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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Dec 26. 2022

잃어버린 10년을 떠올리며

<골목의 조, 송섬>




"소식 들었어?"


"응..."


"난 못 갈 것 같은데... 잘 다녀오구..."



남선배가 죽었다. 겨우 한학번 위의 선배였지만, 우리와 거의 교류는 없었다. 군대도 가지 않았다는 그는 왜인지 학교를 늦게 졸업했다. 가끔 수업이 겹쳐 우리와 수업을 들었지만 몇 없는 다른 과 학생들과 조를 짜곤 했다. 그는 교사가 되려는 우리들과는 목표가 달라 보였다. 어깨까지 오는 장발을 흔들며 늘 독특한 과제 발표를 했던 그와 말을 섞었던 건 떨어진 내 펜을 주워줬을 때, 고맙다는 인사가 전부였다. 그는 우리가 20대의 끝자락에서 사회인이 되기 위해 각자 발버둥 치고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동기는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선배는 아직도 20대이다.


"서른이 다가오고 있어" (중략) 조는 갑자기 이렇게 중얼거렸다.

"서른이 뭐 어때서"

"네가 몇 살이지?"

"스물넷"

"넌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야. 서른은 무서운 거라고. 나는 긴 줄에 서 있어. 줄에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아무도 나가지 않아. (중략) 나만이 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

"끝엔 뭐가 있는데?"

"기요틴. 끝에서부터 하나씩 목이 잘리는 거야.
서른 즈음에 제 목이 잘리든 남의 목을 자르든 결정해야 해. 그게 세상의 이치야."


골목의 조는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이다. 1995년생 송섬, 이라는 젊디젊은 작가의 작품이다. 처음 책장을 덮고 갸우뚱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작가의 북토크를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AKw4m_9MAVU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20대를 까맣게 있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온몸으로 괴로워하며 살아낸 10년의 시간을. 그리고 스무 살에 어른의 세계로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되어 허우적거리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는 게 얼마나 무서웠던지를. 서른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을.



골목의 조의 화자는 스물넷 여성이다. 반지하에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고 고졸이다. 원래는 아버지와 단둘이 빵 공장의 사택에 살았지만, 열아홉에 아버지는 현관문에 목을 매달아 죽는다. 그녀는 캐드를 배워서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한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고양이를 '조'의 술집에서 찾는다. 스물아홉의 조는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허름한 술집을 운영한다. 여자는 건축사 사무소에서 권고사직을 당한다. 어느 날 반지하 방에는 움직임이 없는 중년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다. 가만히 서서 먹지도 자지도 않는 유령 같은 그 아저씨와 고양이 두 마리, 그를 보러 왔던 '조'까지 다섯이서 동거를 한다. 어느 날 벽지로 발려있던 곳에 창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골목'이었다. 조는 그곳을 '남겨진 골목'이라고 부르며 여자와 골목에서 햇볕을 쬐며 쉬기를 즐긴다.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할 말이 없다. …비슷한 이야기로, 부모에 대해서도 거의 할 말이 없다. … 필요한 것은 모두 책에서 배웠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얻은 지식은 이미 한 번 텍스트로 여과된 것이어서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책에서 배운 것들을 실제 감각으로 통역해 내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로 자라난 나는 늘 뭔가 모자랐다. 조금씩 더러웠고, 조금씩 뒤처졌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수채화 물감이 없어 사물함에 있던 포스터칼라로 그려도 되냐고 하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나는 한 시간을 아무것도 못 하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어야만 했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내버려 뒀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세상을 혼자 익혀나가는 것이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주인공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대화에 병적으로 서툰 탓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에 서툴다. 적절한 대꾸를 찾아내고, 말하지 않아야 할 내용을 점검해 잘라낸 뒤, 다시 유려하게 이어 붙여 꺼내는 일이 내겐 정말로 힘들다.



나이 들수록 낯설고 이질적이며 내게 호감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다정하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어떻게 하는지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었다. 엄마에게 배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저주의 언어 말고는. 그래서 나는 20대가 되어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된 어른으로 길러내야 했다.


나는 처음에 주인공이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평생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주인공이 결혼식장에서 하객으로 만난 '지민'이라는 여자와 두 번째 마주쳤을 때 바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점과 지민이 그녀에게 몹시 친절하고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나는 말이 잘 통하고 다정한 남자인 '조'와 같이 살면서도 동침하지 않은 것보다, 갑자기 나타난 유령 같은 아저씨의 존재보다 그게 제일 판타지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30대의 나에게 그런 갑작스러운 인간관계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민이 사이비 교도거나 다단계의 일원이었다면 설명이 쉬웠을 텐데. 그런데 나는 작가의 라이브를 보고 그녀가 글을 쓰게 된 이야기나 인물에 대한 고민들을 들으며 참 20대 답다고 느꼈고, 떠올려보니 나의 경계 없던 20대가 오버랩되었다. 지방에 살다가 혼자 서울에서 살게 된 나는 너무나 물렀고 날 것이었다. 나의 연한 살에는 자주 생채기가 났다.


당시 시급이 삼천팔백 원이었는데, 그것도 못 받고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운 좋게 학교 도서관에서 제대로 된 시급을 받고 월 백 시간씩 일할 수 있어서 매달 삼십팔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 그러면 숨통이 조금 트이다가 돈이 떨어지면 집에서 다니는 친구에게 500원짜리 샤니 빵을 얻어먹고 한 끼를 연명했다.


언젠가 졸업 앨범을 가지고 온 날에는 하루 종일 둘이서 그것을 보며 조의 고교 동창들 이름을 외웠다. 이동연, 얘는 의사가 됐어. 김현, 얘는 변리사 시험에 붙었대. 심현섭, 얘는...<의사 이동연>,<변리사 김현>,<제약회사 연구원 심현섭>,<변호사 이승우>와 <치과 의사 강영민>. 이름 앞에 아무것도 붙지 않는 것은 아마 조뿐인 듯했다.


지나보면, 남들이 가장 좋다는 20대에는 너무나 가난했고 무지했다. 주변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갔고 어느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나라고 확신했던 것들이 지금은 희미해졌다. 나는 30대에도 새로운 취향이 생겨났고 도전을 할 수 있었다. 평생 몸치로 살다가 서른다섯부터 스윙댄스를 배우며 내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서른여섯부터 글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가 못한 많은 즐거운 것들이 나를 기다릴지 궁금하다.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카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하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다보면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20대에는 다른 친구들의 SNS를 보면 극명하게 다른 삶에 내가 더 대조되어 보였다. 그런데 30대가 되자 다들 바빠서 SNS도 별로 안 하고, 남의 SNS를 들여다 볼 시간과 에너지도 없어졌다. 봐도 감흥도 없고, 내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뿐이다.


스물아홉의, 골목의 조에게 얘기하고 싶다. 인생은 나만의 레이스라 옆라인은 어느 순간 희미해진다. 혼란의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가 나를 기를 수 있다고. 의사 이동연, 변리사 김현은 길가의 돌과 같다고. 비교할 것은 어제의 나 뿐이다. 어제보다 더 행복하면 그만. 즐겁고, 유익하게. 그리고 30대를 기요틴으로 겁준 어른들이 된 나로서 조금 미안하다. 30대부터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고 왜 아무도 안 알려줬는지.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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