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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01. 2021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갈 길은?

파이낸셜뉴스 게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영화평.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3]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포스터


<어벤져스>와 스핀오프에 이어 드라마 시리즈까지, 마블의 연이은 성공에 긴장한 소니의 대안이었을까? 아드레날린이 과다분비되고 있는 것만 같았던 영국 출신의 청춘스타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한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더 강하고 멋졌다.


사실 앤드류 가필드로의 변화는 당시로선 놀라운 선택이었다. 특유의 만화적인 구성과 특색없는 전개에도 <스파이더맨>시리즈가 연이은 성공을 거둔 건 상당부분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캐릭터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하루하루가 힘든 비정규직 사진기자, 눈 앞의 사랑을 붙잡지 못하고 찌질하게 주저하는 남자, 그것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태생부터 남다른 능력을 지닌 히어로들과 엄청난 재력가들 사이에서, 거미에게 물려 비범한 능력을 얻은 평범한 대학생이란 위상은 그야말로 특별한 것이었다. 더 똑똑하고 더 강한 히어로가 되는 대신, 더 평범하고 더 찌질하고 더 얻어맞는 영웅이 되기를 선택한 스파이더맨의 역주행은 더욱 신선하고 쿨해보였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를 지켜보고 결국 동경하게 되는 철저한 방관자 닉을 연기한 토비 맥과이어였다. 수퍼 히어로로 그보다 부적격인 인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파이더맨>이 되었고, 그 역발상은 3편까지 이어진 평범한 시리즈를 성공시킨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그러나 앤드류 가필드는 어땠나? 젊고 멋진 배우가 연기한 수다스럽지만 활기차고 쇼맨십까지 있는 스파이더맨. 그에게는 강력한 연적이나 생활고 같은 문제따윈 없었다. 그저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컴플렉스와 그로 인한 정서적 결핍이 전부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매력적인 연인과 뉴욕 최고의 영웅이라는 위상, 마블코믹스 캐릭터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인기와 끝내주는 능력까지.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기존의 스파이더맨보다는 차라리 배트맨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고아 컴플렉스에 시달리지만 귀족적인 책임감으로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맨과 뉴욕의 영웅 스파이더맨은 과연 얼마나 비슷했는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한 장면. 피터 파커와 그웬 스테이시.


그러나 21세기 극장가에 잘 빠지고 멋진 히어로는 넘쳐난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유일한 찌질이 히어로였지만 앤드류 가필드의 히어로는 한 해에도 몇 번씩 극장가를 찾아오는 그렇고 그런 히어로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캐릭터가 이러한데 구성 역시 좋을 리 없다. 한 영화에 여러 명의 악당이 나올 때는 치밀한 구성이 필수임에도 영화는 그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듯 보였다. 악당 3인방인 일렉트로와 해리, 라이노는 서로의 분량을 잡아먹기 바쁘다. 악당들의 드라마는 그들에 대한 공감을 자아낼 만큼에 이르지 못하고 어설픈 설명으로 끝날 뿐이다. 일렉트로의 분노는 방향을 잃은 채 허공을 맴돌고, 해리는 강한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지 못한 채 캐릭터에 갇혀 사그라진다. <영구와 공룡 쭈쭈>의 도심액션신을 연상시키는 라이노의 등장은 차라리 나오지 않느니만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철저히 히어로를 위한 히어로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스파이더맨이 타임스퀘어에서 일렉트로를 제압하는 장면은 곧 뉴욕 최고의 인기 스타가 외로운 소시민을 제압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파이더맨과 그웬이 일렉트로를 처단하고 비행기 충돌을 막는 장면은 뉴욕의 영웅이 예견된 시나리오대로 뉴욕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시계탑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를 보라. 출동한 경찰 수십 명이 고작 한 명의 악당을 제압하지 못하고, 수도 없이 스파이더맨에게 목숨을 빚지며, 그가 잠적하자 무능하게도 그의 귀환만을 바란다. 어떻게 이리도 오만한가? 뉴욕은 정말 스파이더맨의 도시일 뿐인가?


자신이 가진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였겠지만 마크 웹 감독이 히어로 영화 속으로 굳이 청춘멜로와 드라마를 끌어온 것 역시 무리수처럼 보인다. 예쁜 장면들과 로맨스는 여성과 십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본래 시리즈의 멋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액션과 청춘로맨스, 드라마와 코미디, 어느 하나 새롭거나 멋스럽지 않았고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가운데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했다. 그저 실망스러울 뿐이다.


그럼에 2017년에 이르러 톰 홀랜드가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낙점된 건 우연이 아니다. 마블 세계관으로의 귀환일 뿐 아니라 개구지면서도 공감을 사는 캐릭터로의 회귀이기도 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빠진 어벤져스에서 스파이더맨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앤드류 가필드와 토비 맥과이어가 거둔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얻은 교훈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에서 김성호 기자와 동료들이 나누는 더 깊은 영화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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