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호기 Sep 25. 2019

5.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기적의 물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편 제작기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PD로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초대받지 않은 방문'을 선택할 것 같다. 대부분의 취재가 그렇다. 보통 취재 대상들은 나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기껏 시간 내서 나를 만나봐야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실제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날 만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또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날 만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중히 문자로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크게 의미는 없더라도 공식적인 서면 답변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답변할 수 없음'이라는 무적 치트키 같은 답변을 자주 받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때로는 신박한 묘수를 부리며 뒤통수를 세게 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먼저 방송 날짜를 확인한 뒤 방송 바로 전날에 인터뷰 약속을 잡는다. 좀 불안하지만 별다른 수는 없다. 우물쭈물하는 나를 향해 이들은 이렇게라도 인터뷰를 하려면 하고 아니면 말으라는 강수를 둔다. 별 수 있겠는가 그러자고 하는 수밖에. 어떻게든 만날 수만 있다면 특종 할 수도 있겠다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든다. 다른 일정을 당겨서 미리 처리해두고 밤잠을 설쳐가며 인터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동시에 취재 내용을 수십 번 검토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그리고는 약속 당일 아침. 아니나 다를까 예상 그대로의 일이 벌어진다. 이들이 잠수를 타버리는 것이다.


  이 인터뷰 약속만 바라보며 달려온 나로서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된다. 잘하면 특종 한번 해볼 수도 있겠다는 나의 순수했던 꿈도 이제서 보면 그렇게 바보 같아 보일 수가 없다. 부랴부랴 다시 전화를 돌리고 공식 입장을 확인해봐야 소용없다. 그냥 깔끔하게 망한 것이다. 편집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지긋이 내려 닫는다. 그리고는 우리의 취재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이 현명한 사람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심지어 이들은 정갈하게 깎은 제철 과일을 접시에 담아 알맹이가 빠진 우리의 싱거운 방송을 본방 사수한다. 이런 악몽을 며칠 꾸고 나면 정말 살이 쫙쫙 빠진다.


  그러다 보니 높으신 분의 방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갔다는 둥, 전화 한 통이면 귀신도 만나줬다는 둥 하는 선배들의 오랜 무용담은 그저 전설이나 유니콘 같은 얘기로 들린다. 방송사 명함만 내밀면 안 되는 게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경찰도 조금만 괴롭히면 고급 정보들을 술술 흘려주곤 했단다. 솔직히 현장에서 숱하게 '물먹는’ 요즘 PD로서는 무지무지하게 부러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멋진 시절'은 이제 다시 올 수도, 다시 와서도 안 되는 그런 영화 같은 환상이다. 요즘은 그저 멱살 잡히다 돌아오거나 경찰서에 끌려가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럼에도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은 정말 꼭 만나야 한다. 그래야 진실을 확인할 수 있고,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제일 관심을 갖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예고편의 하이라이트)이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 인물을 만났다는 것인지 못 만났다는 것인지. 혹은 그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제작진이 어떤 노력을 했다는 것인지. 이런 포인트들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하고 곧장 제작진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실컷 여기저기를 캐묻고 다녔는데 끝끝내 끝판왕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 프로그램은 '김이 확 빠지더라'라는 가슴 아픈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PD들은 핵심 취재 대상을 만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나주지 않겠다는 사람의 차를 뒤쫓기도 하고, 한 겨울에 집 앞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그나마 내가 꼭 만나야 하는 인물의 주소라도 알아냈다면 그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그 사람의 집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신분을 속이는 것은 기본이요, 잠복 취재를 할 때면 요즘 시대의 골칫거리인 몰래카메라도 들어야 한다. 주변에서 흔히들 말하는 '방송국 놈들' 이 되는 순간이다. 이럴 때면 내가 지금 진정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공익'과 '알 권리'라는 그럴싸한 이름에 '방송국 놈들'의 생존본능이 더해지며 탄생하는 복잡한 딜레마다.


수 백 시간 찾아다닌 끝에 겨우 만날 수 있었던 김기춘 전 실장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는가. 그 이유는 만민교회를 취재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인물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은 나를 만나준 것도, 그렇다고 만나주지 않은 것도 아니요. 내 앞에 존재하기도 또 존재하지 않기도 했던 그런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상황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그와의 만남은 단단한 철문을 사이에 두고 아주 짧은 순간에 그치고 말았으나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는 바로 '무안만민교회'의 목사였다.


무안만민교회 목사와의 만남(?)


  물론 서울에 있는 만민 교회를 취재하는데 왜 굳이 저 멀리 무안에 있는 교회까지 괴롭힐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가 바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무안단물' 신화의 주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갑자기 등장하는 '무안단물'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실 이 신비로운 물질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꽤 유명했다. 주요 포털에서 검색만 해도 수많은 소개글과 관련 정보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으니, 이 특별한 물에 대해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였다. 이 물을 마시거나 몸에 바르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덕을 봤다는 사람들부터 이 물의 황당함을 비꼬는 재치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이 '무안단물'에 대해 알아보려면 우선 이 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때는 지난 2000년.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무안 만민교회’는 큰 위기에 빠져있었다. 이유는 교회 근처에 지하수를 팠는데 아무래도 교회가 바다 근처에 위치해 있다 보니 짠물이 샘솟아 식수로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담임 목사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이 짠물을 식수로 쓸 수 있을까. 그때 그에게 떠오른 단 하나의 빛줄기가 있었으니, 그는 당연히 이재록 목사였다.

 

  직접 만났던 제보자들마다 증언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대다수의 증언을 종합해보자면 당시 무안 만민 교회의 목사는 서울 만민 교회의 당회장인 이재록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이재록 목사에게 너무 짜서 마실 수 없는 이 '무안짠물'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서울 만민교회 측에서 이 둘의 통화를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생중계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애절한 사연을 소개해주는 어느 TV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무안 만민교회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재록 목사는 곧장 기도를 시작했다. 무안 만민 교회의 형제, 자매들이 무안짠물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니 부디 이 짠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기도였다.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교인들도 다 함께 이재록 목사를 응원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이재록 목사의 권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놀랍게도 무안 만민 교회의 짠물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당시 생중계로 통화를 하고 있던 무안 만민 교회의 목사는 그 기적을 맛보기 위해 시원하게 물을 한잔 들이켰다. 그리고는 그의 반응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교인들을 향해 감격에 찬 한마디를 던졌다.

 

이제는 쪼꼴렛 맛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무안단물’의 기막힌 탄생기다. 정리하자면 아주 평범했던 무안 바닷가의 짠 지하수가 한 목사의 기도에 의해 달콤하다 못해 초콜릿 맛이 나는 단물로 다시 태어났다 뭐 그런 얘기다. 그렇다면 그 뒤로는 어떻게 됐을까? 만민 교회 측에서는 이런 환상의 기적을 그냥 둘리 없었다. 이후 만민 교회는 이 무안 단물터에 꽤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규모 관리 시설과 거대한 장식물은 기본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 기적의 물을 구경하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부지도 정리했다. 이렇게 완벽한 변신에 성공한 ‘무안단물터’의 오픈 행사에는 수많은 교인들 뿐만 아니라 무안 지역의 유력 인사들과 전 세계 유명인사들도 찾아와 자리를 빛냈다. 심지어 이들은 샴페인 잔에 무안단물을 채우고 축배를 들기도 했다. 이제 무안단물은 단순한 식수가 아니라 기적의 상징이자 이재록 목사의 권능을 상징하는 성물과도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무안단물터

  

  그도 그럴 것이 무안단물은 정말 신비의 묘약이었다. 만민교회의 주장에 따르면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이 단물만 매일 마시면 그 병을 치료받을 수 있고, 아픈 부위에 이 무안단물을 바르기만 하면 그 통증과 상처(화상 흔적까지)까지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뿐 아니었다. 무안단물을 눈에 바르면 없던 쌍꺼풀도 생겨나고, 무안단물에 몸을 담그면 살도 뺄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 '무안단물'의 기적을 직접 체험했다는 교인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수많은 교인들이 서로 경쟁하듯 무안단물 체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간증과 증거 사진(?)들은 교회의 홈페이지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채워나갔다.


무안단물 간증 소개 영상


  우선 팩트체크를 해보기 위해 무안단물의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의 사례를 모두 취합했다. 그 내용들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차라리 이 모든 내용들이 정말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지경이었다. 무안단물에 몸을 적셨더니 무려 30Kg이나 빠졌다는 어떤 외국인 교인부터 죽은 강아지도 살려냈다는 어느 젊은 교인까지. 심지어 무안단물을 뿌리자 고장 난 세탁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증언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들이지만 정확한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에이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을 빼주는 그런 물이 세상에 어딨어요?"라고 어린아이처럼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물론 이게 사실이라면 최소 노벨상 후보는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는 무안단물로 큰 은혜를 입었다는 교인들을 수소문했고 그들에게 정말 무안단물의 기적이 있었는지, 혹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 이 글은 직접 인터뷰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 싣는 순서>  


0. 징역 16년 확정 판결을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   

1. 목사의 성폭행 그리고 피해자 A

2. 벌거벗은 목사와 에덴동산

3. 탈만민

4. 기적을 행하는 목자님

5.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기적의 물

6. 기적의 물, 무안단물

7. 무안단물의 비밀

8. 내 너의 병을 낫게 하리라

9. 예물심기

10. 피해자 A, B, C

11. 다시, 방송금지 가처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