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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3. 2019

내 생애 처음으로 오토바이 타던 날

내 남자의 이야기 (04)

(내 남자의 이야기는 남편이 살아온 평범하지 않은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글입니다.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 그러나 누구도 따라하면 안되는 그런 이야기... 오토바이크는 정말 위험하죠...)


나의 오토바이 이력서... 뭐... 유난스럽다면 유난스러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만하면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오토바이에 대한 연민이 남아있다.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6대를 폐차했다. 승용차와 트럭 밑으로 들어간 사고만 해도 14번, 그 외에 상당한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공중 묘기도 있었다. 카메라에 찍혔다면 기술 난이도 3.0 정도 되지 않았을까? ㅎㅎ 그리고 공중에서 반바퀴를 돌아 착지하는 사고 2번. 물론 예쁘게 두 발로 착지하면 좋았겠지만 모든 착지는 등이나 머리, 옆구리, 엉덩이로 했다. 그 가운데 죽을지도 모른다며 병원 응급실에서 급하게 보호자를 찾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벌금 딱지를 끊은 것만 해도 수십 장... 그렇게 나는 오토바이와 끈질긴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결혼한다고 아내를 가족에게 인사를 시킨 자리에서 엄마는 내심 걱정스러운 말로 첫 마디를 건넸다.


"둘째가 평생 오토바이 타지 못하게 해라... 아예 사지 못하게 해..."


© Up-Free, 출처 Pixabay




나는 오토바이 면허를 딸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방학 때, 시골 외가 댁에서 외할아버지가 타시던 88오토바이를 배우다가 서투른 운전에 빨래하시던 할머니를 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으셨지만 그때 이후로 원동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자전거조차도 타기 싫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자재 창고 정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름 최선을 다하며 꼼꼼하게 재고 정리까지 해내는 모습에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완벽주의자라는 별명과 함께 칭찬도 많이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벽주의자'라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살다 보면 완벽한 것보다 털털한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한 푼 두 푼 모이는 통장을 보면서 내심 뿌듯했다. 학비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지만 적성에도 크게 반하지 않아 성실하게 일을 했다. 나의 장점을 꼽으라고 말하라면... '성실과 정직'이다. 이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마누라는 나에게 정직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여자들은 왜 그리 속이는 게 많을까?)


© Scozzy, 출처 Pixabay




어느 날, 오토바이 배달 직원들이 물건을 뒷자리에 가득 싣고 물건 배달 원장을 들여다보며 자신들이 돌아야 할 코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친한 동생도 서너 시간이 걸리는 코스를 어떻게 하면 빠르게 배달할지를 고민하며 배달 동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오늘 컨디션이 영~ 안 좋아 보이는데~"


"형~ 오늘 새벽까지 달렸어요.. 지금도 술이 안 깨 죽겠네..."


"야! 그럼 쉬어야지! 이거 또라이네!!! 죽을라고 환장했냐? 안 그래도 오늘 배달 만땅인데... "


"ㅎㅎㅎ 괜찮아요~! 제가 누굽니까... 오토바이 박사잖아!"


당시에는 사고 없이 오토바이 3년이면 박사학위 받는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처럼 오토바이 성능이 좋았던 시대가 아니었던 만큼 사고가 많았던 때였다. 오토바이를 타는 데는 이골이 나 있는 녀석은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걱정은 하면서도 믿음이 갔다. '조심해라~'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리고 약 40여 분이 지나자 창고에는 난데없이 비상이 걸렸다. 업체에서는 물건이 배달이 안됐다며 장사에 차질이 생겼다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부장님은 갑자기 병원 간다고 급하게 뛰어나갔다. 창고 한구석에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 직원들도 있고... 괜스레 웅성거리는 분위기는 무언가 좋지 않은 기운들로 가득했다. 어제저녁 술로 달렸던 녀석이 결국은 큰 사고가 나서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녀석은 진짜... 괜찮은 건지...


나는 걱정을 뒤로하고 구석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 한 대를 끌고 왔다. 녀석이 배달해야 할 곳에 차질이 생겼으니 어떻게 해서든 직접 배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참... 이게 뭐람!!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젊었기에 들었던 객기 같다...) 그리고 배달 직원에게 작동법과 운전법을 물었다.


오토바이 기종은 '시티 100', 시동 걸기, 기아 넣기, 브레이크 잡기 등... 약 30여 분을 운전하는 법을 배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연습을 했다. 


"이게 운전하기는 제일 쉬워요... 그래도 80km는 금방 넘으니까 조심해야 돼요...."


그렇게 나와 오토바이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처음 몰아보는 것이지만 금새 익숙해지는 것이 쉬웠다. 아니!! 쉬워 보인 것뿐이다!


다시 녀석이 배달해야 할 물량을 뒤에 실었다. 15kg 나가는 냉동식품 두 박스, 그리고 배달 코스를 확인하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오토바이 배달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코너를 돌 때는 뒷자리에 실린 냉동식품의 무게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며 간신히 버텨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런데 연신내 예일여고 앞 대로변을 지날 때쯤이었다. 2차선을 달리던 나에게 뒤에서 빵빵 거리며 신호를 주었던 차량 때문에 나는 3차로로 차선 변경을 시도했는데 뒤에서 달리던 차량도 나를 추월한다고 같은 3차로로 속도를 냈던 모양이다. 그 순간 차량이 오토바이 후미를 들이 받았고 나는 덕분에 오토바이를 벗어나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공중 반바퀴의 고난도 기술 3.0의 사고는 내 인생 오토바이 운전 첫날, 그렇게 일어났다. ㅜ.ㅜ


"아!! 놔~~~! 이렇게 죽는 건가!!" 


사실, 창고 자재 정리보다 배달 알바비가 2배였다. 그래서 어쩌면 무모하게 도전했던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은 천만다행히도 차 보닛 위에 등으로 떨어져 큰 외상이나 내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차량 보닛은 아주 심하게 구부러지고 차의 앞 범퍼 부분은 볼썽사납게 떨어져 나갔다. 


가해 차량은 포니투였고 여성 운전자였는데 이 역시도 초보운전자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보닛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괜찮아요?? 여기 구급차 좀 불러요! 그리고 경찰에 빨리 신고해 주세요~!!"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아주 순식간에 상황이 파악되었다.


"큰일이다! 나는 현재 무면허... 원동기 면허도 없고 승용차 면허도 없고... 아무리 피해자라고 해도 경찰이 오면 다 들통날 텐데...."


더불어 갖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경찰이 오면 분명히 회사로 연락이 들어갈 것이고, 가뜩이나 어수선한데 나까지 문젯거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물건을 기다리는 거래처 식당도 떠올랐다. 냉동식품이라 시간이 지체되면 다 녹아버릴 테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내 아르바이트 비는???                       

© harleydavidson, 출처 Unsplash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순간, 아픈 것이 삭~ 사라지는 듯했다. 벌떡 몸을 일으키며 쓰러져 있는 오토바이를 세웠다. 오토바이는 차량이 뒤에서 받치긴 했지만 흙받이가 깨진 정도로 운행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가해자인 여성은 몹시 놀란 모습으로 운전대를 붙잡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줌마!! 오늘 재수 좋은 줄 알아요!! 내가 배달이 밀려서 그냥 갈 거니까! 앞으로 운전하지 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해요!!"


요즘 같은 때 이런 말을 했다가는 여성비하 발언으로 고발 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여성 운전자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지금과 많이 달랐던 때였다.                       


© zaidahmed_97, 출처 Unsplash


나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배달을 잘 끝냈다. 그 뒤로 운명처럼 오토바이는 내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젊은 날의 사고는 지금도 비가 올 때마다 내게 신호를 보낸다. 다리와 팔, 그리고 등과 허리가 쑤시는 증세.... ㅋㅋ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빠라바라 빠라라~~/ 오빠~ 달려~"


그 시절, 곱슬인 나는 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다. 헬멧 없이 달리는 통에 바람에 눈이 시려 눈물을 흘리며 탔었다.


"오빠 울어??"


당시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귀엽게 들린다. 물론, 지금의 아내는 아닌지만... ㅋㅋ

         



© harleydavidson, 출처 Unsplash


이제 중년의 나이가 돼서 지나가는 할리데이비슨을 보면 자꾸 시선이 끌린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한적한 시골길을 멋지게 달리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래서 요즘은 아내에게 자주 이야기를 꺼낸다.


"자갸.... 할리... 할리데이비슨.... 어때?? 이건 그냥 승용차 수준인데...뒤에서 내 허리를 꼭 잡고 달리면 진짜 예술이야~ 난, 생각만 해도 좋은데~워뗘~??"


ㅁㅁㅁㅁㅁ 아내는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을래~!"


아.... 안되는 건가?? 그냥... 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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