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로움은 반드시 사람을 해치기 때문

단상

by 김성호


너는 대체 언제 외로우냐고 물으셨습니다. 따지자면 저는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되지 못합니다. 생의 그림자와 같은 고독이며 쓸쓸함과는 별개로 외로움이란 다른 이의 어깻죽지를 파고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나약함의 징표 같은 거라고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던 겁니다. 그러나 지나친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제가 사람을 외롭게 한다고들 하였으니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일랑 남들을 나약하게 하는 못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렇다고 아주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비가 오는 날이면 저는 큰 창을 완전히 열어두어 빗소리가 그대로 닥쳐오는 가게에 앉아 곱창에 소주를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를 함께 즐기던 이들은 하나둘씩 멀리 떠나거나 결혼을 하거나 그밖에 온갖 민망한 이유로 만날 수가 없게 되어 저는 혼자 베란다에 나가 빗소리만 듣는 날이 많습니다. 세상의 다른 많은 음식과 달리 곱창이란 혼자서는 도저히 한판을 먹어치우기 어려운 것으로, 느끼하고 기름진 것을 씹다가 찌르르한 소주 한 잔에 몸을 떨다가 다시 소리 높여 이야기를 섞다가 그렇게 잔뜩 취하여서 곁에 있는 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어쩌다 친구에게 서운함을 표하는 것인데도 그는 곱창으로 내가 제게 서운할 것이라면 저는 내게 일천팔백가지쯤 서운함을 담고 사는 것이라고 면박을 주는 것입니다. 그는 이참에 연애나 하라며 잔소리까지 해대는데 그렇다면 나의 연인일랑 비오는 날에나 만나 곱창과 소주를 나누고는 다시 비올 날을 기다리는 견우와 직녀 사이가 되지는 않겠는지요. 그렇다면 그녀는 또 눈물범벅이 될 것이고 나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미안해져서는 왜 나는 좋은 사내가 못되는가를 자책하고 말테지요. 무튼 비와 곱창과 외로움은 썩 잘 어우러져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영화나 책을 보고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또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상을 화악 밝히는 드물고 귀한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을 혼자 보기라도 하는 날엔 내가 본 것을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화번호부를 주욱 내리다가 한 일년 쯤 연락하지 않은 가까운 친구에게 아무렇게나 전화를 하고 잘 사냐 엉 잘 산다 담주에 뭐하냐 술먹을까 뭐 그렇고 그런 사십팔초짜리 통화를 마치고 막상 만나서는 비도 오지 않는 날에 곱창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우리에게도 한때는 멋진 날이 있었다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나 섞고마는 것입니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이면 재잘재잘 지저귀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와서 다시 누구와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날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또 있습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여기저기서 보내준 치킨들은 한해가 지나도록 다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게 치킨이란 혼자서는 좀처럼 먹지 않는 것, 친구들끼리도 거의 먹지 않는 탓입니다. 어쩌다 치킨을 좋아하는 이와 억지로 약속을 잡아도 그는 내가 사는 것을 극구 만류하며 결국 제가 계산할 때가 많으니 저의 치킨 중에선 벌써 일년을 훌쩍 넘어 사이버로 연장연장만 눌리고 있는 녀석들이 제법 됩니다. 저는 그 치킨들을 볼 때마다 아무렇게나 불러다 함께 먹을 이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는 합니다. 이것도 외로움이 아닌가요.


그리고 나선 별로 외로울 때는 없는 것인데, 모두 다섯 가지를 말하라 하셨으니 머리를 쥐어짜봅니다. 굳이 더하자면 너무 나와 닮아서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글이라거나 공모에 떨어진 소설이라거나 뭐 그렇고 그런 끄적거림들을 그저 없애버리기 전에 보여줄 사람이 꼭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이가 생기더라도 굳이 보여주진 않겠지요. 어떤 글은 저의 못남을 너무 선명하게 드러내는 탓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한 것인데 저는 이것을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지우고는 역시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인간이라고 그렇게 믿고 살기로 합니다. 어떤 외로움은 반드시 사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2023. 9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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