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뒤집어 입은 옷

블랙리스트 199방.

by 김성호

제가 있는 오션폴리텍에선 아침마다 점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간단히 인원점검을 하고 체조와 구보를 진행하는데 단체생활이다보니 규정된 복장을 지키지 못할 경우 벌점이 부과되죠. 벌점의 효과야 바깥세상의 범칙금이나 과태료 이상입니다.


각설하고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자겠다며 뭉갠 탓일까요. "점호 5분 전"이라는 방송에 황급히 일어나 세수도 않고 밖으로 나왔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뭔가 해서 주변을 살피니, 아뿔사! 저만 체육복이 아닌 훈련복을 입고 있지 뭐예요.


곧장 방으로 뛰어가 옷을 갈아 입고 점호에 참여했는데 조금 지나니 또 뭔가 이상하더라구요. 주변에서도 수군수군대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던 중에 뒤에서 누가 말해줘 알았어요.


옷을 거꾸로 입었더라구요. 목덜미에 상표가 덜렁이며 붙었고 봉제선도 밖으로 나와 있는데 상황이 다급하다보니 뒤집에 입은 줄도 몰랐던 거죠. 어찌나 민망하던지.


점호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뒤에서 웃음소리만 들려도 내 꼴을 보고 웃는 것 같고 그랬죠. 옷이야 뒤집어 입으면 그만이란 걸 알면서 뭐가 그리 신경쓰였던 걸까요.


중학교 입학식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순간부터 이날을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교복 입는 학생이 되는 그날이 '어린이 끝, 청소년 시작'의 역사적 순간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다렸는데 돌아보면 그날이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그토록 입길 원했던 교복 때문이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교복값이 비싸서 어머니가 교복 한 벌을 얻어오셨는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입학식을 위해 운동장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어요. 제 옷만 달랐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자켓에 단추가 달려 있는 방향이 달랐죠. 네,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아들 입으라고 동네 어느 딸래미 옷을 업어오신 겁니다.


입학식 내내 눈에 띄지 않길 바랐지만 불가능한 소망이었죠.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줄을 서다 보니 차이는 쉽게 드러났습니다. 저마다 처음 입은 교복에 관심도 컸으니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놈이 큰 소리로 "얘 여자옷 입었다"하고 소리쳤지요. "남의 교복 얻어입었나봐"하는 비아냥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 여자옷 얻어입었다 씨발아"하고 답한 것도요.


그렇게 시작된 중학 3년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였습니다. 참 많이 싸웠고 반 이상 졌지만 또 일어나 달겨들곤 했죠. 그래도 풀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깊은 곳에 똘똘 뭉쳐 가슴을 콱- 하니 막고 있는 듯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옷 하나 달리 입는 것도 그토록 마음 불편한 일인데 하물며 피부색이 다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내 피부색이 주류의 그것과 다르다는 게 말예요.


영화 <겟 아웃>은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차이가 차별로 악화되는 현실 속 상황들을 극적으로 버무려 장르영화 가운데 영리하게 녹여냈죠.


안화백, 강대리, 금강아지와 대화를 나누며 보말이었던 평가는 추천이 되었습니다. 이번 방송이 여러분께 그런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한 번 들어보시죠. 블랙리스트 제199번째 방송, <겟 아웃>편입니다.

http://m.podbbang.com/ch/episode/7703?e=22304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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