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판단

단상

by 김성호

판단하는 사람은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세상 모든 걸 재량하고 그로부터 미덕을 찾아 기르는데 능숙한 사람은 반대로 악덕을 골라 잘라내는데도 익숙하게 마련이죠.


미덕과 악덕을 가까이 다루다보면 내가 좋아해 익힌 미덕이 날 때부터 내 일부였던 것처럼 느껴지고 싫어해서 멀리한 악덕은 나 아닌 다른 이의 특성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오만은 바로 여기서 태어나죠.


그렇다고 판단을 미룰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작은 나로 태어나 커다란 세상과 만나는 일이 아니던가요. 나 아닌 것을 부지런히 재량하고 구분 짓지 않고서야 원하는 삶에 다가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재고 따지면서도 못나고 악한 것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욕심으로 선의를 짓밟는 이들을, 나태로 성실을 갉아먹고 이기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대체 어찌하면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요.


어떻게 하면 나는 남을 무시하고 미워하며 멸시하고 외면하려는 마음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요즘 저를 괴롭히는 물음입니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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