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화혜 복지소기 복혜 복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
정부위기 선부위요 인지미기일고구
재앙이란 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스며 있는 곳이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을까.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
바른 것이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요사스러운 것이 되는 것,
사람들이 미혹된 것이 이미 오래되었구나.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58장 순화(順化)에 나오는 말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서 길흉화복은 언제든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숨을 죽이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순간에 정체를 드러내곤 한다. 8살 어린 아들이 태권도 학원에서 단체로 워터파크에 놀러 갔던 날, 부모님은 그 들뜬 아이의 모습에 행복했을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면 부모의 얼굴도 만면에 웃음꽃이 피기 마련. 그러나 그 잠시 잠깐의 행복은 아들이 심정지 상태로 8분 동안 물에 떠 있었을 동안 아무도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참사극으로 돌아왔다. 41일 만에 병원에서 숨진 아이.. 이렇게 재앙은 어느 한순간 삶 속에 숨었다가 고개를 들곤 한다.
우리는 언제든 재앙과 복의 사잇길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살아가고 있다. 이런 길흉화복의 조화를 늘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서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역할을 했던 배우 박지환은 이전 영화 범죄의 도시에서 일약 스타급으로 급성장했다. 그는 범죄의 도시에서 장이수 역할을 맛깔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배역을 소화한 그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감초 역할을 하며 배우로서 탄탄한 궤도에 올랐다. 그런 그는 자신은 이런 행복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서 흥행은 자신의 몫이 아닌 주인공들의 몫이고 자신은 언제나 4등 하는 배우이길 바란다고 겸손하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말속에서 박지환이라는 배우가 인생의 길흉화복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너무 잘 나가도, 너무 어려워도 삶은 항상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저 4등을 유지하면서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너무 급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1등이 되기를 원한다. 돈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가장 성공한 자리에서 도사리고 있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일까..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는 자격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일등이 되는 세상이다 보니 정부위기 선부위요(正復爲奇 善復爲妖), 정의는 사라져 가고 오히려 바른 것이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요사스러운 것이 되어버리고 있다.
핀란드 최고 직위인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대통령 직위를 이용해 사적 채용을 버젓이 일삼고,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 현장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자리에서 함박웃음 지으며 '비가 더 내렸으면' 고사를 지내고... 초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폭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세대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기이한 일들이 이제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이를 두고 노자는 '인지미기일고구(人之迷 其日固久)' 사람들이 미혹된 것이 이미 오래되었구나라고 한탄했다.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화혜 복지소기 복혜 복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재앙이란 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스며 있는 곳이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을까.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라는 말이 요즘은 정말 가슴으로 와닿는다. 그러니 있을 때는 더욱 몸을 사려 없는 것처럼 겸손해야 하고 없을 때에는 반드시 복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또한 깨닫는다. 언제나 인생에 있어서 정해진 것은 없기에 그 끝을 장담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결코 안 될 것 같다.
남편의 경우도 16년 만에 형을 만났다. 너무도 오랜 시간 켜켜이 쌓였던 오해를 풀면서 마음속의 앙금을 하나씩 지워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더욱 '화혜 복지소기 복혜 복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을 마음속으로 새겨보게 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구나.. 어제의 아픔이 오늘은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이 만남을 위해 각자의 인생을 걸으며 마음의 그릇을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을 때 인생은 다시 한번 복(福)의 문을 열어주며 남은 여생을 부드러운 미풍으로 순탄한 항해를 지속하게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아프다고 울지 말자, 삶은 언젠가 그 아픔을 다 받아내고 이겨낼 충분한 그릇으로 빚어 놓으면 그 안에 한 아름 복(福)을 담아 준다는 사실을 믿어 보자. 그리고 언제나 바른길, 정도의 길을 가도록 노력하자.
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화혜 복지소기 복혜 복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
재앙이란 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스며 있는 곳이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을까.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