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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Dec 02. 2022

외계인의 지구별 여행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나는 여기 와서 청소란 걸 해본 적이 없어요.”

베레모를 비스듬히 쓴, 백발의 할아버지가 기분 좋게 얘기한다. 할아버지는 취재 기자를 데리고 방구석구석을 보여준다. 깔끔한 침대와 단정한 원목 테이블. 벽면에 걸린 아내의 사진. 할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널따란 대리석 복도를 따라간다.

  “밖에 나갈 필요도 없어. 여기가 바로 병원이야.”

그는 난을 치고, 색소폰을 분다. 2억에 150.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 붙은 실버타운. 교수였던 그의 노후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빈 검색창에 그녀를 찾아본다.

이순자. 출생 1939년 3월 24일. 배우자 전두환. 아니다.

이순자 작가. 출생 1947년. 서양화가. 아니다.

그 밑에, 그녀의 책이 뜬다. 하얀 깨꽃 일러스트가 가득한 그녀의 책. 2022년, 많은 사람이 그녀의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실버 취준생 분투기’ 발표 한 달 만에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신은 불멸하고 인간은 찰나의 생을 산다. 인간이 죽어서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긴다면, 신 부럽지 않은 삶이 된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발뒤꿈치에 불화살을 맞고 죽은, 아킬레우스의 이름을 남겼다. 이순자 작가는 아킬레우스이자 호메로스가 되었다. 인간인 나는 찰나에 집착한다. 그녀가 좀 더 행복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전국을 돌며 독자들 앞에서 자신의 책 어느 한 부분을 읽는 장면을 상상했다. 질문이 쏟아지고, 사회자 맞은 편의 그녀가 뺨을 붉히고 웃었겠지. 아니, 그녀가 그냥 따뜻한 밥을 한 번 더 먹고 한 번 더 웃고 갔더라면, 그랬다면. 부질없다. 내가 뭐라고 그녀가 불행했다고 단정을 짓나. 나는 다만 그녀의 요절 아닌 요절이 아까운 독자일 뿐이다.

 

  그녀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러니가 어렵지만, 자신의 인생이 아이러니라고 했다. 내가 그녀를 글로 만나, 생판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함이 그녀의 녹록지 않은 삶 덕분인 것도 아이러니일 것이다.  


   순자 씨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예순까지 모든 관혼상제를 집에서 치러내야 했다. 그 와중에 호스피스 봉사를 이십 년 이상 했다. 남편은 폭력을 행사하였다. 황혼이혼으로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예순이 넘은 그녀가 맞은 현실은 비정했다. 그녀가 부지런히 땄던 자격증들은 소용이 없었고 고강도 저임금의 일자리만이 노인들을 기다렸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저릿했다. 그녀를 받아주는 일터는 마음껏 그녀를 홀대한다. 내가 자식이었으면 당장 뛰어가서 따졌을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참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려는 어린이집 원장에게 따지고, 요양보호사로 가서 만난 할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들에게 맞선다. 그것도 모자라 수건 공장에서 만난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의 야근을 걱정하고 빗속에서 호박잎 파는 노점상 할머니를 안쓰러워한다. 그녀의 시선은 햇살처럼 어두운 곳에 고르게 퍼진다.


  2억에 150이면, 식사도, 청소도, 의료도 보장되는 곳에서 난을 치고 살 수 있다. 평생을 일해온. 지금도 전국에서 청소하는, 밥하는, 노인을 씻기고 있을 순자 씨는 그게 없다. 있어도, 자식에게 다 털린 뒤이다. 사회가 그녀들에게 바라는 건 노동에 익숙한 몸뚱이뿐이다. 늙고 가난한 여자들은 골수까지 너무도 알뜰살뜰하게 잘 쓰인다.   


  60년생 우리 엄마는 남자 형제를 위해 열일곱부터 공장에 다녔다. 결혼한 해에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뒀다. 엄마는 부지런히 남편과 시댁을 먹여 살렸다. 무역회사에서 못 하는 게 없던 미스 황은 배가 남산만큼 불러오자 애물단지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배불뚝이 미세스 황을 이 부서 저 부서로 돌렸다. 엄마는 눈 딱 감고 버텼다. 출산하면서 결국 내처진 그녀는 보험 아줌마가 되었다. 퇴근 후에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20킬로그램이 빠졌다. 평생 월경 기간에 따뜻한 방에서 쉬어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소원을 이뤄보지 못하고 폐경을 맞았다. 어릴 때 장롱 밑에서, 무역 일이 참 재미있었다고 했던 엄마의 영어공부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했다. 엄마는 테이프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다시는 무역회사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식당 아줌마로 환갑을 맞았다. 아직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을 등 붙이고 누워있는 법을 모르는 엄마. 이제는 좀 쉬라고 하니 엄마는 쉬는 법을 모르겠다고 한다. 워라밸, 조용한 사직, 힐링, 비혼이 화두인 자식 세대는 그들이 외계인처럼 멀게 느껴진다.      


"이런 눈치 없기는 자네처럼 얼굴 반반한 할마시들이 박카스 사세요, 하면 할아버지들이 오천 원, 만원으로 몸도 산다잖아. 그것보다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어?"
"?……"
(중략)
대용량 맥주 두 병에 소염제, 진통제, 두통약 안주는 술술 넘어갔다. …약통 한구석에 있던 시신 기증서와 장기기증 증서를 식탁에 꺼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돌봄 노동을 하러 갔던 부잣집에 있던 할머니에게 인간 이하의 모욕을 당하고 돌아온 날, 순자 씨는 술과 다량의 약을 삼킨다. 이 와중에 부지런한 그녀는 시신기증서에 장기기증증서를 꺼내놓는다. 엄마, 아니 순자 씨에게 따져 묻고 싶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뭐 받은 게 있다고 그 순간까지 그렇게~ 하나라도 못 줘서 안달이냐고. 역시 외계인이었냐고, 따져 묻고 싶지만, 그녀는 세상에 없다.

  2013년 작 어바웃타임이라는 멜로 영화에는 시간여행을 하는 남자가 나온다. 아쉬운 순간을 몇 번이고 되돌아가 좀 더 완벽하게 만들며 원하던 여자와 결혼에도 성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시간여행 능력을 물려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같은 날을 반복해 살아보게 된다. 무심히 지나갔던 일상을 반복해 만나며 처음에는 스쳐 지나갔던 작은 성취에 크게 기뻐하고, 잠깐 마주친 가게 점원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결국 바뀐 것은 그의 태도뿐이었다. 그는 깨닫는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이 멋진 여행에서 몇 등 칸에 탈지, 어떤 기내식을 먹을지에 급급하진 않았을까. 어떤 상황이 나를 굴복시키려 하더라도, 여행에서 마주치는 존재들에게 좀 더 다정하고, 친절할 수 있음을. 나는 순자 씨가 아니었다면 참 몰랐을 것이다. 30대인 내게는 외계인 같았던 순자 씨. 그녀는 한국 여성의 오래된 미래이다. 그녀가 미래에서 부친 편지가 더 부지런히 읽혔으면 좋겠다. 그녀 같은 불가해한 존재가 세상에 있었음에 뜨거운 위로를 받는다. 그녀의 글을 당신에게 권한다.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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