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입사준비 22
세월은 무정하다. 한반도를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참사로부터 어느덧 넉 달 하고도 열흘이나 흘렀으니 말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덮어 무디게 한다지만 가족 잃은 이들의 슬픔은 시간이 갈 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만 같다. 세상에 삼켜지지 않는 울음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이들의 울음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는 참 많은 아까운 것들을 품고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직 피지 못한 어린 생명들, 그 아까운 가능성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스러져 갔다. 배에 갇힌 생명들을 구할 것이란 국민들의 기대는 참담하게 무너졌고 이는 안전과 국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이어졌다.
세월호 침몰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사태에서 국가의 역할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 구조작업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그리고 신뢰회복이 그것이다. 그러나 참사 이후 다섯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의 현실은 그야말로 암담하기만 하다. 국가는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을 단 한 명도 끄집어내지 못했다. 진상규명은 특별법 통과의 문제로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으며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신뢰회복이 이루어질리가 없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통해 한국사회가 잃어버린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바로 신뢰다. 내가 현재 안전한 상태라는 기초적인 신뢰부터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신뢰, 무엇보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신뢰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아이를 잃은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이 연일 광화문 광장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단식하고 시위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나라 대통령과 정부, 의회는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다. 단원고 희생자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진실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는데 만약 그가 쓰러진다면 우리사회가 잃게 될 것은 오직 그 개인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신뢰가 사라진 한국사회에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 건 바로 연대 때문이다. 참사 직후부터 쏟아진 국민적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 유가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비추고 있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범국민서명운동이나 동조단식 등을 통해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에게 보내는 이같은 응원은 우리 사회에 실종된 줄만 알았던 연대성을 일깨우고 시민사회가 국가를 압박해 정의를 구현하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많다. 청와대는 특별법 제정이 국회의 소관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고, 여당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유가족에게 주는 것이 전례없는 일이라며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야당의 협상안이 유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의 해결은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유가족과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부와 의회가 절실하다. 최근 유가족들과 협상을 시작한 여당과 장외투쟁을 통해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그 목소리를 들으려는 야당의 변화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국가와 국민, 여당과 야당이 이해관계를 초월해 소통하여야만 우리 사회에 사라진 신뢰를 회복하고 연대성을 강화하며 그로부터 진실과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통해 우리가 잃은 것과 확인한 것, 필요로 하는 것이 신뢰와 연대, 소통인 것은 이 때문이다.
2014. 8. 28. 목요일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