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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Nov 27. 2022

나이지리아의 N-장녀가 시체를 버리게 된 이야기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아주 까마득한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이었던 전생 같은 시절. '한국문학통사'의 저자인 조동일 교수님의 강의를 우연찮게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해외 학회에 가면 유럽의 학자들이 아니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문학까지 어쩌면 그렇게 통달했냐고 놀라서 혀를 내두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앞으로 어떤 분야를 연구해야 하냐고 물으면 외쳤다고 한다.


"아프리카 문학을 읽으세요!"


물론 그 말이 진짜 아프리카 문학을 읽으란 얘기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이제는 유럽과 아시아를 넘어선 제3세계의 콘텐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뒤로 도서관에 갈 때면 진짜 가끔 아프리카 문학 코너를 기웃거렸다. 이번에도 도서관에서 뭘 빌려오면 좋을까 하고 청구기호 800번 대인 문학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한국문학, 일본 문학, 러시아문학을 지나 책장 끝까지 가서 만난, 아프리카 문학. 선명한 노란 표지에 인상적인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나이지리아의 젊은 여성작가인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의 작품으로 영화 판권까지 팔렸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에 있는 그녀의 손끝에서 사우스 코리아의 지역 도서관에 온 이 글의 여정 생각해 보며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율라가 전화했다. 언니, 내가 그를 죽였어. 
그건, 내가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우리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안으로 던져 넣었다. "엘리베이터 좀 잡아주세요!" 복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율라가 문이 닫히지 않게 열림 버튼을 누르려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쳐내고 1층과 닫힘 버튼을 여러 번 잽싸게 눌렀다. 



'아율라'라는 여동생의 살인 고백, 그리고 그것을 뒷수습하는 언니인 '코레드'. 이야기는 코레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체계적으로 일하기를 좋아하는 유능한 간호사 코레드. 청소에 관한 지식이 빠삭한 그녀는 시체도 깔끔하게 처리한다. 


"네가 한 짓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는 거야?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니?"
그녀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자신의 레게머리를 배배 꼬기 시작한다.
"요즘 들어 언니는 나를 괴물 보듯이 하더라."


아율라가 걸어 들어오자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본다. 마치 그녀가 햇살을 몰고 오는 것 같다.


벌써 세 번째, 남자를 죽인 여동생 아율라의 매력은 모두의 시선을 끈다. 키가 크고 '부두교의 조각상'같이 생긴 코레드와 달리 자그마하고 '브라츠 인형'처럼 생긴 동생은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엄마에게조차, 아율라는 더 사랑스럽고 귀여운, 챙겨줘야 할 딸로 취급받는다.


두 자매는 위선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매질을 한다. 나이 든 족장이 아율라에게 관심을 보이자 열네 살이었던 그녀를 보내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자매의 손에 죽는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아율라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칼을 챙긴다. 그리고 그 칼은 아율라가 만나던 남자를 셋이나 찌르게 된다. 시체를 계속 처리해주던 코레드는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그러던 중 아율라는 코레드가 짝사랑하던, 의사 타데까지 사귀게 된다. 물론 타데가 아율라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레드는 타데마저 찔릴까 두려워져 타데에게 동생을 조심하라고 한다. 하지만 타데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아율라를 질투한 코레드의 잘못이라며 아율라에게 얘기한다. 아율라는 그런 타데를 찌르려다가 자신이 찔리게 된다. 타데를 지독히도 짝사랑했고, 여동생의 무신경한 행동에 힘들었던 코레드. N-장녀인 코레드는 선택한다.


아율라에겐 내가 필요하니까. 나는 내 손에 피가 묻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에겐 내가 필요하다. 


나는 나이지리아에 가본 적도 없고 아프리카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코레드가 있는 하얗고 윤이 나는 병원과, 그녀가 주방에서 하는 요리의 냄새,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아율라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코레드만큼 똑 부러지진 못하지만,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무력한 어머니 밑에서 혼자 동생을 감쌀 수밖에 없고 늘 딱딱하게 굳어있는 코레드의 모습에 이입이 되었다. 짝사랑하던 인기남인 타데의 호흡 하나, 눈길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 졸이는 모습까지. 자기 혐오와 연민에 미칠 것 같은 밤들. 장녀란 이름으로 진 무거운 짐들.


아율라는 자그마한 체구에, 너무나 매력적인 데다가 조심성도 없어서 더욱 '단속'할 일이 많다. 언니의 눈에 동생은 다 자라도 아기 같을 뿐. N-장녀도 똑같구나.


나는 미국 드라마 CSI도 무섭다고 생각하는 간이 콩, 아니 개미만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밝고 통통 튄다고 느꼈다. 내가 좋아했던 '달콤살벌한 연인'이라는 영화처럼, 살인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달콤살벌한 숙명이 느껴졌다.

       


아버지도 어떤 조상에게 받아서 품게 되었을지 모르는 그 폭력성은 피해자인 딸들을 결속하게 하면서도 피해자를 가해자로, 살인자로 만들고야 만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현금을 찔러줘야 보내주는 부패한 교통경찰과, 족장에게 어린 여자를 보내는 문화 등이 너무 무겁지 않게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센스 덕에 전 세계에서 두루두루 읽히고 사우스 코리아의 작은 도서관에서 알게 되었다. 


끝에 옮긴이의 말에는 파리에 간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에게 '나이지리아에도 서점이 있느냐'라는 질문이 들어왔던 일화를 소개한다.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한 질문인가'하고 옮긴이는 전한다. 하지만 나 또한 아프리카에 있는 검은 사람들과 화려한 무늬의 천을 둘러입은 사람들, 시장에 가득한 아프리카 열매, 기관총을 든 해적들을 떠올렸지만 서점을 떠올리진 않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멀지만 가까운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 코레드와 아율라라는 매력 있는 자매를 탄생시킨 작가님이 한국에서 북토크 하는 날을 기다리며.

사진출처 https://guardian.ng/life/16-questions-with-oyinkan-braithwa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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