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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5. 2019

생선은 대가리가 제일 맛있어

내 남자 이야기(06)

(정말 어려웠던 남편의 어린 시절, 동태탕에 얽힌 웃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 시절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마음마저 넉넉지 못했던 오래된 이야기...)


거래처 박 사장이 찾아왔다. 한 달에 한 번은 그간의 안부를 전할 겸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만나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근처에 잘하는 동태탕 집으로 향했다.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는 동태탕에서 살이 두툼한 조각을 한 국자 퍼서 박 사장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나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태 대가리를 수거해 내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정성껏 동태 대가리를 쪽~ 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김 사장! 뭐 먹을 게 있다고 맨날 대가리만 먹나? 살부터 먹어..."


이제 먹고살만해졌는데도 나는 늘 습관처럼 대가리를 먼저 발라 먹는다. 그리고 박 사장의 멋쩍은 푸념에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 풋~ 웃음이 나왔다.

© chris_jolly, 출처 Unsplash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집은 9명의 대식구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과 나, 여동생 둘 그리고 외삼촌까지. 가난했던 우리는 단칸방에서 모두 함께 생활했다.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생활비를 아끼시느라 어머니는 가장 저렴한 식재료로 매일 음식을 해 대셨다.


그저 먹고살기에 급급할 정도의 월급으로 대가족의 하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머리를 써야 하는 숙제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가족이 하루 종일 먹을 양만큼을 준비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오늘의 메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루는 동태탕, 아니 동탯국을 내오셨다. 동태 두 마리에 무와 두부가 대충 들어간 냄비에는 국물이 흥건했다. 토막 낸 동태살을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한 그릇씩 담아내는 어머니는 이미 모든 개수를 정확하게 계산해 두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삼촌, 장손인 형까지 살이 붙어있는 살토막을 담아주셨고, 아직 어린 여동생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쁘다고 연신 살을 발라 먹이셨다. 마치 참새가 입을 벌려 모이를 먹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 물론 나에게는 국물 위로 떠다니는 무와 두부, 흥건한 국물을 퍼 주셨다.


"아... 난, 언제쯤 살을 먹어 볼까..."

© nickkarvounis, 출처 Unsplash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탓에 군대 가기 전까지도 육류를 입에 대지 못하는 아주 짧은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동태나 꽁치, 고등어 정도가 고작이었다. 해물류라고 해도 오징어와 조개 정도가 전부였다. 그만큼 음식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동태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기에 속했다.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꼭 먹어보고 싶은 고기...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부엌 부뚜막에 놓여있는 국 냄비를 보았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살이 도톰한 동태 토막이 몇 개 있었고, 동태 대가리가 둥둥 떠서 흰 눈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징그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순간 동태 대가리에 붙어있던 볼살이 눈에 들어왔다. 음... 손을 가져갔다가 도로 뚜껑을 덮었다.


엄마의 치밀한 계산으로는 분명히 동태 조각이 몇 개가 남았는지 알고 계실 것이다. 내가 살코기 한 개를 몰래 먹었다가는 단번에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실 테고 그러면 나는 저녁식사 전에 흠씬 매를 맞으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 뻔했다. 까짓 몸으로 때우면 될 일이지만 저녁식사로 모여있는 식구들 기분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엄마의 특유의 욕설이 귓가에 들려온다.


"이런~ 때려죽일 놈의 새끼!!..."


그리고 그날 저녁, 밥상이 차려지고 엄마가 국 냄비를 들여왔다. 나는 국 냄비를 보자 단번에 엄마에게 요구했다.


"엄마! 난 대가리 주세요~!"

"왜? 니가 이걸 어떻게 발라 먹으려고 그래?"

"아니요... 저 원래 대가리 좋아해요..."


그리고 드디어 내 국그릇에 동태 대가리가 담겼다. 나는 징그러움도 느낄 새가 없이 쪽쪽~ 발라 먹었다. 제법 숨겨진 살이 씹히며 쫀득거렸다. 그리고 동태 눈알도 입안에서 굴리다 씹어 먹었는데 맛이 오묘했다. 먹을만했다. 아니, 아주 흡족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동태 대가리를 빨아먹었다. 어른들은 그런 내 모습에 놀랐는지 계속 웃기만 하셨다.


그 후로는 집에서 생선이 상에 오를 때마다 생선 대가리는 언제나 내 차지가 되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살을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사실, 나도 살코기를 먹을 수 있는데 말이다.


수년이 지나고 엄마에게 생활비도 드리고, 용돈을 드리는 나이가 돼서도 여전히 내 앞에는 대가리가 놓였다.

© shotbylana, 출처 Unsplash


형이 결혼을 하고 형수와 모처럼 식사를 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날따라 동탯국을 끓이셨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동탯국도 예전과 다르게 살이 가득한 동태 조각들이 국냄비를 가득 채워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형수는 가족들 하나하나의 그릇에 동탯국을 퍼 담기 시작했다. 형수는 특히 나를 좋게 생각해 '하나밖에 없는 도련님'으로 많이 아껴주셨다. 그래서 특별히 살이 도톰하고 먹음직스러운 부위를 골라 국그릇에 담아내고 있었다.


ㅎㅎ 드디어 내가 이 집안에서 살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에 감격해하며 엷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한마디 말에 꿈이 와장창!! 깨지는 것을 느끼며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새아가! 둘째는 대가리만 줘라~ 얘는 어려서부터 대가리만 좋아하더구나..."

"에이~ 어머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왜 도련님만 대가리를 드려요...?"

"아니다! 둘째는 대가리만 먹어.. 니가 몰라서 그래.. 안 그러냐, 둘째야??"


갓 시집 온 형수의 어리둥절한 표정과 정말 내가 대가리를 너무 좋아해서 대가리만 먹는다고 생각하시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난, 그때 '나도 살코기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나를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에게 실망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바에 한 번 더 엄마가 생각했던 사람이 되기로 했다.


" 네~ 형수, 전 대가리가 좋아요~"


그렇게 나는 생선 대가리와 친해지고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

© lonwake, 출처 Unsplash




"김 사장!! 밥 안 먹고 뭘 그리 생각해??"


점심을 다 먹어가는 박 사장이 타박을 한다. 내 그릇에 가지런히 놓인 생선 대가리 뼈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 어떤 살코기보다 맛있고 정감 있는 맛.


난, 이제 생선 대가리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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