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6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북챌린지 여섯번째 책은 고민 끝에 기형도 형님의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정했다. 경태녀석이랑 나랑 만난 건 대학교 덕분인데 선배님 책 한 권은 꽂아줘야 동문아닌가 싶어서다.
내가 연세대학교를 고른 두 번째 이유는 따를 만한 선배들이 많이 배출돼서다. 엄청난 오판으로 드러났지만 그때는 그 모두를 길러낸 학교에 무언가 비결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특별히 고려한 이들로는 배창호, 허진호, 봉준호 감독 등이 있었는데 법학과 05학번 김성호가 그 뒤를 이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개훔방> 김성호 감독님도 연세대를 나오셨지만 호나우지뉴가 호나우두로 기억되지 못하듯 네 번째 자리는 골 더 많이 넣는 놈의 차지라 생각했었다. 나는 15년째 무득점이고, 김태용의 등장으로 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열아홉의 나는 가끔 돈을 받고 글을 쓰던 세미프로 글쟁이였으므로, 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다. 당연히 윤동주, 최인호, 성석제 등 쟁쟁한 문인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단 점도 고려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역시 기형도다. 극장에서 죽어 발견된 시 쓰는 기자라니, 재능의 대가로 불운을 흩뿌리고 다니는 못된 정령의 장난질이 있었을 것만 같지 않은가.
기형도는 독보적인 위치의 한용운을 제외한다면 단연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거론될 만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작품이래봐야 이 시집 한 권에 담긴 게 전부인데 말이다. 그만큼 대단하다.
사실 나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미친듯 사랑을 찾아 헤매인 적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단언한 적도 없었으니까. 작은 목소리로 삶을 비난한 적은 있었으나 이토록 삶을 증오한 적은 정말이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그의 삶에서 지독하리만큼 괴로웠던 유년의 결핍이 없었다면 그는 나와 같은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니.
유년의 극심한 결핍은 그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결핍된 사랑을 채우기 위해 일생토록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어느 좁은 공간에서 허망하게 사랑을 잃고 스스로의 사랑을, 아니 그 스스로를, 어두운 빈집에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그가 어느 어두운 극장에서 죽어 발견될 때까지 그 빈집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불도 켜지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 시집은 온전한 비극으로 읽힌다.
지저분한 감상따윈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어차피 부인될 테니까.
여기 실린 '대학시절', '질투는 나의 힘', '그집 앞', '빈집', '소리의 뼈',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몇 편의 시가 가슴을 울리고 사라져 갔다고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