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희가 살았다면 올해로 서른이다. 하지만 대희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10월 26일이 기일이다. 2016년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물다섯이었다.
그해 대희는 군대를 전역했다.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복학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취업하길 원했다. 창창한 젊음이었다.
대학교에서 절친한 사이로 지낸 노경민씨는 그가 가난했다고 생각했다. 늘 같은 셔츠 몇 벌을 돌려 입었고 학생식당에서 제일 싼 메뉴로 떼우기 일쑤였다. 복학한 뒤에는 늘 두 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쁜 와중에도 악착같이 공부를 놓지 않는 모습이 멋지면서도 안쓰러웠다.
경민씨에게 대희가 속내를 털어놓은 건 사고가 있기 한 달 전쯤이었다. 어렵게 입을 뗀 대희는 그동안 양악수술을 위해 돈을 모았다고,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튀어나온 턱이 오랜 콤플렉스라고 했다. 학창시절 놀림을 받았는데 늘 고치고 싶었다고 했다.
경민씨는 너무나 후회가 된다. 조금만 더 말렸더라면, 가족을 찾아 알리기라도 했다면, 어쩌면 달라졌을까.
사고는 늘 그렇게 일어난다. 대비할 수 없고 후회만 남긴다. 수술을 받던 날 경민씨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을 나서던 대희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았을 땐 끔찍한 모습이었다.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경민씨는 그날 이후 병원이 두렵다고 털어놓는다.
2016년 9월 26일이었다. 대희는 경민씨에게만 말하고 강남 한 성형외과를 찾았다. 안면윤곽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병원은 발품을 팔아 정했다. 몇 달 간 십 수 곳을 돌았다고 했다. 전문의가 직접 수술을 하는지, 마취의는 상주하는지도 꼼꼼히 체크했다. 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책임진다는 광고문구가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뉴스에서 본 부작용이 있을까 걱정돼 물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들었다.
훗날 가족이 열어본 수술실CCTV엔 충격적인 장면으로 가득했다. 대희가 흘린 피가 시트를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데 신경 쓰는 사람 하나 없었다. 간호조무사는 대걸레로 바닥을 쓱쓱 밀어 닦았다. 무려 13번을 닦았다.
감정을 받고서야 알았다. 수술 중에 흘린 피가 3500cc라고 했다. 대희 몸무게 사람 몸엔 대략 5000cc가 있다고 했다. 전체 피의 60%가 넘었다. 병원엔 수혈할 피도 없었다. 혈액요청도 없었다.
집도의는 턱만 절개하고 자리를 비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던 그가 나가자 앳된 여자의사가 들어왔다. 집도의는 다른 수술실에서 다른 수술을 집도했다. 나중에 경찰은 동시에 3건의 수술이 이뤄졌다고 했다. 대희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마취과 의사도, 대신 들어온 여자의사도 수시로 자리를 비웠다. 대희 피는 계속 흐르는데 곁에는 간호조무사뿐이었다. 간호조무사 홀로 수술실에 남아 대희를 지혈한 시간만 30분이 훌쩍 넘었다.
회복되지 않은 대희를 두고 의사들은 모두 퇴근했다. 대희 곁엔 간호조무사뿐이었다. 휴대폰을 보고 화장을 고쳤다. 대희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도의가 돌아온 건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대희는 중앙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된 뒤 49일 만에 숨졌다.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향년 스물다섯. 졸업도, 취업도, 결혼도 하지 않았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