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편 제작기
우리는 어느 오후 한 카페에서 만났다. 멀끔한 차림에 두툼한 가방을 메고 들어선 P.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와 나는 악수를 나눴다. 꽉 쥔 듯, 쥐지 않는 손에서 반가움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고 말없이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리고 P가 음료를 고르는 사이, 나는 재빨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곧장 조용한 구석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저마다 조용한 목소리들이 모여 제법 시끄러웠다.
제보자와 카페에서 미팅을 하게 될 때면 메뉴를 길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심지어 나는 커피를 마시지도 못 한다). 이유는 이야기를 나눌 최적의 자리를 찾고, 제보자의 컨디션을 미리 살펴보기 위해서다. 의자가 불편하면 제보자가 지나치게 긴장하게 될 수 있고, 책상이 작은 경우에는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제보자가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적당히 넓고 편안하면서 동시에 조용한 자리를 선점해두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미팅 장소가 한적한 장소라면 제보자가 먼저 주문을 하게 한 뒤 곧 나도 같은 메뉴를 주문하기도 한다. 마치 소개팅을 위한 팁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어렵게 나를 만나준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의 벽이 낮아지리라 믿는다. 내가 적당한 자리를 봐 두는 사이 P도 나와 같은 음료를 주문했다. P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방송은 그 방송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제작된다.
자리로 이동하면서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 들지 빠르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P의 인상과 표정을 빠르게 훑었다. 질문의 방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P는 캐주얼한 정장 차림에 '젊은' 백팩을 메고 있었다. 노타이에 색감 좋은 구두. 헤어스타일은 동네에서 대충 자른 머리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잘 관리하는 듯 보였다. 게다가 가방에서는 슬림한 노트북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과하게 예의를 차린다기보다는 조금 더 편하고 때로는 과감한(친한 척) 대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
머리 어디서 하세요?
머쓱하게 머리를 만지며 웃었던 P. 내가 P를 만난 이유는 그가 다수의 피해자들과 연결이 닿을 수 있는 중요 제보자이자, 그 역시 만민교회의 피해자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최근까지도 만민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만민교회의 현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찻 잔 너머로 그의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 해야 할 이야기가 노트북 속에 한가득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도 가득해 보였다. 그런 그의 심정을 상상해보며 조심스럽게 수첩을 펼치고 펜을 준비했다. P 역시 자신의 휴대폰으로 우리의 대화를 녹음하는 듯 보였다.
어떤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P는 스스로를 '탈만민'이라고 불렀다. '탈'만민. 말 그대로 만민교회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P의 말에 따르면 약 15만 명의 신도를 자랑했던 만민교회도 최근에는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내부 결속이 단단한 만민교회라 해도 이재록 목사의 구속(1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다)까지 가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재록 목사를 신처럼 따르던 교인들도, 담당 목사가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철옹성 같던 만민교회에도 들판에 진달래 꽃 번지듯 조금씩 진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교인들은 하나 둘 교회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탈만 행렬은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들 사이에서도 어느새 새로운 '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약 500명의 탈만민들이 오픈 채팅방에 모여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기도 했고, 누군가는 만민 교회의 진실을 알리는 '탈만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탈만민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또 만민교회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는 이 묵직한 진실 앞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기로 했다.
이재록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P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듯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술술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가 들려준 이재록 목사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슬림한 노트북에서 꺼내 든 수많은 자료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니 충격적이라기보다는 비현실적이었다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방송 한 편에 다 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 이 글은 직접 인터뷰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 싣는 순서>
0. 징역 16년 확정 판결을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
1. 목사의 성폭행 그리고 피해자 A
2. 벌거벗은 목사와 에덴동산
3. 탈만민
4. 기적을 행하는 목자님
5.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기적의 물
6. 기적의 물, 무안단물
7. 무안단물의 비밀
8. 내 너의 병을 낫게 하리라
9. 예물심기
10. 피해자 A, B, C
11. 다시, 방송금지 가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