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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4. 2019

보고 싶은 친구, 송 병장

내 남자의 이야기 (05)

( 남편이 경험한 다양한 일들은 평범한 듯, 어쩌면 그렇지 않은 인생살이가 참 많은 이야기로 불쑥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쓰다 보니, 화자는 남편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또 다른 방향을 맞이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졸업을 한 이후에도 계속 같은 종류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동종 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인정도 받았다. 나는 언제까지 아르바이트할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냉동식품을 배달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업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당시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있었는데 모두 초창기 사업을 시작하는 때였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장터국수, 꼬랑꼬치, 투다리 등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체인점 사업이 기존 식당들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이유는 영업을 곧잘 하면서 배달에 능숙했던 것을 좋게 평가한 체인점 본사 사장님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로 식자재를 유통하는 일에 직접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 ceveoh, 출처 Unsplash


나는 직장을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식자재 유통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작은 창고 겸 사무실을 임대하기 위해 보증금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가진 돈이라고는 고작 몇 십만 원이 전부였다. 아주 저렴한 사무실을 구한다고 해도 최소 2백만 원이 필요했다. 나는 엄마에게 먼저 도움을 구했지만 오히려 엄마로 인해 가족들과 서먹해지는 일로 번지게 되었다.


"***야~! 둘째가 혹시 돈 얘기하면 한 푼도 빌려주지 마라... 너 돈 떼이고 나한테 하소연해도 못 갚아준다!! 하고많은 것 중에 사업인지 장사인지 한다고 지랄인지 몰라!!


오라는 회사도 많은 놈이... 얌전히 직장이나 댕기다 결혼하고 살면 되지... 무슨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알다가도 모르것다! 


저놈, 저거 귀가 커서 이문이 넓어 맨날, 넘 말만 듣고 살까 봐 그렇게 잔소리 했구만... 결국 사단이 났네.. 하여간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엄마는 평소 나와 친한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아주 좋은(?) 충고를 하셨다. 그것이 나중에 의 상할 일을 방지하는 일이었다고 말씀하셨다.. ㅜ, ㅜ    


© claudiotesta, 출처 Unsplash


나는 그렇다고 내가 벌인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이미 여기저기 식품사업을 한다고 소문이 난 상태였고, 그동안 영업을 하면서 거래처도 몇 군데 확보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가친지 중에서는 나를 돕겠다고 선뜻 나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나는 군대 동기 송 병장을 찾아갔다.


송 병장은 군대에서 조리사로 장교 식당에서 근무했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공릉동에 있는 공릉가든이라는 한식당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회에 일찍 적응해서 나름 탄탄한 자리를 잡고 있었던 송 병장과 나는 간만에 소주잔을 부딪히며 군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송 병장은 전라도 무안 출신이었다. 걸쭉한 사투리가 한번 들으면 잘 안 잊히는 친숙함이 있었다.


"니가 야... 날 영감님 공관에 안 불렀으면 참 군대 생활 편하게 했어야. 위로 고참도 없고 완전 꽃 피는 봄날이 되아부렀을 것인디... 너 땀시 완전 꼬여부러가꼬... 말년까지 기양 조저부렀으야...흐미~ 나가 또 그때 생각난께... 욕 나올라 그라네... 니미... 다 지났는디.."


나는 변명할 수 없었다. 송 병장과의 특별한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다 사실이었다.

     

© Standpoint, 출처 Pixabay


송 병장과의 인연....


나는 처음 포천 이동 ** 군단 비서실에 배치되어 군단장 당번병으로 명령받았다. 그 후 3개월 뒤, 군단장은 **사관학교로 발령이 났고 더불어 나 또한 함께 전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송 병장을 만났다. 군대 최고 장군의 비서실에 근무하게 된 나에게는 한마디로 끗발이라는 것이 생겼다. 장군 비서라는 직책 하나 때문에 모든 이하 계급 장교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곳이 바로 비서실이다. 그러니 나에게 이러저러한 권한이 주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 하나가 장군의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를 선발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의 결정권은 아니었지만 함께하는 장교의 배려로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송 병장이다.


군대에서 동기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함께 훈련받고 함께 고생했다는 하나로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으로 묶여있는 것이 바로 동기다. 장군을 따라 낯설기만 한 **사관학교에 발령되고 나서 나와 같은 동기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송 병장을 공관으로 불러 올리기 충분한 이유였다. (공관은 장군이 머무는 숙소를 가리킨다.)


그런데 송 병장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송 병장은 병사들 간의 족구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PX내기 시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관으로 올라가라는 명령을 받게 되어 바로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 되어, 송 병장이 속한 팀이 다 이긴 상황에서 시합이 무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송 병장이란 녀석... 그 뒤로 계속 틈만 나면 투덜투덜 거렸다.


"김일병~!! 너 때문에 다 이긴 시합 망했어야... (투덜 투덜... 투덜이 스머프 납시었소~!)"


© HeungSoon, 출처 Pixabay


송 병장의 주 전문은 한식이었다. 한식 요리를 배운 송 병장은 자신의 요리 실력을 발휘해 정말 맛있는 한식 요리로 상을 차렸다. 매일 저녁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영양만점의 푸짐한 요리로 한상이 푸짐하게 차려냈다. 도가니탕, 설렁탕, 육개장, 삼계탕, 불고기, 갈비, 잡채, 육전 등.... 입이 짧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봐도 진수성찬이었다. 고급지게 차려진 식사를 그렇게 매일 먹는다면... 맛은 있을지 몰라도 건강에는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진수성찬만을 먹었던 장군에게 건강에 적신호가 생겼다. 군대에서는 비만이 되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지휘관의 책무 중 하나인데 장군은 건강 검진에서 살이 쪘다며 살을 빼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살이 찌고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 까닭이었다.


"김군아! 요리병 바꿔야지 안되겠다..."


그렇게 송 병장은 석 달 만에 공관에서 장교 식당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송 병장은 선거가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군내부의 강권을 물리치고 소신껏 투표를 했던 전적이 있어 예상치 못한 난항을 겪었다. 공관에 있었으면 비서실 직속이라 괜찮았을 텐데 다시 내무반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못된 장교들의 손을 타게 된 것이다. 결국, 영창(군대 감옥)까지 다녀오게 되면서 송 병장은 군 생활 내내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 송 병장과의 인연으로 나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이자 동기가 되었다.

© HeungSoon, 출처 Pixabay


나는 송 병장과 소주를 마시다 뜸을 들이며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답답함... 그리고 반드시 갚을 것을 약속했다. 얼마 뒤, 송 병장은 아무 말 없이 200만 원을 건네주었다.


"짜식~ 그게 뭐라고 어렵게 야그한다냐... 친구가 뭐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친구제~"


참... 고마운 친구... 그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랜 후에 나는 녀석의 약혼자를 통해 녀석이 어떻게 나에게 돈을 융통해 주었는지 듣게 되었다. 송 병장도 군 제대 후 직업을 가지기는 했어도 막 자리를 잡았던 터라 차곡차곡 저축해 두었던 돈으로 서울에 거처할 집과 세간살이를 준비하는 데 비용을 써서 여윳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쓴다는 것이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거짓말을 해서 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송 병장은 식당에서 손님과 말다툼을 시작해서 사고를 쳤기 때문에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했고 그로 인해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가지고 계신 재산을 처분해 돈을 올려 보내신 것이었다.


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내가 정말 이렇게 친구에게 마음의 큰 빚을 지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송 병장에게 몇 년이 지나서야 고작 원금만 갚을 수 있었다. 그동안 송 병장은 자기가 일한 돈으로 원금과 이자를 다 갚아 나갔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전화 한 통, 미운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 freshhconnection, 출처 Unsplash




수 년 뒤, 송 병장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다. 녀석은 그새 독립해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으로서 아내 될 여자친구에게 최고의 날을 선물하겠다며 한강 유람선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정말 축하할 일이었다. 그동안의 서로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날이 다가오니... 나는 더없이 그 둘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정작... 결혼식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송 병장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결혼식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정말 주머니에 500원이 전부였던 나... 양복을 옷걸이에서 몇 번이나 꺼내 쳐다보면서 마음의 갈등이 수없이 일어났다. 그러나 땡전 한 푼 없던 나에게 남아있던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것이 한창 젊었던 나에게는 나를 버티게 해 준 전부였다.


그때는 그랬다.... 나는 송 병장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송 병장의 결혼식에는 갈 수 없었다. 이후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연락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가 운영하던 식당마저도 없어져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 beatriz_perez, 출처 Unsplash


나는 가끔 송 병장을 떠올린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저며오는 것은...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그리움이다...


송 병장, 나의 친구!!보고 싶다! 
잘 있는 거지? 
어디서든 한 번쯤은 생각해 주길 바란다. ... 
언젠가 우리의 운이 닿는다면 만날 수 있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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