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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Dec 06. 2018

막장의 성공 요건 3가지,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막장의 심리학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는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자극적인 스토리들을 한자리에 모두 모으는 진수를 보여준다. 감히 말하건대 이보다 더 많은 '막장 요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탄탄한 스토리 위에 정교한 연출이 더해졌다기보다는, 이들이 스스로 홍보하고 있는 것처럼 '뒤통수 치는' 이야기들을 제법 '스타일리시' 하게 풀어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분명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스토리 개연성이 아쉽고, 때로는 과한 설정이 헛웃음도 남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기왕 보기 시작한 거 '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짓겠다는 건지 한번 보자' 뭐 이런 식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최소한 그 정도의 갈증은 해소해주는 편이다.


  미워하려야 미워하기 힘든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북미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해서 1위를 차지했다. 왜 사람들은 이 '스타일리시 막장 영화'에 호응하게 된 것일까. 이 영화에는 소위 말하는 '막장 영화'의 성공 요소들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손가락질하면서도, 막장 스토리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심리적인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한다.


화끈한 직장맘 '에밀리' (블레이크 라이블리)
치명적인 싱글맘 '스테파니' (안나 켄드릭)
아슬아슬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99%다


1)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영화의 홍보 단계에서부터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에까지 '맥거핀 효과'를 적절히 이용했다. 여기서 '맥거핀'은 보통 영화의 줄거리와는 큰 관련이 없는데도 관객들의 걱정과 관심을 유발하는 극적인 장치를 의미한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의미심장한 무엇'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배우들이 지니고 있는 소품이 될 수도 있고, 넓게 봐서는 극의 분위기를 몰아가는 모든 것에 해당될 수 있다.


  왜 '맥거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됐는지를 알고 보면 더 이해가 쉽다. 사실 '맥거핀'은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1940년에 제작한 영화 <해외 특파원>에 등장하는 별 의미 없는 암호명이었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이 단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맥거핀 효과'의 탄생이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더욱 적극적인 '맥거핀'은 그가 1962년에 제작한 영화 <싸이코>에 등장한다. 영화에는 여주인공인 '릴라 크레인'이 돈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관객들은 앞으로 이 돈다발이 어떻게 될지, 대체 돈다발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계속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돈다발은 '맥거핀'에 가깝다. 실제 영화에서 이 돈다발은 여주인공을 모텔로 도망치게 하는 연결고리일 뿐, 이후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릴라 크레인' 역의 베라 마일즈
<싸이코> 1962년 개봉

 

  이처럼 영화에 설정된 '맥거핀'은 구성상 큰 역할을 하진 않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이 장치에 집중하게 만들어 몰입도를 높여주고 영화에 긴장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전과 공포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준다. 진짜 의미 있는 것을 따로 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스스로를 뒤통수 치는 반전 영화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반전 스릴러 영화였던 <나를 찾아줘>와 <서치>를 인용하며 심지어 '그 이상'이라는 표현도 망설이지 않는다. 일종의 '맥거핀 홍보'인 셈이다. 영화에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솔직히 <나를 찾아줘>와 <서치>랑은 많이 다른 영화다

  

  결국 관객들은 '반전 영화'라는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는 제작진이 선수 친 반전의 포석을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모든 순간,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두 주부가 즐겨 마시는 마티니부터 에밀리의 남편인 '숀'의 제자들까지, 모든 것들은 의심을 불러일으킬만한 흥미로운 '맥거핀'들이다. 하지만 미리 반전이 있다고 선포한 영화에서 그렇게 뻔한 반전을 준비해뒀을 리 없다. 영화는 관객들과 대놓고 반전 싸움을 벌인다. 두 시간 내내 수많은 단서들을 흘리지만 결국 영화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요리조리 흘러갈 뿐이다. 어쨌든 욕을 하더라도 이미 두 시간은 흘러간 뒤다.


관객들은 에밀리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2)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보면, 이야기들이 하나 둘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는 마무리되는 것 없이 계속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그리고는 정말 맨 끝에서야 허겁지겁 정리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 끝은 조금 허망하다 못해 배신감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허망함 역시 이미 두 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를 모두 본 뒤에 찾아올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일파만파 커져나가기만 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여기 또 한 가지 그럴싸한 심리학적 근거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것이 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하여 매듭을 지으려 하는 기전'을 의미한다. 이 심리학적 원리 또한 그 탄생 과정을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의 이야기다.


  러시아 혁명 후 어느 식당에서 자이가르닉은 새삼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손님들로부터 수많은 주문을 받는 웨이터들이 어떻게 저렇게 메뉴를 잘 기억해낼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이가르닉은 자기에게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에게 조금 전 옆 테이블에 가져다준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았다. 자이가르닉은 당연히 웨이터가 술술 기억해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의외로 웨이터는 이미 서빙이 끝난 메뉴들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이 사실에 큰 흥미를 느낀 자이가르닉은 이후 몇 가지 추가 실험을 했고, 결국 자신의 이름을 딴 '자이가르닉 효과'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완결된 문제보다 완결하지 못한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는 성향 그리고 그것을 더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 조금 쉽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는 모두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이 영화로 돌아와 보면, 영화가 이러한 관객들의 심리를 얼마나 잘 이용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답을 제시해줘야 할 상황에도 계속해서 문제를 내고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킨다. 충격적인 소재를 던지고는 그 충격이 가시기 전에 더 충격적인 소재를 던진다. 그 끝을 궁금해하는 관객들의 심리를 영화의 끝까지 붙잡아 둔 것이다.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3) 권선징악


  사람들이 막장 스토리를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로는 '권선징악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꼽을 수 있다. 막장 스토리에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악인들 혹은 괴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힘들여 눈 뜨고 지켜보게 되는' 온갖 충격적인 일들을 저지른다. 그것도 끊임없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또한 어디에 뒤지지 않는다(어떤 내용들인지는 직접 영화를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언급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스포일러가 된다.) 결국 관객들은 이 악인 혹은 괴인들의 기행과 죄를 목격하면서, 이 나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는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인간에게는 실제로 이러한 심리적인 특성이 있다.


  2017년 독일과 영국의 심리학자들이 '네이처 인간 행동'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꽤 흥미롭다. 결론부터 인용해보자면 인간(약 6세 무렵부터)과 침팬지에게는 '악인이 응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연구는 아주 재미있는 '상황극 실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실험 대상은 4~6세의 어린이들과 침팬지들이었다.


  실험극에는 3 종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인물은 음식을 나누어 주는 착한 역할을 맡고, 두 번째 인물은 음식을 독차지하는 나쁜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은 화난 표정으로 나타나 심판을 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맡는다.


  여기서 심판자는 앞서 등장한 두 인물들 중 한 명을 무작위로 골라 4초간 벌을 가한다. 그리고 심판자는 잠시 멈추었다가 무대 뒤에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 계속해서 벌을 주는 것이다. 이때 어린이들과 침팬지들이 이 체벌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 하는지를 확인해보는 실험이었다. 이 얼마나 명료한 실험인가.


  그 결과, 4세 어린이들은 인물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처벌 장면을 보고 싶어 했고, 5세 어린이들은 어느 쪽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6세 어린이들은 달랐다. 나쁜 인물이 처벌받는 것을 계속해서 보겠다고 선택한 아이들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침팬지의 경우도 비슷했다. 착한 인물이 체벌을 당할 때에는 18%만 장면을 보러 간 반면, 나쁜 인물의 경우에는 무려 50%나 체벌 장면을 보길 원했다.


우리는 너희가 지은 죄를 알고 있다

 

  다시 영화 이야기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는 비밀도 있고 여러 가지 형태의 죄가 있다. 대부분 흔치 않은 것들이고 모두 쉽게 넘길 수 없는 것들이다. 관객들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것들을 목격하게 된다. 때로는 매우 직설적으로 또 때로는 아주 은유적으로 우리는 이들이 지은 발칙한 죄를 인식하게 된다. 주인공들을 통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이들이 지은 죄에 부합하는 적절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생겨버린 셈이다. 그러니 좀 민망하더라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이 영화가 너무 훌륭해서 스탭 스크롤까지 다 챙겨본 것이 아닙니다 라고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비밀을 공유하고 범행을 목격한 '은근한 공범'이지만, 그들과 같이 벌을 받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니 이 또한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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