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미스> 영화평
소년 알렉스(알렉상드르 워터 분)는 '미스 프랑스'가 꿈이다. 소년이 미스가 되겠단 것부터 어불성설인데, 미스 프랑스라니 꿈도 크다.
돌아가며 자신의 장래희망을 말하는 학급 발표에서 학생들은 알렉스를 비웃는다. 그러나 알렉스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미스, 그것도 프랑스에서 가장 예쁘다는 미스 프랑스가 되고 싶다. 그러니 그의 꿈은 십중팔구 시작도 못해보고 흩어질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영화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걸 깨부수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 아니던가.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미스>는 알렉스의 꿈을 향한 도전기다. 꿈을 그저 꿈으로만 놔두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는 현실적인 이야기다.
소년은 이미 자라 청년이 됐다. 몸도 따라서 훌쩍 커졌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알렉스는 도전을 시작한다. 공동주택엔 성전환 수술 후에 몸을 파는 늙은 창녀 롤라(디보 드 몽타렝버 분)와 서아시아 이민자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이 알렉스에게 힘이 되어준다.
알렉스는 여자처럼 걷고 말하는 법을 익힌다. 여자처럼 화장하고 여자처럼 입는다. 아직 정식으로 수술하지 못해 신체는 남자지만, 오랫동안 꺾지 않은 정체성이 그를 여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어렵게 출전한 지역대회 '미스 일드프랑스'에서 우여곡절 끝에 우승을 차지한 알렉스는 내친김에 미스 프랑스가 되기 위한 합숙에 돌입한다. 다른 지역 우승자들과 어울리는 게 쉽진 않지만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하겠는가.
쉬운 감동 대신 충분한 역경을
미스 프랑스는 여성에 대한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며 알렉스를 뜯어말리던 집주인조차 어느새 알렉스를 응원한다. 진실한 꿈과 열정은 지켜보는 이조차 감동하게 하기 때문일까.
<미스>는 성소수자가 제게 향하는 편견을 넘어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는 이야기다.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이미 수백편이 되겠으나 그 중에서도 독특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 대놓고 미의 최고봉인 미스 프랑스가 되겠다니, 그 꿈부터 야무지다.
이야기 전반은 전형적인 오디션 영화처럼 꾸려졌다. 가수가 되기 위해, 최고의 코미디언 되기 위해, 싸움의 고수가 되기 위해,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경쟁하는 영화들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위기가 있고 그 위기를 극복하며 우정과 성취감을 맛본다.
그렇다고 흔해빠진 감동적 결말을 내던지진 않는다. 쉽게 이룩하기 어려운 도전인 만큼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가 수차례 다가오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앞에 놓인 편견은 영화 밖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고, 영화 안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알렉스의 도전에 박수치는 관중 만큼 그의 실체를 알고 야유하는 이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 모두를 외면하지 않는다.
전형성 위에 신랄한 대사를 끼얹다
<미스>는 상업영화의 전형성 가운데 프랑스 특유의 신랄한 대사를 얹어 성소수자의 특별한 드라마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얼핏 흔한 설정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누구나 재미있게 볼 만한 힘 있는 구성으로 지루함을 덜어낸다.
편견에 찌든 무능력한 남성을 풍자하고 그들 사이에서 소수자로서 제 자리를 확보하려는 이들에게 주목한다. 이 세상이 어디 남녀 성별을 뚝 잘라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로 나눌 수 있겠느냐만, 영화가 주목하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현실 속에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알렉스에게 손을 내미는 건 또 다른 소수자들이다. 이민자들과 트렌스젠더 창녀, 괴팍한 늙은 여인까지. 멀쩡한 남성 대다수는 알렉스를 헐뜯고 함부로 대하며,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거짓 친절을 남발하기 일쑤다.
얼핏 평범한 영화처럼도 보이지만 <미스>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중심부를 뚫고 전진한다. <헤드윅> <천하장사 마돈나> <대니쉬 걸> 같은 영화들이 일찍이 도전하지 못한 기성 문화의 중심으로 다짜고짜 나아간다. 그리고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편견과 고정관념을 단박에 까발린다.
제 것과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주인공을 배우 알렉상드르 웨터는 훌륭하게 연기한다. 결코 쉽지 않았을 도전은 너무나도 능숙하고 우아하며 매력적으로 완수된다. 결코 쉽게 보기 어려운 배우의 남다른 연기다. 그 대단한 순간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스>는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