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호기 Aug 09. 2019

징역 16년 확정 판결을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

  2019년 1월 29일. 이재록 목사의 여신도 성폭행 문제와 만민교회의 각종 문제들을 다루는 내용의 <PD수첩 -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을 우여곡절 끝에 방송할 수 있었다. 제작 기간만 약 3개월. 거기에 20년 넘게 쌓여온 만민교회의 방대한 자료들과 설교 영상들을 모두 분석했고, 수십 명의 피해자들과 제보자들을 만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방송은 쉽지 않았다. 방송 당일에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약 20년 전을 떠오르게 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20년 전 만민교회도 자신들을 비판하려 했던 <PD수첩> 방송을 막기 위해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을 걸었었다. 특히 이재록 목사가 여신도들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다수의 증거가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만민교회 측의 요구가 일부 인용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재록 목사의 성폭행 문제에 해당되는 약 15분 분량은 삭제될 수밖에 없었고, 끝내 방송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만민교회 신도들은 방송 당일 MBC에 무단 침입하여 로비를 점거했다. 그리고 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주조정실에 난입하여 방송 시설물을 강제로 파손시키는 등 물리적으로 공영 방송사의 방송을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저지르기도 했다.


1999년 MBC 로비를 강제 점거했던 만민교회 신도들

  

  그로부터 20년 뒤. 다시 만민교회의 문제를 정조준한 <PD수첩> 방송은 또다시 언론중재위원들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다. 기사가 쏟아졌다. ‘MBC와 만민교회, 20년 만의 리매치’라는 타이틀이었다.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느냐 마느냐가 걸린 상황에서 극도의 긴장감이 더해졌다. 사실 방송 당일은 편집을 마무리하고, 각종 홍보 자료들을 챙기느라 김밥을 입에 넣을 시간 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런 방송 당일에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이 들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인데, PD 입장에서는 참 가혹한 일이기도 하다. 방송 마무리를 하면서 답변서까지 작성해야 하고, 관련 근거들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 불과 방송 6시간 전이었다.


  다행히 그 결과는 20년 전과 달랐다. 만민교회 측에서 신청한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이 전부 기각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수개월 피땀 흘려 제작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은 무사히 방송될 수 있었다. 오히려 이 가처분 소동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20년 만의 리매치’라는 기사와 각종 응원 댓글들 덕분이었다. 전화위복이라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방송에서는 이재록 목사의 여신도 성폭행 문제와 각종 금전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리고 방송 직후 이재록 목사와 만민 교회는 실시간 검색차트를 도배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만큼은 방송 내용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자신했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민교회 측에서는 방송 내용에 대해 다시 강력히 항의를 했다. 그들은 방송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과 영상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으며, SNS를 통해 이런 내용들을 퍼트리기도 했다(물론 반박할 수 없는 내용들은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그로부터 약 3 달 뒤. 사내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민 교회 측에서 언론 중재를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만민 교회 측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이 방송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반론 보도를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언론 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담당 PD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송을 제작할 당시에는 정식 인터뷰나, 충분한 질의응답 자체를 거부하더니 이제 와서 반론 보도를 요구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억을 더듬어 반박 자료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언론 중재위원의 심판대 앞에서 만나게 됐다.


  만민 교회 측 입장은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황당했고,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치욕스러웠다. 이재록 목사의 성폭행 문제는 지금 재판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태(당시 1심 15년형 선고)인데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재록 목사가 교인들로부터 개인적인 헌금(만민 교회에서는 ‘예물’이라고 표현한다)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이재록 목사가 교회에 다시 800억 원을 헌금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이재록 목사가 800억을 교회에 헌금했다는 내용을 다시 보도해달라는 황당한 주장(이미 방송에 포함되어 있었다)이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언론중재위원들의 표정은 오히려 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교회의 목사가 어떻게 800억이 넘는 재산을 가지게 될 수 있었단 말인가. 결국 만민교회 측에서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모양새일 뿐이었다.


  사실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언론중재위 입장에서는 반론 보도 요청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반론 보도는 방송사의 입장에서도 사과 방송이나 정정 보도에 비해 부담이 덜한 편이고, 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상당 부분 불만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만일 반론 보도를 하게 된다면, 만민 교회 측에서는 이 내용만 캡처해서 가짜 뉴스를 만들 가능성이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만민교회 내부에는 이재록 목사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믿는 신도들이 수 천명이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론 보도는 만민 교회와 이재록 목사에게 매우 좋은 자료가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언론 중재위에서는 조정불성립을 선고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충분히 고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언론 중재를 끝내고 로비에서 다시 마주친 만민 교회 측 변호사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판결에 매우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 또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을 가리려 하는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변호사들에게 지불했을 변호 비용이 어디서 나온 돈이었을지를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성폭행 피해자들과 구로동 단칸방에 살면서 폐지를 모아 교회에 헌금했다는 사례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언론 중재 며칠 뒤에 있었던 2심에서 이재록 목사는 16년 형을 선고받았다. 1심 15년에서 오히려 1년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재록 목사는 대법원에서 16년형 최종 판결을 선고받았다. 최초 성폭행 피해자들의 고소로부터 1년 5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고, <PD수첩>이 1999년 준비했던 방송으로부터는 무려 20년이 지난 뒤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결국 법은 피해자들의 목숨을 건 용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만민 교회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 상황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만민교회는 당당했다. 심지어 오늘 대법원 앞에서는 이재록 목사의 결백을 주장하는 시위도 계속됐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대법원 판결 직후 법의 판결을 부정하는 공식 입장까지 발표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만민교회의 공식 입장


  만민교회에 몸 담았던 수많은 신도들. 그리고 이재록 목사를 신처럼 믿고 따랐던 수만 명의 신도들은 지금도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코 이들을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 모두에게는 각자 간절한 사연이 있었고, 또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런 절박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열심히 모아 온 재산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믿었던 치료 기도는 조금의 효과도 없이 병을 키우기만 했다. 자기 자식을 쫓아내는 부모가 생기기도 하는 한편, 수십 년을 함께 했던 부부가 헤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방송을 준비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피해자들. 그리고 교회의 보복이 두려워 차마 카메라 앞에는 서지 못했던 더 많은 피해자들. 그들의 이야기는 방송에 반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특히 방송 분량상 마지막에 편집해낼 수밖에 없었던 어떤 가장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카메라 앞에서 목놓아 울었던 그 가장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이 고통에서 절대 헤어날 수 없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들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쓰기로 했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만민교회 신도들의 이야기. 그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 무엇보다 방송에 다 담지 못했던 만민 교회의 실체에 대해 기록하기로 했다. 또다시 소송이 들어올지, 어디서 어떻게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두렵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고 싶다. 해야만 할 것 같다. 만민교회는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에.




<글 싣는 순서>     


0. 징역 16년 확정 판결을 받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

1. 목사의 성폭행 그리고 피해자 A

2. 벌거벗은 목사와 에덴동산

3. 탈만민

4. 기적을 행하는 목자님

5. 몸에 닿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기적의 물

6. 기적의 물, 무안단물

7. 무안단물의 비밀

8. 내 너의 병을 낫게 하리라

9. 예물심기

10. 피해자 A, B, C

11. 다시, 방송금지 가처분

매거진의 이전글 '대림동 여경'은 가짜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