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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20. 2021

'1세대 기자'의 회고록, 자랑만 있고 반성은 없네

오마이뉴스 게재, <대한민국 기자>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79] 김영수의 <대한민국 기자>


▲ 대한민국 기자 책 표지ⓒ 세계사


'기자다운 기자가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 시대, <대한민국 기자>라는 위풍당당한 제목을 단 책 한 권이 나왔다. 판매부수로 언론계 수위를 다투는 조선·중앙·동아가 한데 묶여 '찌라시' 소리를 듣고 '기레기'(기자+쓰레기)가 기자의 일반명사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이 책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책은 조·중·동 3대 일간지를 거쳐 MBC 보도국장까지 지낸 한국의 1세대 기자 김영수의 회고록이다. 4.19 혁명부터 두 차례 군부독재를 거쳐 민주화를 맞이하기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헤쳐온 기자의 글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기자>라는 제목도 제법 그럴싸하다. 격동의 시대를 일선 기자로 살아오며 겪은 순간순간의 기록이 다른 자료에서 맛보기 어려운 생동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육영수 여사 피격 당시 MBC 보도국장으로 특종보도를 지휘한 사건이나 김종필 2차 외유의 원인이 된 기사를 써낸 사건 등 책에는 현대사의 뒤에 감춰진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여러 신문사와 방송국을 옮겨 다니며 파란만장한 기자생활을 마치고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잠시 외유를 하기까지, 가치판단을 논외로 하면 기자 김영수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1세대 기자의 모범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회고록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가치, 즉 독자로 하여금 시공간을 넘나들며 간접경험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기자>, 이래서 아쉽다


아쉬움도 없지 않다. 1세대 기자이자 기자협회를 창설한 주역으로서 오늘날 한국의 언론지형을 바라보는 시선이 충분히 등장하지 않은 점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오늘의 독자와 만나는 회고록에서 중요한 건, 시공간을 초월한 현재적 가치다. 그런데 이 책 가운데서는 오늘의 기자사회와 언론, 나아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야에 자극이 될 만큼의 시각과 통찰은 발견할 수 없다.


34살의 나이에 당대 최고의 신문이라던 <동아일보> 정치부 부장으로 활약한 그가 고용절벽 시대를 살며 갈수록 사회진출이 늦어지는 후배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겼다면 어땠을까? 옳지 않은 것에 항의하며 기자 정신을 외치다 소송전에 휘말리고 생활인으로서의 자리까지 잃어가는 후배들을 향한 '대한민국 기자'의 시선을 녹여냈다면 어땠을까? 1세대 기자의 회고록에서 후배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찾는 게 과연 지나친 욕심인 걸까?


지나간 시대를 살아간 기자의 회고를 접하고서도 흥미로움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점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기자라는 직업이 대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기자란 무엇일까. 삶의 대부분을 기자로 살아온 저자 김영수는 기자를 '기록하는 자'라 정의했다.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한 것인데 말 그대로 격동하는 시대상을 기록해 전하는 자가 기자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처럼 기자의 역할이 그저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중요한 직업이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 기자는 감각세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안팎의 자극을 느끼고 위기상황을 경고하는 감각세포는 유기체의 존속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기자 역시 이와 같다. 한 사회의 상황을 진단하고 문제를 드러내 알림으로써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되는 데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시선으로 문제를 발굴해 전함으로써 다원성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달에 기여하는 것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기자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기자의 권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오늘날 기자라는 직업이 가졌던 권위가 땅에 처박혔다. 민주시민의 알 권리를 대리해 수행해온 기자들이 바로 그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추한 언론의 민낯을 백일하에 드러낸 세월호 참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그보다도 오랜 기간 쌓인 불신이 더욱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15년 한 해만 해도 얼마나 많은 영화와 만화, 드라마, 소설 등이 기자 사회를 희화화하고 비꼬았던가.


하지만 희망을 거두기엔 이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많은 기자가 직업적 사명감을 갖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제약과 개인적인 능력 문제로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달리는 기자가 적지 않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수일 수 있겠으나 그렇다 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 전체가 '월급쟁이' '기레기'로 폄하돼선 안 된다.


기독교 성서에서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할 때 아브라함은 그 도시에 열 명의 의인이 있다면 그래도 멸하겠느냐고 물었다. 신은 '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처음 이 나라에 기자협회가 생겼을 때 그 회원이 고작 소수에 불과했다. 오늘 나 하나가 알고 있는 기자다운 기자가 열에 가까운데 이 나라엔 대체 얼마나 많은 좋은 기자들이 있을까? 나는 이 나라 기자들이 모두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


올 하반기 개봉해 화제를 모은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나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그린 것처럼 대다수 기자들이 월급쟁이처럼 보이는 게 현실일지라도 여전히 그렇지 않은 기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민주사회의 선배로서 뒤따르는 후학들에게 <대한민국 기자>와 같은 책을 써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책에는 유정회 국회의원 경력 따위를 미화하지 않는, '기자다운 결기'가 담겨있길 바란다.


"직장 후배들을 도울 수 있어 좋았다"라고?


다음 색이 다른 글귀는 책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 김영수씨의 회고가 다음과 같이 읽혔다.


"유정회 멤버 개개인들의 인품이랄까, 학력과 경력 등 총체적인 됨됨이만큼은 대개의 지역구 의원들보다 그 수준이 높았던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막걸리 잘 사고 잘 먹는 사람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 독재엔 거부감이 있었으나 유정회 멤버 개개인의 인품이 마음에 들어 유정회 국회의원 자리를 수락했다.


"나는 5.16이 처음 몹시 못마땅했었다. 박정희 저 사람이 우리나라의 헌정질서를 유린했다, 군대가 민의를 뒤엎었다고 생각했다. 거의 한 1년 반 이상 박정희 대통령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러다 정치부 기자로서 가까이에서 지켜본바, 그가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는 집념은 높이 살 만한 것이었다. 월남전 참전, 중동특수 등 몇 가지 국제적 요인도 있었지만 경제개발에서 성과가 나지 않았던가."


→ 헌정질서를 유린한 독재자지만 경제를 일으켜세운 집념은 높이 살 만했다.


"언론 광고에 관한 법률안이 나왔는데, 보니 MBC에 불리한 내용이었다. 나는 최석채 MBC 회장과 이환의 MBC 사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MBC의 국회 출입기자들과 공조할 것을 논의하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의원직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게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내가 몸담고 있던 직장 후배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


→ 국회의원은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자리가 아니지만 남몰래 직장 동료를 도울 수 있어 좋았다.


"이번엔 MBC노조에서 나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 반대 대열의 맨 앞에는 보도국장 시절의 내 후배들도 다수 보였다. 그들은 내 출근을 막았다. 반대 시위는 점점 극렬해져 갔고, 그 임계점으로 치닫는 듯했다. 더 진행되면 공권력이 투입될 시점이었다. 착잡했다.

내 후배들이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걸 어떻게 보나. 착잡했고 서운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대구경북, 소위 TK 출신이라 같은 지역 출신 노태우 대통령의 낙하산쯤으로 여겼던 것일 게다. 하지만 과거 MBC에서 나는 보도국장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그뿐이다."


→ 열심히 하다 보니 사장으로 임명된 건데 후배들이 낙하산이라며 들고 일어나 서운했다.


어떤가? '대한민국 기자'의 회고록이.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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