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가 멕시코를 만났을 때
* 영화 <코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잊혀지다' 라는 표현은 비표준어(표준어 : 잊히다) 입니다. 하지만 대중화된 표현의 느낌상 '잊혀지다'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잊혀진다는 것 그리고 잊는다는 것은 그 어떤 존재에게나 막막한 두려움이며 가장 큰 공포이기도 하다. 그것은 때로 자유와 치유의 기회를 주지만, 끊임없이 허무의 바닥으로 존재를 끌어당기는 중력과도 같아서 대부분의 존재는 매 순간 이 먹먹한 ‘허무’와 뜨거운 투쟁을 치르며 살아가야 한다.
픽사의 <코코>는 바로 이 '잊혀짐'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코코>는 '소년(미구엘)이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서는'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매우 직접적으로 어른들의 '잊혀짐'에 대해 그리고 '존재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는다.
분명, 아무리 픽사라고 해도 이런 무거운 소재를 아름답게 표현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재를 감히(?)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선보이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코>는 '죽음'마저도 픽사다운 해석과 묘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픽사가 <코코>의 배경으로 멕시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죽음’에 대해 가장 긍정적이고 친숙한 시선을 가진 나라다. 특히 멕시코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1년에 한 번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멕시코에는 '죽은 자들의 날(Día de los Muertos)'이라는 명절이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은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공원이나 건물 그리고 가정에 제단을 만들고 죽은 자들을 기리는 매우 중요한 날로, 2008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될 만큼 멕시코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매우 큰 행사다. <코코>의 스토리 구조상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 이날은 '죽음'을 영원한 단절과 슬픔의 개념으로 인식시키지 않고 '소통이 가능한 내세의 연장선' 혹은 '왕래가 가능한 또 다른 세계'로 묘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멕시코는 어느 문화권에도 뒤지지 않는 ‘흥’이 가득한 나라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다양한 색상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애니메이션으로 시각화하기에는 멕시코만 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실제 픽사는 멕시코 시티와 과나후아토 등 멕시코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사후세계의 배경 모티브로 삼았고, 다채로운 색상과 아기자기한 건물의 이미지들을 극대화하여 사후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아름답고 밝게 묘사해냈다. 그래서인지 <코코>는 오래된 멕시코 여행 사진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바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인 프리다 칼로가 특급 카메오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 프리다 칼로 : 멕시코의 대표 화가이자 민중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 어려서 겪은 대형 교통사고와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평생 동안 고통받았으며, 이러한 고통을 승화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1970년대에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만약 프리다 칼로가 <코코>를 볼 수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픽사는 거의 맞닿을듯한 짙은 양 눈썹과 생전에 반려동물로 키웠던 원숭이 그리고 그녀의 작품들을 재치 있게 활용해 프리다를 개성 있게 재현해냈다.
사실 <코코>에 등장하는 프리다는 출연 분량이 많거나 스토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코코>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코코>와 멕시코의 환상의 케미, 그중에서도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부부와의 흥미로운 관계에 대해 몇 가지만 더 짚어보겠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무래도 프리다 칼로의 실제 작품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대로 등장하지는 않고 사후세계에 걸맞게(?) 패러디된 형태로 반가운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프리다가 사후에도 공연 형태의 예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설정을 해두었는데 이 또한 프리다의 예술 활동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팬들에게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남편이자 멕시코의 유명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세계관 또한 <코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죽은 자들의 날과 관련된 그의 작품들은 <코코>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이미지나 그들의 축제를 시각화하는데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 디에고 리베라(1886 - 1957) : 멕시코 대표 화가. 주로 민중을 대상으로 멕시코의 신화·역사·전통 등을 벽화로 표현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죽은 자에 대한 이미지다. <코코>는 죽은 자들을 생전의 모습과 유사한 영혼의 형태나 귀신의 형태 등 다소 추상화된 개념으로 이미지화하지 않고 해골의 형태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사실 멕시코의 사후 세계관과 관련된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실제 디에고의 대표작, 그것도 작품의 가장 중심부에서도 그 상징을 볼 수 있다.
또한 <코코>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장면들 중에 가장 뚜렷하게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부분은 바로 음악 경연대회다. 스토리상 미구엘과 헥터 사이를 탄탄하게 엮어주고 미구엘이 자신감을 얻게 되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 장면은 죽은 자들의 날 다양한 행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 디에고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멕시코인들이 해골의 형태로 죽은 자 들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멕시코의 삽화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 때문이다. 그는 주로 아연 철판(zinc etching) 기법으로 판화 작품을 만들었는데 화려한 장식을 한 해골 캐릭터가 특징이다. 그가 창조한 다양한 캐릭터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앞서 디에고의 작품에도 등장한 '카트리나'다.
'멋쟁이 해골 부인'을 의미하는 카트리나는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들이 즐겨 쓰던 고급스러운 모자를 쓴 여성 해골 모습의 판화 캐릭터인데, 멕시코 혁명 시기에 유럽의 귀족주의 전통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려 했던 멕시코 상류층을 풍자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후 카트리나는 많은 멕시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예술가가 바로 디에고 리베라다. 그 덕인지 카트리나의 이미지는 죽은 자들의 날 축제에서 인형이나 분장 기법 등을 통해 대중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코코>의 이멜다와 헥터 부부는 여러 면에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부부를 연상시킨다. 우선 이 두 커플 모두 같은 예술을 함께 했고 또 사랑했다. 이멜다와 헥터에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다면 프리다와 리베라에게는 개성 넘치는 미술이 있었다. 특히 프리다의 경우 평소 존경하던 리베라에게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고 또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둘 사이는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로 발전했다.
또 이멜다와 프리다는 모두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남편을 두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멜다의 남편인 헥터가 음악을 하기 위해 이 곳 저곳을 누비며 아내와 딸에게 소홀했다면 디에고 리베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문란한 생활로 아내 프리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사실 프리다와 리베라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예술가 부부의 강렬한 사랑 그리고 예술에 대한 동지애가 크게 부각되면서 이 둘의 실체가 다소 미화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알고 보면 디에고와 프리다, 특히 디에고의 사랑은 소위 말하는 순정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디에고 리베라의 인생사에 언급된 그의 복잡한 사생활을 조금만 훑어보자면, 먼저 그는 러시아 출신 안젤리나 벨로프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으나 이후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부인의 친구인 마리에브나 보로베라 스테벨스카라는 여인과 딸을 낳았다. 이후 과델루페 마린이라는 사람과 다시 결혼을 했는데 이때 바로 국립 예비학교 학생이었던 프리다 칼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디에고는 5년 만에 다시 파경을 하고 21살이나 어린 프리다와 연인이 되었는데 1929년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 이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디에고의 문란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중 가장 최악의 사건은 그가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인 크리스티나와 외도를 한 것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오던 프리다였지만 동생과 남편에게 동시에 배신당했던 이 비극만큼은 그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프리다는 남편을 떠나 자유롭게 여행을 했다. 여러 명의 예술가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동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프리다가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너무 많이 피우는 바람에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접을 수 없었다. 고통과 쾌락이 휘도는 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렬해졌고 그럴수록 디에고에 대한 열망은 더 뜨거워졌다.
끝내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부부는 1939년에 이혼하게 되었는데 1940년에 다시 재결합하는 끈끈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에고의 여성편력은 계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1954년에 프리다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나자 바로 그다음 해인 1955년, 디에고는 출판 편집자 '엠마 우르타도'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만약 <코코>가 전체 관람가가 아니었다면 헥터가 조금 더 리베라와 닮지 않았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봤지만 그래도 디에고 리베라의 스케일은 소화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멜다와 프리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멜다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고통과 상처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던 예술 활동을 멀리하고 완전히 다른 삶을 개척했다면, 프리다는 이 고통을 자신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프리다의 작품에는 어려서 겪은 교통사고의 후유증과 함께 디에고가 던진 지독한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코코>에는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신기한 존재 ‘페피타’ 그리고 ‘단테’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멕시코의 예술인 '알레브리헤'를 활용한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사실 알레브리헤는 죽은 자들의 날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픽사팀이 이 화려한 멕시코 예술을 <코코>에 투영시키기 위해 특별히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알레브리헤는 흥미로운 탄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멕시코의 예술가 페드로 리나레스가 심하게 앓다가 잠이 들었는데 조금 독특한 꿈을 꾸게 되었다. 숲 속에서 갑자기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나비의 날개가 달린 당나귀나 소 뿔이 난 닭, 심지어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알레브리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크게 놀라 잠에서 깨어난 페드로 리나레스는 이후 기억을 더듬어 비현실적인 생명체를 조합해내고 그 위에 다채로운 색감을 입힌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알레브리헤'의 기원이다.
갑자기 알레브리헤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프리다와 디에고 커플이 알레브리헤 그리고 페드로의 작품을 매우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페드로에게 자주 작품을 주문하기도 했는데, 특히 디에고 리베라는 '페드로 리나레스 외에 자신이 원하는 형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디에고가 멕시코 시티에 조성한 아나우아칼리 박물관(Museo Anahuacalli)에는 그와 관련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코코>는 이렇게 멕시코 예술과 문화 그리고 그 결정체 중 하나인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아름답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그 덕에 매우 사실적인 스토리를 이끌어 가면서 동시에 매우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살려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전 세계인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프리다 칼로를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선사했다. 분명 프리다는 멕시코인들 그리고 전 세계인들이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