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항해사가 되기로 한 건 우연한 결정이었다. 이전의 삶에 불만을 느끼지도 않았고 새 길을 가는 과정에서 손 안에 쥔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도 적지 않았다. 가까운 모든 이들이 반대했고 나 스스로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새 길을 걷기로 한 데는 그저 '가고 싶다'는 충동이 구할 이상을 차지했다. 다른 세상을 봐야 다른 글을 쓸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이들, 이를테면 세르반테스와 허먼 멜빌, 생텍쥐페리와 리처드 바크의 이름이 지지대가 되어주었으나 돌아보면 결코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단순한 충동이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는 이유라는 걸 안다.
어떤 충동이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항해사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별다른 감상이 일지 않는다. 몇년 배를 타고 얼마를 벌겠다거나 어느 회사에 가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다른 항해사 지망생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을 계획 같은 것도 없다.
그저 큰 바다를 가로질러 본 적 없는 풍경, 윌리엄 터너가 돛대에 몸을 묶어가며 보고자 했던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겪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와 마주하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면접관들이 나를 거부한 건 이런 모습이 은연 중에라도 드러났기 때문일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누가 나를 뽑겠는가.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 와서 지난 몇 달 간 나는 돈과 직업, 애인을 잃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면접에는 줄줄이 낙방하고 제대로 실습을 할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까지 몰아닥친다. 몹시 귀찮긴 하지만 마음을 터놓던 친구놈까지 떠나버리고, 나는 실습선에 그냥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의욕도 없고 기운도 없다. 매일 밤 늦게까지 온갖 생각으로 잠 못 이룰 때가 많다. 나라는 인간이 정말 이렇게 약했나 싶다. 고작 이 정도로 먼 바다까지 나갈 생각을 했다는 것인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인간이란 대체 얼마나 오만한가.
모든 인간은 제 삶을 이끄는 항해사다. 일찌기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라는 눈 밝은 이가 썼듯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 그렇다면 지난 한 달 간 내게 주어진 역경이 바로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풍경 가운데 하나일 지 모를 일이다. "애송아 너는 나를 감당할 수 없어!"하는 자연의 외침 같은 것.
직업을 잃고 돈을 잃고 애인마저 잃고, 더 잃을 수 있는 게 몇개쯤 남았나 헤아려 본다. 새 항로에서 만난 첫 태풍은 제법 거세고 배는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제 알아볼 때가 되었다. 나는 내 배를 목적한 곳으로 이끌 선장인가.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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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ctus -William Ernest Henley-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