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사우디 아라비아 항구는 외국인이 돌린다. 입항하는 배의 줄을 잡아 묶는 노동자부터 정박한 선박에서 일하는 화물작업자까지, 육체노동자라 할 만한 사람은 외국인 일색이다. 사우디 사람이라곤 항만에 고용된 도선사나 세관.이민.검역당국 공무원이 전부로, 말쑥한 차림에 방금 전까지 에어컨 바람을 쐬다온 듯한 인상이 '나는 험한 일하는 사람이 아니오'하고 말을 하는 듯하다. 더러운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식히는 외국인과 배에 오르는 잠깐의 더위에도 연신 찡그리는 사우디인을 번갈아 바라보니 '사우디에 가면 노예들이 일을 한다'던 전 일항사의 말이 떠올랐다.
노예제를 일하는 자와 누리는 자가 구분된 체제로 이해한다면 사우디는 철저한 노예제 국가나 다름없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어느 나라가 다르겠냐만 사우디만큼 확연하게 이런 특징이 보이는 나라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곳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출신이다. 행색을 보면 작업인부인지 방금 거리에 나가 부랑자를 모아온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업계 최악을 찍는 처우를 받으면서도 사우디 항만으로 굴러들어온 걸 보면 이전의 삶도 순탄치 않았음이 분명한데, 일은 그지같이 하면서도 자존심은 대단들 해서 함께 일하자면 울화통이 터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들이 한 달 일하고 받는 돈은 사우디법에 따라 2500리얄(70만원 내외) 정도다. 하지만 작업자들은 하나같이 실제 손에 쥐는 돈이 그보다 훨씬 적다고 푸념한다. 일선에선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잦다는 뜻이다. 근무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무더위 속에 종일 매연을 들이마시며 일해도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 음료수조차 제공되지 않아 본선 선원들에게 물을 구걸하는 모습은 보기에 딱할 정도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빈둥대는 인부들에게 욕설을 찌끄리는 관리자를 보며, 성실할 수 없는 대우를 하며 성실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사우디는 최저임금도 공공과 민간,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차등을 둔다. 석유에 의존해 꾸려진 방대한 공공부문은 사우디인이 꿰찼고, 이렇다 할 주력산업이 부재한 민간부문은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진다. 이들의 임금격차는 최저임금으로 계산할 때 두 배가 넘으며, 평균치는 그보다 크다. 오만이나 UAE 같은 주변국보다 열악한 처우지만 특별한 자격조건 없이 쉽게 입국해 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외노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력은 사우디 경제를 떠받친다. 사우디 전체 인구 가운데 삼분의 일 이상이 외국인이며 이들 절대다수가 산업현장에 투입돼 있다. 저유가와 내국인의 극심한 실업문제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한 사우디 정부가 자국민을 민간영역에 투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공공과 민간부문 사이의 격차는 정부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고 있는 현실이다.
언젠가 사우디 항구에서 사우디 사람이 땀흘려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날이 내가 웃으며 사우디 항구에 입항하는 첫날이 될 테다.
2018.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