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권대희 사건

by 김성호

2019년 봄이었다. 취재 차 국회에 들어서는데 1인 시위를 하는 사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의료사고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라 했다. 그가 든 팻말엔 ‘수술실CCTV 의무화’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몇 년 전이었나. 막 수습을 떼고 기자를 시작했던 시절이니, 2015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도 피켓을 목에 걸고 서 있던 자식 잃은 아버지를 보았다. 성형외과에서 자식을 잃었다며, 병원이 CCTV를 내주지 않아 의료과실을 증명할 수 없다며, 더운 여름날 국회 앞에 서서 그와 나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기사는 나가지 않았다. 막 수습을 뗀 기자가 들고 온 아이템을 선배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워낙 잦았으므로, 2019년 또 다른 만남이 있기까지 나는 그 기억을 잊고 살았다.


4년이었다. 그사이 나는 뱃사람이 되어 한국에서 중동으로,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 곳곳으로 자동차를 실어 날랐다. 고되지만 멋진 일이기도 했다.


돌아온 고국에서 나는 다시 기자가 되었다. 글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오랜 꿈이었으므로, 그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생활경제부로 배치됐다. 그중에서도 식품, 주로 프랜차이즈 업계를 다뤘다. 오전 내내 들어온 보도자료를 처리하고 가끔 취재기사를 냈다. 취재라고 해봐야 요즘 어느 제품이 잘 팔린다, 어떤 브랜드가 인기 있다 정도였다. 하다 보니 나름대로 의미도 있었고 재밌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업계가 바라는 법안이 하나 있었다. 뭐가 좀 뜬다 하면 너도나도 베끼는 게 프랜차이즈다보니 이걸 좀 규제해보자는 것이었다. 2+1인가, 직영점 2곳을 1년 이상 운영해야 가맹사업 허가를 내주는 법안이었다.


약속을 잡고 의원실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선 사내, 그가 들고 있는 팻말에서 수술실CCTV란 문구를 보았다.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4년 전 만났던 그 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외동딸을 잃은 그가 섰던 자리에 또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었다. 이 나라는 참 변한 게 없었다.


1인시위를 주도한 단체에 연락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부서 영역이 아니라도 토요일엔 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었다. 나는 매주 원하는 이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대개는 영화와 록밴드, 마술 같은 분야였지만 이번엔 의료사고 피해자를 만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4년 전과는 많은 게 달라졌으므로.


그렇게 이나금 어머니를 만났다. 권대희 사건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날 진행한 인터뷰 기사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매직스피커는 모든 촛불을 응원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그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촛불이 태운 빛을 세상에 전하는 거울이고자 합니다. 작고 소중한 빛을 그를 필요로하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빛을 지켜내는 파수꾼의 마음을 퍼뜨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촛불들이 거센 바람 앞에 위태로운 밤을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이 홀로 타버리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거울이 될 겁니다. 스피커가 될 겁니다. 부디 우리의 시도가 마법처럼 빛나기를!]


나는 내가 이날의 다짐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