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희 사건
시침이 막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이날도 늦게 퇴근한 태훈은 카페에서 다음날 할 업무 정리에 한창이었다.
그때였다.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늦은 시각, 태훈은 전화를 받았다.
태훈은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평온했다. 동생이 성형수술을 받고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수술을 잘 끝났고 회복실에 있다 혈압이 좀 낮아졌다고 했다. 별 일이 아니라는 투였다.
대희가 수술을 받는지도 모르고 있던 태훈은 동생이 있다는 중앙대학교병원으로 달려갔다. 마주한 동생은 처참했다. 환자복은 피투성이였고 의식도 없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 마주보기 힘들었다. 처참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있던 성형외과 마취의사는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진다”며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입원한 중앙대병원 의사 말은 달랐다. “상태가 좋지 않다”며 “저체온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몸에 피가 부족해 혈액순환을 늦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태훈은 떨리는 손으로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대희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차마 어머니를 부를 생각도 못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렸다. 태훈은 그날부터 휴가를 내고 동생 곁을 지켰다.
수술실CCTV와 의무기록지를 확보한 뒤 태훈은 격한 분노를 느꼈다. 병원이 태훈에게 연락하기 전 대희는 심장이 한차례 멎었었다. 심폐소생술이 이뤄졌고 겨우 다시 숨을 쉬었다. 의식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수술이 잘 끝났다”며 큰 병원에서 회복 중이라고 했다.
대희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을 때, 응급실로 옮겨질 때, 그때라도 연락을 줬더라면 태훈은 용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사랑한다”고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줄 수 있었을 테니.
태훈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수술 받기 이틀 전이었다. 설레는 표정으로 항공권을 예약했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흠뻑 흘리며 아르바이트를 해 산 유럽행 항공권이라고 했다. 다음해 2월 출국이라며, 나중에 경비가 부족하면 돈을 좀 보태달라고 했다.
대견한 마음부터 들었다. 형이 되어 함께 가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한 달 뒤 태훈은 참담한 마음으로 항공권을 취소했다.
CCTV를 본 태훈은 화가 치밀었다. 태어나 가장 분노한 게 그날이 아닐까 싶다. 수술실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집도의와 마취의가 자리를 비우고, 간호조무사가 혼자 지혈을 하고, 조무사들이 대희가 쏟은 피를 대걸레로 닦아냈다. 그러고도 부족해 여러 시간 동안 홀로 방치됐다.
소송을 해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한 건 태훈이었다. 의료법 위반사항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다른 병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무거운 처벌을 받을 거라 믿었다.
병원은 도리어 좋아라했다. 어머니를 찾아 “말이 통하는 건 아드님뿐”이라 했다. 아무렇지 않게 바로 영업을 했다. 홈페이지엔 버젓이 ‘14년 무사고’ 광고가 걸려 있었다. 대희가 병원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가 된 바로 그 문구였다.
우린 병원 과실을 입증하려고 모든 걸 내던졌는데 병원은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 모두 다 맡겨버리고 영업에 열을 올렸다. 피해자는 우리 가족인데 왜 우리가 더 고통 받는 거지? 태훈 머릿속엔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태훈은 성형외과 어플과 커뮤니티에 사고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소용이 없었다. 병원이 계속 모니터링을 하는지 올리는 족족 삭제됐다. 병원은 “자꾸 이러면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거 올리지 말고 그냥 법대로 하자”고 선심 쓰듯 말했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