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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별 Jul 10. 2024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직합니다.

11개월의 희노애락

1년이 되기 전, 3주의 시간을 남기고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잦은 이직은 커리어에 좋지 않다는 말이 많지만, 그럼에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옮기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늘 고민과 해결을 반복하며 더 나은 근무환경을 만들거나 찾아나서기도 해보았는데요. 이번 글은 1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이직하게 된 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애증의 프로젝트와 스쿼드

프로젝트, 시작

처음 회사를 입사했을 때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프로젝트의 내용을 전달받고, 다음과 같은 미션을 받았습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초소형전기차 대여 서비스를 개발하여 지방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신규 서비스를 개발/운영해보려 합니다. 초소형전기차를 컨트롤하기 위한 OBD 업체, 결제 서비스와 기타 여러 서비스를 연결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봅시다."


처음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설렘과 짧은 OJT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국비 지원으로 신규 사업을 개발하여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되어 좋은 프로젝트라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고도화할지 많은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는 나름 순조로웠습니다. 서버 개발자로서 데이터베이스 설계, 인프라 설계, 개발 내용 공유 및 이슈 대응을 하는 등, 스쿼드 조직으로 구성된 팀은 나름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며 전진해 나아갔습니다. 스쿼드 조직 특성상 일당백이 중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개발 내용을 문서화하고, 팀원들과 공유하여 히스토리를 쌓아가고, 필요하다면 회의 문화와 업무 문화를 이끌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 스스로 성장하는 '밀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어 꽤나 만족스러운 프로젝트 경험이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이면

스타트업에서는 많은 정보를 팀원들과 공유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프로젝트의 계약서, RFP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진행도를 수시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팀 멤버 중 특히 프로덕트 매니저(이하 PM), 사업개발을 담당하던 멤버(이하 BDM)와 계약/고도화에 대해 깊이 논의해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Me : "프로젝트 과정에서 지나치게 발주처의 간섭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개선이 어려울까요? 어렵다면, 결과보고 후 우리가 운영하며 자유롭게 고도화 할 수 있는 건가요?"


BDM : "고도화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발주한 발주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공동 운영 형태로 계약이 돼 있고, 운영기간 역시 n년간 지속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사업의 고도화/철수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국책사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감안해주셔야 합니다."


PM : "공동 운영이라는 부분과 잦은 간섭이 예정돼 있는 만큼 로드맵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네요. 더욱이 고도화와 운영을 하는 과정에서 발주처의 간섭이 지금처럼 많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처음 논의했던 앱의 성장 곡선을 그리기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처음 입사할 때 짧게 OJT를 진행하며 공유받은 내용에서 중요한 내용이 누락돼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잠시나마 꿈을 꾸었던 프로젝트의 다른 모습을 확인하였고 제 열정은 이때를 기점으로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3개월의 짧은 경험에서 기대 이상의 성장과 성취감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해가 지나, 1월이 되어 PM님께서 사내 업무 문화를 개선하고자 모든 팀에게 Task 관리와 프로젝트 진행 방식에 대해 공유하였습니다. 저 역시 업무 문화 개선에 동참하여 회고방법론을 제안하여 적용해보기도 했습니다. 개선된 업무 문화에 적응함과 동시에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를 수행하는 것도 병행했습니다.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은 성취감을 고조시켜주었습니다. 덕분에 초소형 전기차 대여 서비스는 무리한 고도화 계약과 함께 사업단에 끌려다니며 여러 기능 개발을 통보받았지만, 나름 방법을 고안하여 안정적이게 릴리즈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멤버들 각자와 저 스스로도 내적 갈등이 많아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희미해진 스쿼드

잦은 발주처의 간섭으로 인한 내적 갈등이 쌓인 멤버들에게 "여러분은 이걸 하기 위해 취직하셨잖아요."라는 사업개발팀 멤버의 다그침은 꽤나 강렬했습니다. 회의실에 모여 프로젝트의 불만과 불안에 대해 회의를 진행하던 도중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회의는 방향을 잃고, 별다른 소통 없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서비스 런칭과 별개로 전체 사업이 밀리면서, 발주처의 요청과 간섭이 지속됐습니다. 추가 개발과 릴리즈까지 약 1개월 정도로 마무리하였으나, 이미 사업은 6개월 정도 연장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예산을 받아 진행되는 국책사업의 특성상 결과보고를 마치고 공식적으로 사업이 마무리가 되어야 잔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기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스쿼드 멤버 모두가 업무의 방향을 잃고, 하릴없이 시간을 지내기도 하고, 마이너한 요청이 올 때면 사내메신저(이하 Slack)에서 공유받아 업무를 쳐내는 나날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은 갑작스레 자리에 찾아와 고함을 지르며 불만을 토해내는 BDM님의 호통으로 그 정적이 깨졌습니다.





격정과 함께 찾아온 스쿼드의 해체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일을 이 따위로 하자는 거에요? 융통성이 왜 이렇게 없어요?"


자리에서 업무를 하던 도중이었던 터라, 갑작스레 받은 호통소리에 깜짝 놀라 철렁했습니다. 외근에서 돌아온 이전 BDM님의 호통치는 소리였습니다. 그가 감정이 격해졌던 이유는 'Direct Messsage(이하 DM)으로 주지 말고 Slack 채널에 업무 요청을 공유해달라'는 제 요청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밖에서 외근하는 도중 DM을 줄 수밖에 없었으며, 구두로 혹은 DM으로 요청하면 융통성 있게 사내에 있는 멤버(글쓴이, 혹은 다른 개발자)가 자신에게 들은 내용을 직접 남겨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일부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외근 중 요청이 어려워 사내에 있는 저희가 구두로 혹은 DM으로 요청한 내용을 재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이처럼 격정적으로 고함을 치는 이유에 대해서는 와닿지 못했습니다. DM과 구두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히스토리가 누락되는 이슈를 수차례 겪어,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중이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20분 조금 넘게, 이야기가 오고 가며 사내 분위기는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저 역시도 손과 발이 차가워지더군요. 화가 많이나는 것과 동시에 억울함이 생길 때, 부들부들 떠는 이유가 어떤 건지 경험한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가급적 요청대로 일을 우선 진행했으면 한다'는 말을 끝으로 격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BDM님께 개인 메시지를 드리며, 서로 격해졌던 감정을 해소하려 회의실에서 작게나마 회포를 풀었습니다만 아쉽게 스쿼드는 해체되고 기능 중심 조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기능 중심 조직, 스타트업


다시, 다른 프로젝트의 시작

회사에서 시간을 무료하게 지내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호통을 듣고, 회포를 풀고, 며칠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문득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사실상 마무리가 된 업무였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때 마침 눈에 들어온 건 '메인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어드민 서비스를 개선하면 어떨까?' 였습니다.


아직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프로젝트를 메인으로 주도하는 것은 회사와 나를 위해서도 좋은 결정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사이드 프로젝트 격인 사내 어드민 서비스를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해보고자 했습니다. 사내 어드민 서비스를 리뉴얼하기 위해 인프라를 살펴보고, 기존에 개발돼 있는 서비스를 살펴보니 많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인프라 구성보안 이슈스파게티 코드로 짜여진 서버 코드 등, 이를 개선하고자 프로덕트 매니저님께 서비스 개선 작업을 제안드렸습니다.


기존 어드민 서비스를 모두 이관하는 것과 더불어 이벤트 관리, 메시지 발송 서비스 등 서버 개발을 리딩하며 점차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회사의 메인 서비스의 권한을 받아 이슈를 처리하며, 활력을 되찾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기능 중심 조직의 특성상 저 혼자 업무를 주도하는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서버 개발을 완료하였으나, 중요한 화면 개발이 프로젝트의 우선순위에 밀려 마무리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드민 서비스 내 메시지 발송(KAKAO, Push, SMS) 기능과 이벤트 관리 기능, 권한 관리 기능 등. 많은 기능들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다른 프로젝트도 함께 병행했기에, 모든 업무에서 좌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번 격정에서 입은 상처의 흉터가 화끈 거리는 듯, 의욕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의 한계가 명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타트업의 유연한 장점을 느끼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밀도 있었던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도 같습니다. 





우연이 겹쳐 기회로

회사에서 멘토를 구할 수 없으면, 또다른 집단에서 구해보자는 말이 있죠. 물론... 멘토를 구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발자로서의 네트워크 형성을 하고 싶었던 터라,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돌아다니며 네트워크 세션을 활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여러 주니어, 시니어, CTO, Tech Leader 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기대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어,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부지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커리어 플랫폼(Remember)를 통해 이력서를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상하네, 내가 올려둔 Skill과 JD의 내용이 많은 부분 상이한데...'


의구심보단 우려가 먼저였습니다. 어차피 JD의 내용과 다르기 때문에 서류에서부터 불합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마음과, 서류전형 이후 바로 직무면접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이력서를 정리하여 제출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다르게 합격 메일은 빠르게 날아왔습니다. 하지만 안도감이 아닌 다른 걱정이 생겨났습니다.


'JD가 다른데, 왜 이렇게 빠르게 OK가 된 거지? 왜 OK를 한 거지?'


절반은 걱정, 절반은 궁금함이 생겨났습니다. '그래도 한번... 직무면접의 기회를 얻었으니, 이왕 면접에 가보자'. 다른 잡다한 생각은 접어두고, 직무 면접에 가서 궁금증을 해결해보자고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면접 약속을 잡고, 당일이 되어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우연이 겹치면 기회가 되기도 하는 걸까요. 컨퍼런스에서 만난 CTO님을 면접장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기분은 참 신선했습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마치고 Open Session Talk(OST)을 하는 자리에 모여 주최측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중 저와 개발 프레임워크의 의견이 비슷하신 CTO님이 계셨고, 질문을 드리지 못해 프로그램을 마치고 해산하는 시간을 이용하여 10분 남짓한 네트워킹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프레임워크와 개발 언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개발자로서 공감하며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잠깐이지만 즐거웠던 시간이 우연한 기회로 다가올 줄은 상상하기 어렵죠. 


면접 자리까지 많은 우연이 겹쳤던 것 같습니다. 컨퍼런스 주최분들과 가지는 Open Session Talk 에서 내가 질문을 날렸더라면? 그래서 나를 소개하지 못하고 집으로 귀가했더라면? 내가 네트워킹 하려는 용기를 가지지 못해 그대로 집으로 귀가했더라면? 컨퍼런스 참가 신청을 안 했더라면? 발표를 하지 않았더라면? JD를 읽고 나와 다르다며 거절했더라면? 면접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갈림길의 선택에서 기회를 좇아 다다른 곳에는 정말 기회가 있었습니다.


면접을 포함하여, CTO님과 함께 세 번의 면담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과거 겪었던 격정이나 좌절을 최소화 하고 싶었던 제 욕심도 있었고, 마침 기존 회사에 새로운 팀장님이 입사하여 개발팀의 방향성을 두고보는 시간을 가질지 고민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아쉽게도 기존의 회사에서의 변화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욱이 팀 문화와 스킬이 바뀌는 데에 있어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 와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이직 의사를 새로운 회사에 전달하고, 팀장님과 퇴사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팀장님께선 갑작스런 기존 멤버의 이탈에 당황스러워 하셨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기회를 축하해주셨습니다.


...


퇴사하기 전에 지금 대표님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2시간이 조금 넘게 점심도 먹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아쉬워하는 표정과 다른 곳에서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고 싶다는 요청은 새삼 감사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업무하는 모습에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었습니다. 명료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이야기해주는 건 '글쓴이'님이 정말 잘 해주셔서 더욱 믿음이 갔었는데 이렇게 떠난다니 참 아쉽습니다. 좀 더 좋은 조건으로 모시지 못해 미안했고 감사했습니다."


대표님 선물 :)


짧게 정리해보면, 대표님과 즐겁고 돈독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점심도 거르며 이야기를 나눴더랬죠. 입사하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대표님과 즐겁게 나누며 지금 떠나더라도 연말에, 혹은 기회가 닿을 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웃으며 마무리했습니다. 지나보면 참 뜨겁기도, 차갑기도 했던 11개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사다난한 1년 조금 안 된 시간을 담백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생각되네요.




에필로그

퇴사 시점에 이르고 보니, 이미 문서화가 대부분 되어있어 특별히 인수인계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심심한 2주를 보내며 여유롭게 동료들과 커피챗을 즐기고 떠납니다. 떠나는 길에 건승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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