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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15. 2021

'병맛' 글이 천만 조회수, 읽을 만한 이유

오마이뉴스 게재, <참붕어의 헛소리뷰>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78] 리뷰적 상상력이 담긴 <참붕어의 헛소리뷰>


다른 모든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영화평론 역시 수용자를 전제로 한 표현물이다. 영화를 1차 창작물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비평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독립된 분야라 할 수 있다. 단순한 감상을 넘어 영화의 의미와 가치, 상징 따위를 발견하고 해석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욱 깊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자기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 해석의 폭을 넓히는 것부터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으나 관객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고 전달하는 역할까지가 영화평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영화평론의 권위와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영화 애호가들에게조차 영화평론가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글이 소외받는 시대라지만 신춘문예 영화평론은 그들만의 리그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수준 높은 영화애호가들조차 영화평론 수상작을 해독하는데 애를 먹기 십상이다. 그마저도 해독하고 나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없게 여겨지는 글이 태반이다. 영화평론이 내놓은 새로운 가치는 더 이상 가치 있게 다가오지 않는데 온라인상에서는 영화에 대한 다종 다양한 정보가 말 그대로 쏟아진다.


20년 전, 영화평론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을 그 무렵을 생각해 본다. 영화전문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없던 시절, 수도 없이 돌려봐서 흐릿해질 대로 흐릿해진 비디오를 또 한 번 돌려보며 더 넓어지는 대신 차라리 깊어지고자 했을 비디오키드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타란티노나 박찬욱, 또는 이름 모를 회사원이 되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영화제목을 타이핑해 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독과 배우부터 제작 과정에서의 온갖 가십거리까지 더는 원하지 않을 만큼 얻을 수 있다. 그뿐인가.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수도 없는 리뷰가 쏟아지고 TV채널에선 영화소개를 빙자한 광고물을 쉴 새 없이 토해낸다. 영화에 목마른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이다. 목마른 사람이 없으니 깊이 파는 사람도 없고 깊이 파는 사람이 없으니 평론을 구하는 사람도 적다.


이런 상황에서 평론은 평론대로 관객과 멀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모인 평론의 세상에서 대중의 존재는 관심 밖이다. 평론은 갈수록 난해해지고 점차 그들만의 용어와 문법으로 가득 찬다. 일부 쉬운 언어와 독창적인 스타일로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두 대륙 사이에 걸칠 만큼 긴 다리를 가진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둘은 조금씩 멀어지다 마침내는 서로를 경원시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평론이 방을 뺀 대중의 공간에서 과거 평론이 해온 역할은 리뷰가 대신한다. 포털 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영화평 대부분이 리뷰다. 리뷰엔 한없이 가벼운 감상부터 전문가 못지않은 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특히 일부 리뷰는 대중의 언어로 영화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얼마쯤 평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의 평론이 그들만의 언어와 양식을 채택해 고립되지 않았다면 리뷰와 평론의 구분이 무의미했을 것이다.

            

▲ 참붕어의 헛소리뷰 책 표지ⓒ 다생


<참붕어의 헛소리뷰>를 쓴 네이버 필명 '참붕어'는 나름대로 성공한 리뷰어다. 2006년부터 10년 가까이 네이버 영화에서 400편 가까운 리뷰를 썼고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단다. 이 책은 그가 네이버에 쓴 리뷰 가운데 독자의 호응이 컸던 글을 추린 것이라고 한다. 비교적 최신 개봉작 위주로 가려 뽑아 시의성도 갖췄다.


물론 큰 기대를 갖고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이미 쓴 글을 책으로 옮긴 것으로 어떤 주제의식이나 통일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영화리뷰로서 가치도 특출나게 여겨지진 않는다. 말 그대로 헛소리 반 리뷰가 반이지만 책의 제목이 '헛소리뷰'라니 차라리 솔직하다고 하겠다.


장점이 없진 않다. 리암 니슨을 니암 리슨으로 쓸 만큼 형편없는 지식을 갖췄으나 <겨울 왕국> 리뷰 등에서 엿보이는 잡학다식 함은 일품이다. 출판물치고 놀라울 만큼 많은 오자가 발견되는 무신경함이 불쾌하게 여겨지고 실린 글 사이에 재미와 통찰, 문장 등의 측면에서 편차가 크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읽히는 글 솜씨와 재치는 인정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소수이긴 해도 조금씩 엿보이는 남다른 해석이 '헛소리뷰'가 헛소리만이 아닌 리뷰적 성격을 지녔음을 알게 한다.


인상적으로 읽었던 장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라이즈> 부분은 언급할 만하다. <인터스텔라> 리뷰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를 '첨엔 <미지와의 조우>처럼 굴다가 나중에는 <화성침공>처럼 일방적으로 당해버리곤, <우주전쟁>처럼 허무하게 이겨버리는 것'이라고 평가한 부분은 <참붕어의 헛소리뷰>가 가진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맞추지 않은 로또를 '슈뢰딩거의 로또'로 표현하는 기발함도 그렇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선 브루스 웨인이 대기업 총수로서 범죄에 대응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비판하는데 특유의 병맛스러움 가운데 존중할 만한 통찰이 살아있어 읽어볼 만한 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장에선 소위 '어그로'를 끌어대는 수준이지만 내용과 문장 모두 나름의 스타일과 매력이 있어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군데군데 적절한 풍자와 비평도 곁들여져 읽는 이로 하여금 영화와는 또 다른 창작물의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참붕어의 헛소리뷰>가 평론이 담당해야 할 역할의 일부를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심지어 기존의 점잔빼는 평론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참붕어만큼의 통찰도 보여주지 못하고 답 없는 어그로만 끌어대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가치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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