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베트남을 맥주의 나라라고들 하는데, 비아 사이공 골드가 호주국제맥주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이런 인식이 더 굳어졌다. 한국 맥주들도 꾸준히 나가 자주 물을 먹고 돌아오는 이 대회에서 독일도 체코도 아닌 베트남 맥주가 금메달을 따내다니, 술꾼들에겐 제법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 맥주란 건 대충 밋밋한 라거에 얼음을 퐁당 떨어뜨려 마시는 특색없는 술이란 인식이 컸던 탓이다.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바바바가 베트남 맥주의 상징이던 시절도 짧지는 않았고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길가 노점에 주저앉아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는 맥주는 베트남 맥주산업의 일부일 뿐이다. 바바바를 넘어 베트남 맥주는 고급화를 거듭하고 있다. 비아사이공 팩토리의 야심작 비아 사이공 골드와 사이공 스페셜은 카스와 하이트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충격을 던지기 충분하다. 유럽 맥주에겐 지더라도 동남아 맥주와도 이토록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다. 정통 라거가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깔끔함과 시원함이 한국 맥주를 심심하게 느끼도록 한다. 비아 사이공 스페셜이 놓인 베트남 회식자리가 허접한 소맥이 깔린 자리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라거야 그렇다 쳐도 뱃사람은 에일이다. 아무 펍에나 들어가 베트남 에일 맥주를 주문한다. 두어잔만 마시고 가려는데 맛배기 메뉴가 있다 하여 네 잔 짜리 한 세트도 시켜본다. 베이, 써머, 앰버, 오닉스로 이뤄진 맥주세트는 다분히 초여름 나짱의 밤과 어우러지는 특색있는 맛이다. 나는 개중에 써머와 앰버가 마음에 들어 술고래처럼 1리터씩을 더 들이붓고야 가게를 나선다.
온통 한국놈들 뿐이란 게 유일한 흠인 이 가게를 나와서 터덜터덜 밤의 해변을 따라 걷는다. 어느 한국인 커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곁을 오래된 발라드를 흥얼거리며 지나친다. 해변가 어느 구조물 위에 잠시만 누워 있으려다 문득 눈을 뜨니 태양이 중천이다. 이 먼 나라에서까지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구나, 아침부터 술 생각이 간절하여 나는 곁에 있는 비아 사이공 한 캔을 뜯어 목구멍에 털어붓는다. 내가 사랑한 것은 모두 다 떠나버렸음을 실감한다. 미지근한 맥주와 텁텁한 공기가 문득 불쾌하게 느껴진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