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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소'는 대체 무슨 뜻일까?

'맥주'의 '맥'은 알겠는데 '소주'의 '소'는 대체 어떤 의미인가.

by 장호기

우리가 예부터 입에 담아온 술의 이름들은 대부분 어렵지 않다. 막걸러낸 술은 그저 '막걸리', 술에 밥알이 뜨는 술은 밥알이 동동 뜬다 하여 '동동주'라 부르고, 복분자로 담근 술은 논란의 여지없이 '복분자주' 그리고 '맥주' 역시 주 재료인 보리(보리 맥麥)를 앞세운다.


이처럼 술의 이름은 들판에 흐드러지는 소박한 풀과 들꽃의 이름처럼 입에 담아보기만 해도 그 향과 생김새가 느껴지고,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소주의 소(?)는 무슨 뜻인가?'


대한민국의 소주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 중에 하나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인데 '소주를 왜 소주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대체 소주의 소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선 소주의 정확한 정의부터 찾아봤다.


소주

[명사] 1. 곡주나 고구마주 따위를 끓여서 얻는 증류식 술. 무색투명하고 알코올 성분이 많다.


'맥주'의 '맥'과는 달리 '소주'의 '소'는 주 재료(곡식, 고구마 등)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어느 집 담벼락에나 피어나는 개나리처럼 소박(素朴)하다 하여 '본디 소(素)'를 쓰거나 작은 잔에 따르는 술이라 하여 단순히 '작을 소(小)'를 쓰지 않을까? 하지만 모두 아니었다.


소주잔 한 잔은 약 50ml, 소주 한 병은 약 7.5잔



燒 : 불사를 소

1. 불사르다(불에 태워 없애다), 불태우다 2. 타다 3. 익히다 4. 안달하다(속을 태우며 조급하게 굴다), 애태우다 5. (붉게)물들다


의외로 소주는 '燒(불사를 소)酒(술 주)'였다. 새삼 소주가 '불사르는 술' 혹은 '불태우는 술'이라고 하니 그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문득 '불금'이라는 단어가 연상되기도...? 그렇다면 대체 소주는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이유는 소주가 불을 때서 끓여 만드는, 즉 증류법을 활용한 증류식 술이기 때문이다.


어떤 용질(용액에서 녹아들어 가는 물질)이 녹아 있는 용액을 가열하여 얻고자 하는 액체의 끓는점에 도달하면 기체 상태의 물질이 생긴다. 여기서 이 기체를 냉각시키면 다시 순수한 액체상태가 되는데 이와 같은 과정을 '증류'라고 한다. 이때 이 순수한 액체만 따로 모으면 용액 속의 서로 다른 용질들을 분류해낼 수 있는 것이다.


증류식 술은 말 그대로 증류를 활용해 얻은 술을 의미한다. 즉, 물과 알코올의 끓는점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알코올의 끓는점은 78℃, 물의 끓는점은 100℃ 다. 그리고 증기 상태의 알코올은 차가운 면에 닿으면 쉽게 응결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물과 알코올 등의 혼합물에 열을 가하면 먼저 알코올이 기화되고, 이렇게 분리된 기체 상태의 알코올이 차가운 면에 닿으면 훨씬 더 순수한 상태의 알코올 액체로 맺히게 된다.



증류법을 활용하는 '소줏고리'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증류식 술은 곡물이나 과일 등을 발효해서 만든 발효주를 증류하여 보다 순수한 형태로 얻어낸 술이다. 이러한 과정은 여러 번 반복할수록 보다 순수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나 증류에 사용되는 도구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처럼 증류를 활용한 양조기법은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술의 역사를 만들어주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이 비법(?)은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사실 중세기 페르시아와 아랍에서부터 시작됐다. 금을 얻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던 연금술사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페르시아와 아랍의 연금술사들에 의해 발명된 이 증류 기법은 처음에는 향수나 약품 등을 얻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8~9 세기에 이르러서는 발효된 술에서 순수한 알코올을 추출하기 위한 방식으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The alchemist] David Teniers the Younger 1650


이렇게 완성된 증류법은 12세기 십자군 원정을 통해 유럽과 중앙아시아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증류하여 '브랜디'를 만들었고, 남동부 유럽에서는 자두를 발효해서 만든 술을 다시 증류해 '라키아'라는 술을 만들었다. 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일대에서는 맥주를 증류해 '위스키'를 만들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술의 이름들도 잠깐 짚어봐야겠다. 먼저 '브랜디'라는 이름은 네덜란드어로 '브란데베인(brandewijn)'에서 왔다. 놀랍게도 이 단어는 '태운' 포도주(burnt wine)를 의미한다. 또 라키아(Rakia)는 아랍어로 '땀'을 뜻한다. 차가운 면에 닿아 땀처럼 송글송글 맺힌 알코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결국 브랜디와 라키아 역시 소주처럼 이름에 증류법이 녹아있었다.


술의 증류법은 아라비아에서 원나라 그리고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아랑주', 개성에서는 '아라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추측할 수 있다.


사실 예부터 소주를 이르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슬 로(露)자를 써서 노주(露酒) 그리고 땀 한(汗) 자를 쓰는 한주(汗酒), 직접 불 화(火) 자를 쓰는 화주(火酒) 등이다. 소주가 증류주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슬과 땀처럼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는 술이라는 뜻인 노주와 한주라는 이름도 꽤나 그럴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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