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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May 13. 2019

1. 목사의 성폭행 그리고 피해자 A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 제작기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먼저 음료를 시켜 마시고 있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다. 피해자 A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마른 입술만 손으로 문지르며 앉았다 섰다만 반복했다. 히터를 틀어 방을 따뜻하게 했다가도, 조금 공기가 답답해진다 싶으면 이내 창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창에 비친 옷매무새를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피해자 A는 그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었고 우리가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경기도의 모 카페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미투 피해자 연대’ 관계자와 함께 피해자 A가 방으로 들어섰다. A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지만 밝은 목소리로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 역시 복잡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두었던 수많은 인사말들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심스럽지만 A에 대해 간략히 묘사해보자면 그저 내 주변에 있는 친구 같고 동생 같은 그런 인상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믿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 A는 지난 수년간 만민교회의 이재록 목사에게 수차례 성폭행당한 여성이었다.


  <PD수첩>을 제작하다 보면 다양한 피해자들과 만나게 되지만 이처럼 성폭행 피해자를 만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모든 행위 자체가 2차 가해이며 3차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인지도 팩트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시작부터 끝까지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 자리가 있기까지도 약 한 달간의 조율을 거쳐야 했다. 3번의 거절을 당한 뒤였다. 이렇게 어렵게 마주한 우리는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눴고,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 방송의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20년 전 <PD수첩>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번에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분명 막을 수 있는 피해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잠시 20년 전 <PD수첩> 방송에 대해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이라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만민교회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던 나 역시 과거에 이런 방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999년 5월 <PD수첩>은 만민교회의 실체를 파헤치는 방송(목자님, 우리 목자님 편)을 준비했었다.


1999년 5월 11일 방송 예정이었던 "목자님, 우리 목자님"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선배들과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방송은 ‘이재록 목사의 성폭행’ 문제와 ‘근거 없는 기도 치료의 문제’, 그리고 만민교회의 ‘불투명한 재정 관리 문제’ 등을 다루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 방송은 충격적인 취재 내용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름하야 “MBC 얼룩말 사건”이다.


  ‘MBC 얼룩말 사건’ 혹은 ‘동물의 왕국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는 이 사건은 1999년 5월 11일 <PD수첩> 방송 당일에 만민교회 신도들이 여의도 MBC 주조정실에 난입하여 시설물을 파손하고 강제로 방송 송출을 중단시켰던 초유의 사건을 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지만 이 모든 내용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었고, 대한민국 방송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사건이었다(실제 대학교 언론학부 수업에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얼룩말 사건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이유는 <PD수첩> 방송 송출이 강제로 중단되면서 송출 책임자가 임시방편으로 얼룩말 영상을 송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실제 방송사고 화면

  

  주조정실은 제작 완성된 방송 테이프 혹은 파일들을 관리하고 송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방송국 내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다. 그래서 방송국 직원들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고 허가 없이는 접근할 수도 없는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다수의 MBC 직원들은, 당시 만민교회 신도 중 MBC 직원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고 그가 다른 신도들에게 주조정실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알려줬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당시 만민교회 신도들이 방송을 저지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MBC에 난입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의 방송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2000명이 넘는 신도들이 MBC 앞에 모여 집단 항의를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중 300여 명은 주조정실을 포함한 사무실 내에도 진입했다. 제작진과 책임자를 찾아 어떻게든 방송을 저지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무실에 남아있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매우 생생했다. 선배들 중 일부는 신도들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고, 또 어떤 선배는 촬영본 테이프를 가슴에 품고 달아나 편집실 안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러자 신도들은 담당 국장을 창밖으로 집어던져버리겠다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주조정실의 시설물을 파괴하고 전원 코드를 뽑는 등 방송을 중단시켜버렸다.


당시 여의도 MBC 로비를 점거한 만민교회 신도들


MBC 주조정실에 난입한 만민교회 신도들과 찢어진 옷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오히려 그들의 뜻과 반대로 흘러갔다. 당시 주조정실에 난입해 방송 송출을 중단시켰던 주요 책임자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PD수첩>은 이틀 뒤 더 큰 주목을 받으며 방송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세상은 만민교회라는 곳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은폐 시도가 오히려 홍보가 된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피해자 A 역시 이 얼룩말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언론 보도


 사실 제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교회는 <PD수첩> 때문에 엄청 시끄러웠어요.


  그러니까 A가 십수 년 전 만민교회에 처음 나가기 시작했던 즈음, 마침 만민 교회가 <PD수첩> 방송으로 인해 매우 시끌시끌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게 무슨 특별한 얘기인가 싶을 것이다. 언론에 교회가 대서특필 됐으니 당연한 얘기 아닌가. 하지만 만민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고 나면 ‘만민 교회가 시끌시끌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만민 교회는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다. 증언에 따르면 만민교회는 평소 신도들에게 TV를 보거나 뉴스를 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소식을 듣는 것은 매우 큰 죄며 지옥에 가야 할 만큼 매우 불경한 행위로 간주했다. 특히 <PD수첩>은 악 중의 악이요, 악마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PD수첩>을 시청하거나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교인이 범할 수 있는 최악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1세기 서울 한복판에 있는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기엔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만민교인 중에는 ‘PD수첩’이라는 단어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금식 기도를 했던 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민교회도 사상 초유의 방송 중단 사태만큼은 가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만민교회라는 이름이 며칠간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사건으로 인해 만민교회의 신도 중 수천 명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A가 막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시점이 이처럼 세상이 만민교회에 대해 경악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수년 뒤 A 역시 똑같은 피해자가 됐다는 것.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20년 전 <PD수첩>은 추가 피해자를 막지 못했을까. 왜 A는 만민 교회에서 나오지 못하고 피해자가 됐을까. 사실 1999년 5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방송됐던 <PD수첩> 방송 본에는 ‘이재록 목사의 성폭행 문제’에 해당되는 약 15분 분량이 삭제됐었다. 이유는 당시 만민교회 측에서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이재록 목사의 사생활에 해당되는 부분이 방송될 경우 심각한 명예 훼손이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결 내용

 

  복잡한 심정이었다. 당시 <PD수첩>이 애초의 구성안대로 방송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교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조명되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A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A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고통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A와의 첫 만남은 이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2시간 남짓 그녀가 털어놓은 모든 말들이 온몸에 새겨지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A에게 조심스럽게 정식 인터뷰를 제안했다. 20년 만에 다시 제작하게 된 이번 방송에 꼭 필요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며칠 뒤 다시 만나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A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A는 함께 소송 중인 다른 피해자들과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 뒤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로 하고 카페를 떠났다. 지금도 교회에 남아있는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서로 용기를 내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PD수첩> 제작진은, 지난 1999년 방송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 만민교회에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20년 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만민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인지. 또 A가 힘겹게 털어놓은 이 충격적인 내용들은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은 2019년 1월 29일에 방송됐다




* 이 글은 직접 인터뷰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 싣는 순서>     


0. 징역 16년 확정 판결을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   

1. 목사의 성폭행 그리고 피해자 A

2. 벌거벗은 목사와 에덴동산

3. 탈만민

4. 기적을 행하는 목자님

5.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기적의 물

6. 기적의 물, 무안단물

7. 무안단물의 비밀

8. 내 너의 병을 낫게 하리라

9. 예물심기

10. 피해자 A, B, C

11. 다시, 방송금지 가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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