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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Nov 25. 2016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마녀사냥’ 읽기

‘광기’에 대한 현실적인 판타지

       글에 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은 기존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원작에서 파생되어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지만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이기 때문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서 이야기를 그려간다. 공간적으로는 호그와트가 아닌 뉴욕의 한 복판이며, 시간적으로는 볼드모트가 태어난 해로 알려진 1926년이다. 그러다 보니 원작자인 J.K. 롤링과 제작진은 기존 시리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어가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새로운 캐릭터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이번 시리즈 또한 3~5 부작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롤링과 제작자들은 그 초석이 되는 이번 편의 연출자를 찾는데 고심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연출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물망에 올랐었지만 영화 <그래비티> 이후 그래픽 작업에 지쳐버린 쿠아론 감독이 고사하면서 결국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과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 그리고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각각 성공적으로 연출했던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롤링은 배우 캐스팅에도 신중히 참여했다. 그리고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역대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고, 최근작인 <대니쉬 걸>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던 에디 레드메인에게 주인공 뉴트 스캐맨더 역을 맡겼다. 과거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톰 리들(볼드모트)' 역 오디션을 봤다가 쓴 맛을 봤던 에디 레디메인이 이번에는 오디션도 없이 주인공인 뉴트 스캐맨더 역을 맡게 됐다는 사실은 에디 레디메인 본인에게도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줬을 것이다.


코트의 깃과 주근깨까지 열연했던 에디 레드메인의 존재감

 

  기존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비교적 명쾌한 선과 악의 대결 구조였다면 이번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는 보다 다양한 집단들의 복합적인 대립 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류와 신비한 동물들, 마법사들과 노마지(머글의 미국식 표현), 미국 마법사와 타국의 마법사들, 사악한 마법사와 그에 맞서는 마법사 그리고 남성과 여성 등이다. 이처럼 영화 곳곳에 다양한 갈등 관계를 설정해둔 만큼 다양한 긴장감이 유발되지만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대립 구도는 마법사와 노마지들의 갈등이다.


 영화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는 메리 루 베어본(배우:사만다 모튼)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입양하여 자신의 뜻에 복종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제2의 세일럼회(NSPS)'를 이끈다. 이들은 마법사들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결속되어있으면서 동시에 폭력과 억압으로 단단히 구속되어있다. 마법사들에 대한 그들의 혐오가 무엇 때문인지는 영화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그들은 마법사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이며 노마지들과 다른 존재들인지 대중에 소리 높여 전파하고, 광장과 거리 곳곳에서 노마지들을 선동한다.


 그 과정에서 메리 루 베어본은 자신과 조금 다른 존재들에 대한 광적인 혐오와 공포를 만들어내고, 자기 자신과 다르지 않은 부분까지도 다르게 느끼게 만드는 집단적인 광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러한 광기는 다시 공포와 혐오를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이룬다. 결국 다른 존재들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제2의 세일럼회' 라는 것의 개념을 알고 보면 이 갈등 구조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영화에서 가장 깊은 갈등의 씨앗은 '다름'에 대한 차별과 광적인 폭력이다


  '제2의 세일럼회' 는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빌리지(Salem Villages)에서 실제로 있었던 '세일럼 마녀 사냥 사건'과 연결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코튼 매더라는 촉망받는 젊은 목사가 있었는데, 보스턴에서 한 노파가 마녀로 몰려 죽은 사건을 소재로《마술과 귀신 들림에 관해 최근에 알려진 신의 중요한 계시》라는 책을 썼다. 책의 내용은 실제로 이 노파는 마녀가 아닌데도 사람들의 무지로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누가 마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에는 더욱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일럼에 사는 십 대 소녀 몇 명이 이 책을 읽고,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원주민 여인이 마녀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심지어는 그녀가 타고 다니는 빗자루를 보았다는 그럴듯한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불쌍한 원주민 여인은 곧 붙잡혀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놀란 이 여인이 자기는 진짜 마녀가 아니고 진짜 마녀는 다른 데에 있다면서 자신이 알던 여자 둘을 끌어들였다. 이런 식으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무려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귀 혐의로 체포되고 이들을 재판하기 위한 특별재판소가 설치되었다. (출처 : 세일럼의 마녀들 - 종교적 광신이 빚은 마녀사냥(1691년) 미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 10. 22., 가람기획) 


 결국 저명한 인사들까지 이 사건에 연루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무려 19 명이 교수형을 당했고 한 명은 무거운 돌에 압사당했으며 또 다른 다섯 명은 옥사했고 개 두 마리도 같은 이유로 처형당했다. 그리고 이 재판에 가담했던 판사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일럼의 마녀사냥'은 충분히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집단에서 일어났던 믿기 어려운 사건으로 집단의 광기가 폭력으로 실체화된 비극이었다.


 사실 '제2의 세일럼회'가 상징하는 타자에 대한 과장된 공포와 차별 그리고 소수에 대한 집단의 광기는 영화 밖 현실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인종과 종교에 대한 차별, 신분과 능력을 계급화하는 폭력 그리고 동물에 대한 학대 까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선진 사회에서 조차 하루에 수 십 개가 넘는 비극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또한 메리 루 베어본이, 자신이 입양한 크레덴스(배우:에즈라 밀러)에게 행하는 또 다른 차별과 무자비한 폭력은 다문화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구성원 간의 갈등과 그 폭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처럼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 내부에 설정하여 현대 사회를 비추고 다양한 집단과 개체들이 공존하는 세상의 가능성과 그 이면의 어두운 모습까지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노마지(머글)와 신비한 동물들 모두를 포용하는 뉴트는 다문화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가깝다

 

  크레덴스는 이 영화가 설정한 갈등의 중심점에 놓여있다.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차별과 모독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가 가하는 가혹한 폭력까지. 그 고통은 내면에 오랜 기간 축적되어 분노를 형성하고 다시 크레덴스를 강력한 파괴의 힘으로 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힘은 그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대상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타인들과 사회 전체를 향해 무차별적인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가장 약자였던 존재 그리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억압되었던 존재가 가장 강력한 존재 그리고 공존을 거부하는 파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역설. 크레덴스는 폭력의 객체는 다시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즈라 밀러가 열연한 크레덴스

 

  영화는 드넓은 상상력을 캔버스 삼아 신비로운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 안에 매력적인 동물들과 인물들을 스케치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결합을 경계 없이 채색한다. 그러다 보니 부분적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고 인물 간의 감정선이 어색하게 흩어지기도 한다. 또한 <호빗> 시리즈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깨알' 같이 떠올리게 만드는 많은 장치들을 설정했었다는 점을 떠올려 봤을 때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이자 프리퀄인 <신비한 동물사전> 은 그 부분에 있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영화 마지막 부분에 뉴트가 후플푸프 목도리를 하고 나온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수 년동안 먼지에 쌓여있던 상상의 감각 기관들을 자극한다는 점 만으로도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강력한 한방이 아쉬웠던 <신비한 동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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