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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2. 2019

엄마를 향한 사랑, 그건 운명일까?

내 남자의 이야기 (03)

(사랑이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행복한 결실을 맺는 사랑도 있지만 자신을 버려야하는 사랑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우리는 판단할 수 없지만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경수와 병원에서 헤어진 후,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본격적으로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을 밟아야 했기 때문에 두어 달을 아주 바쁘게 보내야 했다. 물론 매일을 술로 살아야 했던 기억이 전부였지만... 미수금, 부채, 직원들 월급 문제 등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경수 어머니였다. 돌아가셨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경수 어머니였다. 당시 적십자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던 형에게 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하셨다는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 될 때, 꼭 집으로 와 달라고 부탁을 하시고 끊으셨다. 나는 다음날 바로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아~!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니...  녀석의 하나님이 진짜 기도를 들어 주신걸까? 가 보자... 일단 가 보면 알게 되겠지... 근데.. 그 자식은 뭘 하고 어머니가 직접 전화를 하셨지??"



수개월 만에 경수 집을 찾아간 나를 맞아 준 것은 어머니와 경수의 누이들이었다.


"어머니~ 건강 회복하시고 퇴원하셨네요~ 다행이고 축하드려요~^^"


나의 축하 인사와 안부의 말에 녀석의 어머니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즈막히 푸념을 내뱉으셨다.


"축하는요...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새끼 발목이나 잡고 숨 쉬고 살아가는 주제네요..."


이건 또 뭠미??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씀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녀석의 누이가 말을 이어갔다.

적십자 병원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 경수 어머니는 계속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시고 한두 번의 고비를 더 넘기셔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셨다고 ... 그런데 문제는 아들 경수 녀석이었다. 경수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것.


경수는 녀석의 하나님께 서원한 이후로 논문을 썼다가 다시 어머니가 위급해 지자 논문 쓴 자체를 울며 회개를 했다고 한다. 다시는 개인적인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하며 대신 평생을 봉사하며 살겠다는 서원을 그의 하나님께 다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퇴원하자마자 모든 학과 일정에서 손을 뗐고 현재는 은평구 사회복지관 장애아 시설에서 무료 봉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으로서는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을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나는 녀석의 방으로 들어가 봤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책장의  책들이 모두 반대로 꽂혀 있었다. 책 표지의 제목이라도 보면 다시 책을 잡을 것 같아서 모조리 뒤집어 꽂아 놓은 것이다.


"지독한 고집불통 녀석... 무엇이 너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냐?? 너의 서원이라는 것이 정말 엄청난 무게감을 갖고 있구나..."

가족들은 내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녀석을 다시 학교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나는 그럴 힘이 없었지만 간절한 어머니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경수가 있는 복지관으로 찾아갔다.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자발적으로 봉사를 했는지 복지관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덕분에 녀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녀석은 15~16세 남아들의 목욕 봉사와 빨래 봉사에 여념이 없었다.


"야~ 경수야~~잘 있었냐~"


".... 어떻게 알고 왔어?"


녀석의 얼굴은 그새 많이 깊어졌다. 고뇌의 흔적이  깊이 자리한 얼굴에는 모든 것을 비운 듯한 자조적인 미소와 평온함이 느껴졌다. 먼 발치에서 녀석의 걷어붙인 소매로 드러난 팔뚝을 보면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복지사 관계자분이 와서는 날 잡아끌더니 조용하게 말을 꺼냈다.


"죄송한데... 친구분이신가 봐요.. 저분 좀 데리고 가 주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족분들과 학교분들이 찾아오셔서 부탁하는 데 말을 안 들어요... 우리야 고맙지만, 저런 인재가 이런 곳에 있는 것도 국가적으로 손해잖아요..."


조금 후, 녀석과 나는 커피 한 잔씩을 들고서는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다. 할 말도 없었고, 해 줄 말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나의 짧은 질문에 녀석은 한숨을 쉬고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이번 주까지만 여기 있을 거야, 다음 주부터는 강원도 원통 근처 고아원에 갈 거야.. 버려진 아이들이 어렵게 살고 있대.. 그에 비하면 여기는 호텔이야... 사람들이 자꾸 날 찾아오니까... 여기 계신 분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흔들릴까 봐... 그냥 모른척해 주면 좋겠다. 엄마한테 못 만났다고 얘기해 주고... 특히 내가 강원도로 가는 거... 만약 이야기하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것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녀석은 평생을 자신의 서원대로 봉사만 하면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그 결심을 꺽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일정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고 한참 후에 못 만났다고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녀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녀석의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바라신 것일까? 경수는 간절함을 담아 자신의 것을 희생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저버린 나약함으로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경험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대가로 목숨처럼 사랑했던 엄마를 살렸던 것이다. 엄마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그냥 조용히 신이 지시하는 곳으로 스러지듯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사랑... 나는 녀석의 지독한 사랑을 탓할 수 없다. 자신의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할 수 있었던 용기도, 그리고 모든 것을 진짜로 버리고 떠날 수 있었던 처절한 고통도,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었다. 지금도 녀석이 떠오른다. 철저하게 외로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녀석의 뒷모습. 그리고 닫힌 교회 문고리를 잡고 가슴 저리게 파고들며 울부짖던 녀석의 간절함.... 신은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고 기도에 응답하셨나 보다.. 이미 그렇게 녀석의 길을 예비하고 계셨는지도...


나는 기적을 잘 모른다. 잘 믿지도 않는다. 특히 기적을 운운하며 사람들을 홀리는 사이비, 이단같은 단체들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으로 자신을 내 버린 녀석의 간절함은 하나님조차도 녀석의 편에 서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녀석의 간절함은 기적이었다.


친구...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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