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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1. 2019

기도의 서원, 엄마를 향한 간절한 사랑

내 남자의 이야기 (02)

( 남편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삶의 흔적들... 때로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필연같은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가슴에 울림이 남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아주 작은 시간의 틈을 들여다 봅니다.)



기적.... 그래, 기적은 분명히 일어났다. 눈물 콧물 다 쏟아가며 녀석은 간절히 매달렸고 그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었다. 그 이후로 그 녀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다행히 회복기에 들어간 친구 어머니는 이후 엄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분 모두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무학이어서 더욱 잘 통했나 보다.  나는 속으로 '두 분 다 붕대로 칭칭 감은 머리를 하고서는 뭐가 그리도 즐거우실까?' 생각하며 두 어머니들의 수다에 잠시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 enriquelopezgarre, 출처 Pixabay


그런데 그 녀석,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늘 자리를 비우지 않았던 친구가 보이지 않자 아주머니도 내심 불편해 보였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어머니~요즘 경수가 안 보이네요.... 벌써 일주일째인데요..." 
(경수는 임의로 지어낸 이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 내가 걔, 논문 쓰라고 집에 보냈어요..."


논문이라.... 하나님께 서원을 한 경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의 사연이 학교 측에 알려지고 어머니가 수술에서 깨어나 회복 단계에 계시다는 것을 들은 대학교 관계자와 철학과 지도 교수는 경수의 누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끈질긴 설득을 당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나는 이 사실을 어머니께 알리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는 경수의 앞날을 위해  협박 아닌 협박으로 논문을 쓰도록 권했던 것 같다.


"경수야... 네가 박사학위 논문을 포기하면 나도 치료받지 않을 테다... 그러니... 가서 논문이라도 제출하고 와라..."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경수는 두문불출 철학 박사를 위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수 어머니의 부탁으로 나는 집 주소를 받아 들고 경수에게 찾아갔다. 힘들어할 경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전해 줄 겸. 그리고 나도 녀석의 거취가 궁금했던 까닭이었다.

© Pexels, 출처 Pixabay

경수 집은 역촌동과 갈현동 사이였던 것 같다. 마당이 넓은 이층 양옥집이었는데 벨을 누르고 열린 대문에서 현관까지 꽤 거리가 있었던 부잣집이었다. 경수 집과 신사동에 위치한 우리 집과는 그리 멀지 않았다. 경수 혼자 지키고 있는 집에는 어쩐지 휑~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 아무래도 있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집안은 생기를 잃은 것이리라.



경수는 어느 누구의 잔소리도 없는 집에서 씻지도 않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퀭하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떻게 왔어? 집은 또 어떻게 알고..."


"얌마! 소식도 없고 궁금해서 왔지... 집이야 어머니가 알려 주셨고... 공부한다며?? 논문 땜에... 그러니까 계속 공부나 하지.. 왜 엄마 속을 썩이냐? 한 살 많은 친구 겸 엉아가 좋은 말로 할 때 박사 해라~ 니네 엄마... 평생 뒷바라지 날리게 하지 말고..."


현관에 들어서면서 주고받는 안부라는 게 조금 전에 봤던 사이처럼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다. 뭐... 그럴 사이도 아니니까.. 그리고 거실을 지나 경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 안방보다도 커 보이는 녀석의 방에는 사면에 걸쳐 뺑 둘러 책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방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 그것이 전부였다. 마치 도서관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들이 나에게는 진풍경이었다. 그 책들이란.. 도통 알 수 없는 영문자와 한자들로 채워진 원서들뿐. 한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야... 너 이거 다 본 거야? 내가 아무리 대학을 뒷문으로 나왔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냐?? 어떻게 아는 글자가 별로 없냐..."


"이건 얼마 안 되는 거고... 사실은 책이 더 많아... 한두 번 봐서는 나도 이해가 잘 안돼서 다들 대여섯 번씩은 봤을걸..."


그래... 내가 처음 녀석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 맞다..'미친 녀석'이 분명해... 이런 녀석이랑 같이 대화를 더 길게 했다가는 내가 제정신이 아닐지 몰라... ㅋㅋ 그리고 논문을 써야 하는 녀석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잠시 후 파이팅을 힘차게 외쳐주고 헤어졌다. 그리고 사흘쯤 지나 녀석은 말쑥하게 정장 차림을 하고 면회를 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며... 확실히 밝아 보이는 경수의 모습에서 어머니도 궁둥이를 툭툭 치시는 것이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 alfonsmc10, 출처 Unsplash


다음날 새벽... 중환자 보호자실 벨이 사정없이 울려댔다. "삐삐삐삐 *** 환자 보호자분! 빨리 중환자실로 와 주세요!!" 잠결이었지만 친구 어머니 이름이 분명했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즉시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 보호자가 아무도 없어요.. 집으로 전화하세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경수와 누이들 그리고 자형이 중환자실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아버지만 대구에서 급하게 올라오시는 중이라고 하며 식구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후유증... 곁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수술 후유증이라는 것과 갑자기 혼수상태가 닥쳤다고 한다. 수술 부위나 다른 곳의 뇌출혈 소견은 없지만 큰 수술로 뇌를 건드려 놨기 때문에 그 후유증으로 급작스러운 발작 증세가 왔다고 의사 선생은 설명하고 있었다.


© DarkoStojanovic, 출처 Pixabay


우리 엄마도 수술 후유증으로 가족들의 애를 태우셨는데 한 열흘 동안 갑작스럽게 어린아이가 되어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했던 터라 수술 후유 증세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그런데 경수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증세가 도지신 것이다. 


경수 아버님이 올라오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주치의와 면담을 하고 가족회의를 하는 모습을 지나가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각자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일어섰다. 경수 아버지는 장례 절차를 준비하셨고, 누나와 동생은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혼자 남은 친구 녀석... 경수는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더니.. 한동안 넋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쓰고 있던 두꺼운 안경에는 눈물로 얼룩이 져있었다. 바로 어제저녁까지 경수를 반기며 궁둥이를 툭툭 치시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피로했던 까닭일까. 나도 모르게 깜박 잠들었던 사이 눈을 떠 보니 경수가 없어졌다. 


"저 ~ 간호사님~ ***환자 또 무슨 일 생겼나요? 보호자가 안 보여서요..."


"환자는 계속 혼수상태 그대로고요... 다행히 혈압 수치는 더 오르지 않고 다르 수치도 더 나빠지지 않았는데, 물어보시길래 그래도 준비는 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   


© huoadg5888, 출처 Pixabay

                        

녀석은 또 어디 갔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맨 위층 교회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문이 열려 있었다. 낯선 교회. 중학생 때 초코파이 준다는 말에 한 번, 고등학생 때 문학의 밤 초대로 가 본 후로 내 손으로 교회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듬성 듬성 몇몇 성도들이 앉아 작은 소리로 각자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고요함 가운데 맨 앞줄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흐느끼고 있는 경수를 발견했다. 경수는 또 그의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난 그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녀석의 등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참... 이런 데를 다 들어와 보네...잘은 모르겠지만 ... 경수네 하나님... 저 친구 기도 좀,, 잘 들어 보시고 웬만하면 들어 주시죠~ 제가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기도하는 거 처음 보거든요.. 효자잖아요... 그럼  복 좀 주세요..."


나는 답답한 속마음을 이렇게 교회라는 곳에서 경수의 하나님께 중얼대며 요청하고 있었다. 경수는 그렇게 자신의 기력을 다 썼는지 그 자리에 지친 듯 쓰러졌다. 나는 녀석의 축 늘어진 몸뚱아리를 부축하고 내려와 보호자실에 눕혔다. 된장 할... 진짜 무겁다... 몸무게가 이렇게 많이 나가나??


© huoadg5888, 출처 Pixabay


낮에 잠시 회사 정리 문제로 일을 본 후, 저녁 면회 시간 때 녀석 가족을 보았다. 경수 어머니는 여전히 의식이 없으신 채, 호흡기를 달고 계셨다. 그런데 녀석은 또 이상한 행동을 하며 자신의 엄마의 발에 뽀뽀를 하고 손가락을 사랑스럽게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저런... 변태 같은 놈... 역시 적응이 안 돼...그런데.. 쟤... 또 왜 저러지?? 또 뭐야??"


나는 지난번 경수의 일을 떠올리며 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면회 후에 모든 가족이 보호자실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밤이 고비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녀석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지난번과 똑같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너 또 왜 웃고 있냐?? 아버지 얼굴 안 보여? 너무 힘들어 보이시던데.. " 

      

"괜찮아~ 다 알고 계시니까..."


"누가???? "


난 눈치 하나는 빠르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아 혹시... 저기 .. 그분??'이라고 말했더니 녀석은 맞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웃기만 했다..


"역시.... 너는 대체불가구나... 저기 봐! 너네 가족들조차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잖아.... (속으로 생각)"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제는 헛소리로 들렸다. 

© ThePixelman, 출처 Pixabay
© ThePixelman, 출처 Pixabay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고비를 잘 넘기신 탓인지.. 녀석의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인지... 녀석의 기도는 그렇게 어머니의 생명줄을 가느다랗게 붙잡고 있었다. 장례준비를 서두르던 찰나에도 녀석이 가진 확신은 누구도 변명을 하지 못하게 했다.


아무튼 일반 병실로 옮기신 울 엄마의 퇴원 날짜가 다가왔고 퇴원을 하고 나서도 나는 녀석을 찾아갔다. 삼 사일 간격으로 녀석을 찾아가 말 벗도 해 주고 함께 식사도 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녀석의 기도 때문인지 어머니는 여전히 호흡기를 의지한 채 의식 없이 시간만 보내고 계셨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아간 것이 병원에서 친구를 본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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