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무너지는 담벽을 지탱하고 선 나무의 심정으로

블랙리스트 201방.

by 김성호

무너지는 담벽을 지탱하고 선 한 그루 나무의 심정으로, 갈수록 찾는 이 적어지는 비디오가게 주인장의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때를 만나 뜻을 펼치고픈 마음이 없었을까요. 어쩌다 걸음 멈춘 자리에 운명이 들어서고 어쩌다 붙어버린 마음이 발마저 붙여버린 거겠죠. 정말이지 마음이란 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자타공인 액션영화의 맹주였던 홍콩영화가 몰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소룡과 성룡, 이연걸의 후계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죠. 어디 홍콩영화 뿐일까요.


CG와 대역으로 점철된 가짜 액션이 진짜를 몰아내는 세상입니다. 스크린 위에선 뒤뚱뒤뚱 뛰어다니는 잘 빠진 배우들이 손발 빠른 못난이들을 밀어낸지 오래입니다. 교묘한 속임수와 진짜 액션도 구분할 줄 모르는 요즘 관객들 앞에서 진짜를 찍겠다고 찍어야만 한다고 수십번씩 카메라를 다시 돌리는 멍청이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이 영화를 만났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떨어지고 구르면서 자기들만의 예술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액션키드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던 걸 저는 몰랐습니다. 바보같지요. 이문 안 남는 판에서도 가진 전부를 내던지며 스스로를 불태우는 청춘을 저는 보았습니다.


어떻게 조롱할 수 있습니까. 전부를 바쳐 얻은 그 결실을. 돌밭에 뿌리 박은 그 결단을.


<악녀>는 액션을 아는 사람이라면 혀를 휘두르며 볼 만한 영화입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단점이 숭숭이지만 이야기에 앞서는 액션이 있음을 알게 하는 근성 있는 작품입니다.


블랙리스트 201번째 방송으로 <악녀>를 다룰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http://m.podbbang.com/ch/episode/7703?e=2231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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