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얼마 전 연수원 화장실에 갇힌 일이 있었습니다. 문을 잠그지 않았는데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도 열리지 않았죠. 다행히 밖에 룸메이트가 있고 안에 핸드폰도 가지고 들어간 상태라 수리공을 불러 15분 정도 후에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갑갑한 시간이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밀폐된 화장실에 갇히고 나니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만약 누군가 부를 사람도, 부를 능력도 없었더라면 이렇게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에요.
하다못해 샤워 중이었거나 했다면 나올 때 민망함도 피할 수 없었겠죠. 참 다행이었어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작 화장실에 갇혀 낭패를 봤을지 생각해봤습니다. 가지를 낮게 뻗은 나무에 뿔이 걸려 죽는 사슴처럼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이유로 일대 위기를 맞이한 그런 경우들. 셀 수 없이 많겠죠. 왜 아니겠습니까.
어느 나라에선 단돈 몇 천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약이 누군가에겐 인생을 걸고서도 얻기 어려운 물건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선 일상적인 관계들도 저기선 운명을 바꿀 만큼 노력을 들인 뒤에야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삶이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수많은 필연과 우연이 모여 제 눈과 귀와 팔과 다리로 얼마간 삶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지금껏 제 삶 가운데 수많은 희망이 흩뿌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가치 있는 것들에 조금만 노력하면 가 닿을 수 있음을 일깨우는 사건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으킬 수 있는 변화란 오로지 그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까지 한 사람 곁에는 얼마만큼 간절히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요구되었던가요. 앤 설리번이 없었다면 헬렌 켈러도 없었고 정도전이 없었다면 조선 역시 없었을 겁니다. 어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뿐이겠어요.
매순간 희망을 생산하는 발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나를 벗어나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니까요.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