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짐

4장. 근육이 준 자유

by Jamie




제주집 근처의 성당에 새벽미사를 보러 갔다. 마침 아버지의 기일이라 더욱 의미있게 생각되었다.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다니던 성당 말고 다른 곳에 미사를 보러 간 것은 처음이었다. 미사의 순서는 전세계 어디서나 같지만 미사를 진행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이곳 성당은 단순한 말도 높낮이 별로 없는 음을 붙여 노래처럼 하는 특징이 있었고, 봉헌 후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다른 형태의 미사에 나의 몸과 마음이 불편해졌다.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미사의 다른 점에 불평하며 집중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성당 근처에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다. 운동장 모습이 거의 그대로였다. 커다랗다고 느꼈던 운동장이 이제 조그맣게 보일뿐이었다. 3학년 때인가 운동장에서 같이 놀던 친구에게 보란 듯이 돌다리 뛰어넘기를 할 때였다. 몇 발 가보지도 못하고 넘어져서 오른쪽 정강이가 심하게 패였다.

6학년 때는 학교 운동장 철봉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착지를 하는데 왼쪽 발목을 삐끗해서 오랫동안 통증을 달고 지냈다. 겁이 많아서 철봉운동을 잘 하지 못했는데 용기 내어 매달린 날 하필 부상을 입었으니 다시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매일 아침 꽉 찬 92번 버스를 탔다. 버스가 오는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타이밍을 잘못 맞추는 날은 저 앞에 보이는 버스를 코 앞에서 놓치기도 했다. 하루는 횡단보도에 서서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 92번 버스가 보였다. 저걸 타지 않으면 앞으로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달려가다가 횡단보도 중간에서 넘어졌다. 교복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입은 다리에 구멍이 나고 피도 났다. 채 일어나지도 못한 내 옆을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가 천천히 지나갔다.

넘어졌던 순간은 몸의 통증보다 창피함으로 기억됐다. 그리고 아물 때 까지의 불편함. 넘어지고 나면 한동안 나는 또 넘어질까봐 시선을 아래에 두고 조심조심 걸어다녔다. 함부로 뛰지도 않고 위험한 돌다리 같은 걸 경쾌하게 넘어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다시 고개 들고 어깨 펴고 걷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넘어졌다. 그렇게 넘어지던 어린 내가 상상하던 어른이 된 내 모습은 장밋빛이었다. 실제로 어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할 때면 밝게 웃는 내 주변으로 장미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른도 넘어져서 운다는 걸, 몸무게도 살아온 무게도 무거워진 어른의 넘어짐 뒤에는 더 큰 통증이 온다는 걸 몰랐다.


나와 현실에 대한 자각이 센물살로 지났다. 떠밀려 가지 않고 내 자리에 남았지만 서 있던 곳의 지형이 바뀌었다. 구멍 난 곳이 메워지기도 하고 완만했던 곳이 파헤쳐 지기도 했다. 온전한 부분과 파인 부분들이 모여 나라는 모양을 만든다. 메우고 다지고 그냥 두기도 하면서 만들어 가야 할 지형이고, 나와 내 몸이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함께 해 낼 수 없는 내 몸이 밉고, 도움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돌보지 않은 생활, 타인의 기대에 기대어 살던 마음은 약해진 몸과 함께 무너졌다. 무너지고 파여서 땅에 묻힌 나의 일부는 이제 그 위에 남은 나의 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물살이 잠잠해진 새로운 환경에 나와 내 주변인들이 새롭게 섰다. 물살은 이제 완전히 잠잠해졌을까. 거센 물살은 언제라도 다시 다가올 것이다. 내가 예측할 수도, 미리 안다고 해도 막을 수도 없다. 막을 수 없는 물살을 만나면 또 괜찮지 않을 것이다. 통증과 수치심으로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거나 한동안 움츠리고 걸을지도 모른다. 쉽지 않을 그 길에 나를 지탱해 줄 것은, 몸을 움직여 지금 할 수 있는 일로 내딛는 한 걸음과 그렇게 다져지는 발밑의 지형일 것이다. 그 땅을 조심스레 걷다가 어느새 괜찮아져 맑아진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며 걷는 내가 되기를.

성당에 가서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을 자책할 필요 있을까. 흔들리는 마음을 의심하기보다 춥고 어두운 새벽에 이불에서 나와 성당까지 찾아간 내 몸을 믿어보자.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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