이다. 침대가 아니라서 침대라고 못하는 것일 뿐! 이런 디테일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라 없는 침대를 침대라고 할 수가 없었다.

왼쪽의 그림은, 내가 열심히 그려온 우리 집 도면이다. 이름이 안 써져있는 친구들은 나중에 등장할 때가 되면 하나씩 이름을 붙여올 예정. 도면을 보면 알겠지만.. 침대 자리가 없다. 내 집에서 이부자리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은 딱 저 이불 자리밖에 없는데 그 아래에는 옷장이 있으니! 만약 저 곳에 침대를 둔다면 옷장 서랍을 못 쓴다.


그렇게 나는 고심 끝에 구매한 10cm 두께의 토퍼와 동거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꽤 유명한 브랜드의 메모리폼 토퍼인데 이것을 사용하며 스스로 체득한 새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허리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말랑푹신한 메모리폼이 쥐약이라는 것! 난.. 난 정말 몰랐다. 허리도 좋지 않은 주제에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자세 불량과 운동 부족의 합작이랄까?) 메모리폼이 스프링보다 더 좋겠지! 하고 별 생각 없이 구매한 대가였다.


내 몸에 약간의(?) 고통을 주긴 하지만, 이불 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자 나의 주 생활공간이 되어준다. 잠도 자고 누워서 핸드폰도 하고, 가끔 짝꿍이 놀러와서 함께 밥 먹을 때면 이불과 싱크대 사이 공간에 좌식테이블을 놓고 짝꿍은 싱크대 앞쪽에, 나는 이불 위에 앉는다. (정확히는 토퍼 위에 앉는다! 이불은 구석에 치워둔다.) 집에 책상이 없는 나는 종종 좌식테이블을 토퍼 위로 들고 올라가서 노트북도 하고 일기도 쓴다. 의외로 내가 온갖 취미생활을 즐길수록 그 쓰임이 더 다양해지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노란색 이불 하나로 사계절을 보내왔다. 원래 쓰임은 봄가을용이지만, 작은 원룸이라 그런지 겨울엔 (보일러를 키면) 금방 따뜻해지고 여름엔 (에어컨을 키면) 금방 시원해진다. 심지어 방이 작아서 관리비도 적게 나오는 편이다!


원래 여름 이불은 따로 사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그렇게 여름들이 지나가버렸다. 이제 살까? 살까? 하면 가을이 눈 앞에서 손 흔들고 있더라. 처음엔 아껴주려고 했는데, 정말 마르고 닳도록 사용해서인지 이제는 쿨하게 보내줄 수 있을것 같다.


사람에 따라 침구를 대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지 몇 해 지나지 않았다. 나한테 침대는 생활공간으로 인식되었기에 오히려 함부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쓸모는 없지만 재미는 있는 대화를 나누며, '샤워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기 전에는 침대 위에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당시에는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이 꽤나 다수였고 한 번 자각하고 보니 괜히 신경쓰이기 시작하더라.


자취를 시작하면서도 침구를 소중히 대해주리라는 각오와 함께 시작했지만 작고 귀여운 내 방 안에서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침구를 아껴주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조금 어색한 사이에 서로 격식을 차리고, 친해지면 보다 날것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나와 우리 집 이불은 너무 친해서! 그래, 절친이라서 보다 날것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노라는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덧붙여본다.


그리고 현재, 나는 그 절친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이사를 가면 퀸사이즈 침대를 놓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안타깝게도 슈퍼싱글인 나의 절친은 함께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내가 한없이 게을러질 때도, 느닷없이 바쁘게 움직일 때도 그냥 그렇게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런 친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실컷 절친에 대해 썼지만 사실 새로 만나게 될 친구와는 조금 어색한 사이로 지내 볼 계획이라 지금의 절친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우리가 함께 할 남은 시간동안 절친으로서의 몫을 성실히 수행해주기를 바라며, 다음 이야기는 (집주인이 잠시 빌려준) 내 하나뿐인 옷장 이야기를 해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