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우드잡> 비평
임업은 특별한 산업이다. 어제 만들어 오늘 팔고 내일 다시 새로 만드는 일이 흔한 다른 산업군과 달리, 임업은 상당한 시차를 두고 산업을 꾸려가게 마련이다. 투자와 생산부터 판매를 통해 수익창출에 이르는 한 순환을 가리켜 학계에선 소득순환구조라 부른다.
이에 따르면 제조업은 며칠부터 몇 달, 농업은 수개월에서 1년까지가 필요한 게 보통이다. 비교적 순환주기가 긴 축산업은 수년까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종 개량 및 호르몬 주사 등을 놓는 방법으로 비육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임업은 순환주기의 측면에서 위 산업들과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파종하고, 묘목을 심어 나무가 목재로 쓸 수 있을 만큼 자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아주 짧게는 5년, 길게는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기다려서야 나무가 목재로 태어나게 된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은 제가 팔 목재를 위해서가 아닐 때도 많다. 말하자면 임업은 전 세대에게 받은 것을 잘라 팔고, 이후 세대에게 줄 것을 심고 가꾸는 일이 되겠다.
임업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우드잡>은 임업에 대한 영화다. 가히 임업이라는 산업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해도 좋을 만큼 이례적 조명을 받는다. 임업은 그 특성상 도시로부터 소외된 산간벽지에서 이뤄지고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직업도 아니어서 매체가 주목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그러나 명성 높은 감독 야구치 시노부가 임업을 배경으로 한 편의 경쾌한 작품을 찍어내니 임업이라는 가깝지만 낯선 산업의 진가를 대중에 알리게 된 것이다. 특히 건설부터 가구, 소소한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임업을 통해 생산된 나무제품의 활용률이 높은 일본이 임업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한눈에 내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에 실패한 어느 청춘의 이야기다. 이렇다 할 꿈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소타 분)는 어느 날 우연히 한 홍보전단지를 보게 된다.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전단엔 어떤 여성이 나무에 기댄 모습이 나와 있는데, 첫눈에 그 여자에게 꽂혀버린 것이다. 히라노는 곧장 산림관리 연수에 지원하고, 그로부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된다.
삼나무를 가꾸고 베어 파는 일
휴대전화 전파도 잡히지 않는 오지에서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처음엔 전단에 나온 어여쁜 여자가 있을 걸 기대했으나 역시나 고되고 험한 일은 남성들 몫일 밖에 없다. 연수생도 전부 남성으로, 히라노는 첫날부터 프로그램에 지원한 걸 후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쉽게 떠날 수도 없는 노릇, 우여곡절 끝에 연수를 마치니 이제는 실습시간이 닥쳐오기에 이른다.
실습은 연수를 한 곳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 가무사리 마을에서 진행된다. 1년 간의 실습을 마쳐야 벌목꾼으로의 자격이 주어지는 가운데, 히라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벌목꾼 이다 요키(이토 히데아키 분)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며 실습을 하기에 이른다. 위로 수십 미터는 족히 뻗어있는 높은 삼나무에 올라 그 씨를 채취하고, 또 종일 산 곳곳을 나다니며 묘목을 심는 일이 모두 그의 몫이 된다. 나무를 베는 일 또한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어서 히라노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의 고된 업무에 몰두할 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히라노의 눈이 번쩍 떠진다. 전단지에서 보았던 그 여성이 마을에 하나 있는 초등학교의 유일한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마을에서 태어나 쭉 자란 이시이 나오키(나가사와 마사미 분)로, 마을과 이 마을의 제일가는 산업인 임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히라노가 오기 전 연수생으로 지냈던 청년과 오래 사귀었다는 그녀이지만, 실습을 마친 그가 도시로 돌아가는 바람에 이별을 겪었다고 한다. 함께 떠나도 되련만 좀처럼 마을을 등지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관객에게 임업의 가치를 알게끔 한다
영화엔 이 외진 마을을 아끼는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시이만이 아니라 이다와 같은 벌목꾼들 또한 이 마을과 임업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도시에서 온 이들이 임업을 외진 마을에서 해야 하는 투박하기만 한 일처럼 여기는데 반해, 이 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온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도시와 산골의 격차만큼이나 임업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히라노는 조금씩 임업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이해해 간다.
영화는 관객 일반과 얼마 다르지 않은 히라노가 임업이라는 특수한 산업을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다. 100년을 기른 삼나무를 잘라 시장에 내어놓는 게 이 마을의 벌목꾼들이다. 그들은 마을의 공동 자산인 산에서 나무를 심고 키운 뒤 잘라서 파는데, 할아버지가 늙어 심은 것을 젊은 손자가 베어야 할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무를 베는 일보다도 산과 나무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니, 하나의 산업을 가꾸는 데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알도록 한다.
영화는 임업 강국이라 해도 좋을 일본의 깊은 산을 배경으로 그 산업적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전쟁과 가난으로 온 숲이 파괴되고 수십 년을 자란 나무를 찾기 어려웠던 것이 불과 수십 년 전 한국이다. 그로부터 식목일까지 지정해 가며 조림에 국력을 집중한 결과 나이는 어리지만 충분한 수목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림과 달리 임업에 있어서는 역량부족이 여실히 드러나서 OECD 국가 가운데 산림이용률이 최하위를 기록한다.
백 년을 두고 기르는 산업의 힘
필요한 목재는 거의 수입을 통해 구하고, 우리 숲에서 우리 나무로 무엇을 만들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상황에서 숲을 제대로 활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시기가 길었으니 임업을 기간으로 한 지역 산업이나 문화가 태동할 수도 없었다.
반면 일본의 숲 가운데선 수백 년을 이어온 임업 현장이 적지 않단 점이 인상적이다. 백 년의 시차를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일을 해내가는 지속성이 순환주기가 짧은 산업에 익숙한 눈에는 낯설게만 보인다. 야구치 시노부가 영화에서 의도한 것이 바로 이 게 아니었을까 한다. 도시에서의 안온한 삶을 살면서는 좀처럼 얻지 못할 시야와 감상을 갖도록 하는 것, 그로부터 외면되고 사라지기엔 아까운 문화를 드러내는 것 말이다.
나무를 키우고 관리하며 잘라 팔기까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노력을 하는가를 영화는 관객 앞에 내보인다. 그 끝에서 관객은 나무를 전처럼 쉽고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만 생각하지 않게 된다. 100년의 시간을 두고 숲을 관리하는 <우드잡> 속 벌목꾼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그만큼 큰 견지에서 나라와 가정, 삶을 꾸려가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반성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