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내겐 너무 어려운 연애>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04] <내겐 너무 어려운 연애>
당신에게 이탈리아는 어떤 모습인가.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보자.
잡지 모델 같은 남자들이 미녀들에게 휘파람을 불고, 식당과 카페 야외 테라스마다 햇볕을 쬐며 커피 한 잔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가득한가.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 같은 유서 깊은 도시, 멋진 건물 뒤로 지는 석양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격렬한 축구리그가 있고, 건강한 자연이 있는 나라. 신선한 야채와 와인, 파스타 따위가 가득 늘어선 식사 테이블은 이탈리아의 자랑이다. 세계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며, 보수정당의 오랜 집권으로 정치가 후진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 세계를 주름잡은 마피아와 범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역사는 또 어떤가. 번성한 로마제국의 중심이었고, 수많은 도시국가가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했으며, 지중해를 통한 교역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문예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르네상스는 수백년이 흘러서도 이탈리아인들에게 어떤 자부심을 안겨주곤 한다.
당신이 모르는 이탈리아를 만난다
누구든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탈리아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2021년 이탈리아엔 6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건 곧 최소 6000만 개의 서로 다른 풍경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겐 너무 어려운 연애>는 외국인에겐 낯설 수 있는 이탈리아의 모습을 비춘다. 파임 부이얀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로, 방글라데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감독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들었다.
영화는 부이얀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탈리아 로마 외곽엔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이곳엔 모두 세 종류 사람들이 사는데, 이민자와 노인, 그리고 힙스터다. 발전이 덜 돼 값이 싼 덕분에 모여든 이들인데,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공존해 독특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부이얀은 이민자가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이주한 건 아버지와 어머니로, 부이얀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학교를 졸업했다. 이탈리아 이민정책상 국적을 졸업 뒤에 받긴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이탈리아인이다.
이민자의 아들이 이탈리아 여자를 만난다면
이슬람 정체성이 강한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이슬람 음식과 문화가 익숙하긴 해도, 스스로를 방글라데시가 아닌 이탈리아인으로 인식한다. 방글라데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긴 하지만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
부이얀의 주변인들은 서로가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방글라데시 사람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 세대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방글라데시 음식을 짓고, 손으로 밥을 먹는 부모님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이다. 부모님과 그 친구들은 방글라데시 전통의상을 입고 이슬람 교리에 맞게 생활한다. 당연히 자식들도 그들처럼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짝 역시 그들 사이에서 맞이해야 한다는 게 부모들의 생각이다.
자식세대는 혼란스럽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은 이탈리아고, 친구들도 모두 이탈리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전통은 제 집과 공동체를 넘어서는 본적이 없다. 방글라데시엔 가본 적도 없고 국적도 이탈리아인데 스스로를 방글라데시 사람으로 여길 리 만무하다. 그래도 공동체 질서를 벗어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이탈리아와 방글라데시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영화는 방글라데시계 이민자의 자식 부이얀과 이탈리아 여성 아시아(카를로타 안토넬리 분)의 연애담이다. 이들의 사랑은 시작보다 과정이 어렵다. 부이얀은 제 집에 아시아를 소개할 수 없다. 당장 "제 나라 여자를 만나라"는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부모에게만이 아니라 부모뻘 모두에게 애인을 감춰야 하는 부이얀의 사랑은 좀처럼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아시아의 주변에서 인정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까만 피부에 비루한 몸매, 변변치 않은 직업까지 모두가 장애물이 된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열등감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종교는 더욱 큰 어려움이 된다. 이슬람 율법에선 결혼 전 여성과 관계를 맺는 걸 철저히 금하고 있어서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그보다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매번 뿌리치는 건 부이얀의 몫이다. 개방적인 아시아는 그런 부이얀을 이해하기 힘들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그리 멀지 않은
<내겐 너무 어려운 연애>는 제목 그대로 부이얀의, 이민자 후손들의 어려운 연애 이야기다. 로마 외곽에서 살아가는 방글라데시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2018년 글로벌 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한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 이민자 2세를 자국민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52%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더라도 한국인들 시선에서 자국민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빠르게 다민족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2020년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200만 명을 훌쩍 넘긴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 피부색깔이 다를 뿐 이 땅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자란 한국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우리가 상상하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인 부이얀이 살아가는 그곳이 다르듯, 우리가 아는 한국과 한국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들이 겪어내고 있을 나라도 몹시 다를 것이다. 자, 영화 속 부이얀의 고민으로부터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의 오늘을 짐작해보자.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