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Sep 30. 2019

기적, 그것은 간절함일까...

내 남자의 이야기(01)

(삶이라는 것이 때로는 고통을 준다고 여기면서도 그 고통 끝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선물같은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끝내 알아차린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절대자를 찾기도 하고 간절히 매달리기도 한다. 그에 대한 응답...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소설이 아닌 내 남자의 이야기...)


내가 29살, 냉동식품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부도를 맞았던 해. 엄마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셔서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회복 단계에 계셨는데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로서는 가족을 대신해 엄마의 병간호를 하게 되었다. 그때 같은 입원실에 계셨던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아주머니는 엄마보다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분이셨다. 엄마가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뒤에 머리에 붕대를 감고 병원으로 실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와 증세가 똑같고 수술 부위나 출혈 상태도 비슷했다. 또한 같은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해서 모든 것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엄마는 아주머니보다 몇 시간 전에 수술했을 뿐인데도 회복이 잘 돼서 수술에서 깨어나 식구들과 대화도 하고 안정을 취해가는 중이었지만 옆 침대에 누워있는 아주머니는 그때까지도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저 이도 어째 머리 상태가 나랑 비슷하다...그나저나 살려놨으면 밥을 줘야지... 쫄쫄이 굶기더니 배고파 죽겠네... 의사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냐.."


뇌 수술... 참 묘하다.  다른 곳을 수술할 때는 눈만 뜨고 긴 시간 누워 잘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뇌 수술은 경과가 좋으면 깨어나 바로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엄마처럼 별 참견도 다 한다.

식구들이 다 돌아간 후, 나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새벽 6시에 중환자 면회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면회시간이 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간 나는 엄마의 꼬재재한 얼굴부터 물수건으로 닦아내렸다. 밤새 잠을 잘 주무셨는지 눈곱도 제법 끼였다. 수술로 동여진 붕대 주변을 조심스럽게 물수건으로 닦아내고 다음에는 얼굴, 그리고 귀, 목, 팔과 다리 순서로 깨끗이 닦아 주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나온 아침 식사를 한 숟가락씩 떠서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다드렸다. 아침식사를 다 한 후에는 소변통을 비우고 침대 보와 환자복을 새것으로 갈아드렸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도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산소호흡기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옆에는 남편과 딸, 아들이 있었고 군인 한 명이 침묵으로 면회를 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아내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리고 두 딸은 허공을 바라보며 애써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복을 입은 군인은 그저 어찌할 줄 몰라 여기저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또래로 보이는 아들의 행동이 정말 이상했다. 그 와중에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의 발을 만지며 생글생글 웃고 발끝에 뽀뽀를 하고 있다.       

  

"저 녀석... 정신 나갔군..."


아들이란 녀석... 울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는 정작 자신은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얼굴은 하얀 데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다. 정말 공부만 한 것 같은 인상이다. 


"엄마~ 푹 주무시고 우리... 밝은 얼굴로 만나요~^^"


이런 미친놈을 봤나!! 싶을 만큼 이상한 말과 표정을 짓던 아들은 면회시간이 끝나고 가족과 퇴실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나간 보호자 대기실 한쪽 구석에서 혼자서 무릎을 꿇고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서원을 지키지 못한 저로 인해 어머니가 당할 고통을 알지 못했나이다.. 용서하소서!!"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나갈 수 없었다. 그의 기도를 듣는 순간, 아까와는 너무도 딴판인 그의 모습에 궁금증이 생긴 탓도 있었고 그의 간절한 기도에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원이란... 도대체 무슨 서원을 했다는 거지? 기도가 마치기를 기다렸던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일어서는 그에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망설였다. 같은 중환자지만 회복을 하고 있는 입장과 전혀 다른 입장에 놓인 그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말이라도 꺼내야 했다.



"저기요... 무슨 위로의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은 없고...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 엄마와 같은 부위에 증상도 같다고 하던데.. 괜찮으실 거예요... 금방 회복되실 거니까 걱정 말아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알아서 들어주실 겁니다.."


헛~!! 이건 뭔 소리냐??? 당시에 절에 다녔던 나로서는 정말 짜증 나는 소리였다. 위로의 말에 자신의 종교 소신을 밝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중환자 보호자실에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 이것은 중환자실의 환자가 위급하다는 신호다. 곧 누군가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신호... 그러니 보호자는 속히 내려와 달라는 호출이다. 어쩌면 사망선고를 각오해야 하는 ...


간호사가 뛰어오고 보호자를 다급히 부르기 시작했다.


"*** 보호자분~ 호출이요~ 가족분들을 빨리 불러주세요!"


그때, 중환자실로 달려가야 할 녀석은 병실의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뭔지는 모르지만 덩달아 같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병원의 제일 높은 층까지 뛰어 올라가며 숨을 헉헉거렸다. 당시에 적십자 병원은 제일 꼭대기 층에 환자들을 위한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 문은 잠겨져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평일에는 잠겨져 있는 문... 그 잠긴 교회의 문고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다시피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녀석은 가슴에서 북받쳐 오르는 깊은 설움으로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살려 주세요.."


저 멀리 계단 밑에서는 보호자 찾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울면서 기도하는 녀석.. 나는 그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열심히 그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척 간절하고 애절한 그의 기도를.. 임종을 앞둔 아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후, 녀석은 조용히 일어났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녀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이제 면회를 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곧 다가온 저녁 면회시간이 겹쳐 나도 엄마를 면회하게 되었다. 아침과 마찬가지고 얼굴부터 차례로 물수건으로 닦아드리고 식사를 드시게 하고 환자복을 한복 시키는 일을 순서대로 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엄마의 발에 연신 뽀뽀를 해 댄다. 그도 모자라 입술에도 뽀뽀를 해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미친놈이야.. 충격이 너무 컸나 보군..살다 살다 즈그 엄마한테 저렇게 살갑게 하는 놈은 처음이네.. 그렇게 정이 들었을까...암만해도. 정상은 아니야~"


다행히도 아주머니는 살짝 위기를 넘기신 것 같았다. 저녁 면회 후, 대기실에서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아까는 왜 그랬냐고.. 무엇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거냐고.. 그 녀석은 희한한 대답을 헀다.


"괜찮아요.. 하나님께 서원했더니 다시 제게 응답을 주셨어요~"


"무슨 응답을 주셨나요??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내일 너와 함께 죽을 먹으리라..."


엥~~?? 분명히 돌아가신다고 보호자 찾고 가족을 부르라는 말을 직접 들었는데 이건 무슨 소린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계속 늘어놓았다. 녀석은 자신의 식구들에게조차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새벽 즘. 잠을 뒤척이다 옆에 누워있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살아온 이야기, 가족 이야기, 엄마 이야기 등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내가 한살이 더 많았지만 그냥 친구하기로 했다. 오래전 이야기로 녀석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게 흠이다.



녀석은 그야말로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당시에 동국대 철학과 석사를 마쳤고, 아버지는 대구 **대학 철학과 교수, 막내 동생은 서울대 치의학과 인턴, 누나는 외대 불문학 박사, 자형은 육사 출신 대위로 예비 박사까지 줄줄이 있는 그런 집안이었다. 속으로 뭐... 이런 집안이 다 있는지 내심 부러울 뿐이었다.


녀석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어지간한 신앙심이 아닌데 동국대 철학과라니... 사실, 종교적으로는 안 맞는 부분이었다. 절실한 기독 침례교 집안이었던 녀석은 불교계인 동국대를 다니며 종교적인 갈등이 깊어졌을 터. 동국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중단한 상태여서 동국대 입장에서는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인 것 같았다. 그렇게 종교적인 갈등 속에서 녀석은 하나님께 학위를 포기하고 공부를 중단할 것을 서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와 철학과를 다니는 후배의 끈질긴 설득에 다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돌아온 날,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하신 녀석의 어머니가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며 겪었던 고생과 불행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 여기며 하나님께 서원했다는 녀석의 기도...


"하나님.. 다시는 책을 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엄마를 살려 주세요..."


도대체... 기적은 있는 것일까?? 정말 녀석이 서원한 대로 엄마가 일어나 죽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을까? 하여튼 내일이 되면 알 수 있겠지... 그러나 새벽이 돼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날과 상황은 여전히 똑같았다.


"그럼 그렇지.. 서원은 무슨... 정신없는 소리지...ㅉㅉㅉㅉ"


나와 녀석은 각자의 엄마를 씻기고 침대 보를 갈아끼우고 환자복을 환복한 후 퇴실했다. 그래도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돼서야 회사일을 간신히 마치고 면회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음처럼 서 버렸다. 아침까지 회복 기미가 전혀 없으셨던 아주머니가 녀석의 부축을 받으며 앉아 계신다.


"둘째야~ 이이가 낮에 눈을 뜨고 인났는데 자기 아들을 찾더라...멀쩡한 게 나보다 더 좋아 보여~"


녀석... 여전히 웃고 있다. 날 보고 웃고 있다. 그때, 수간호사가 한마디 한다.


"보호자분~죽 나왔으니까~ 급하지 않게 떠먹이시고요, 사레들려 기침하면 안되니까 조심하세요. 기침하면 머리 울려서 안 좋아요.."


이것은... 기적이다. 그가 날 보면서 웃고 있다. 까불지 말라고... 난 웃지 못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기적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간절함... 그 간절함은 바라는 실상에 대한 믿음이고 그 믿음은 긍정의 에너지로 힘을 주는 것 같다. 모든 일에 간절함을 담는다면 아마도 기적의 순간들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