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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Feb 17. 2022

한국은 호랑이 멸종위기 부른 주요 국가였다

오마이뉴스 게재, <호랑이여 영원하라>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03] <호랑이여 영원하라>


▲ 호랑이여 영원하라 한반도에 서식했던 백두산호랑이는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뒤 한반도 남쪽에서 자취를 감췄다. ⓒ 산림청


한국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동물원 철창 안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권태롭고 기운빠진 커다란 고양이 말고, 깊은 숲에 살며 온 생명을 호령하는 진짜 호랑이가 이 땅엔 살지 않는다. 온갖 중요한 상징물에 호랑이 모양을 넣기를 즐기는 이 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대체 어떻게 대했길래 국토의 70%가 산림이라는 이 나라에 그 많던 호랑이가 한 마리도 남지 않은 것일까?


지난 26일 주목받는 뉴스 하나가 있었다. 산림청이 중국이 기증한 백두산 호랑이 2마리를 방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산림청은 두만과 금강이란 이름의 수컷 호랑이 두 마리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안 호랑이 숲에 옮겼다고 밝혔는데, 이들은 이곳에서 적응훈련을 받은 뒤 방사돼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반도에서 멸종된 백두산 호랑이를 되살리겠다는 프로젝트로 수목원엔 국내 최대규모의 호랑이방사장(4만8000m²)이 꾸려져 최대 10마리까지 호랑이를 수용할 수 있다. 산림청은 올 상반기 중 과천 서울대공원 등에서 암컷 두 마리를 포함해 호랑이 세 마리를 더 들여올 계획이다.


백두산 호랑이가 한반도 남쪽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건 지난 1921년의 일이다.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목격된 뒤 단 한 마리의 호랑이도 발견된 바 없다. 한국은 공식적인 호랑이 멸종국가로 분류된다.

100여년 전 산마다 득시글 거렸다는 호랑이가 멸종된 건 인간이 호랑이와의 공존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가죽과 이빨, 뼈 등을 얻기 위해 수렵을 적극 허용했던 정책적인 문제도 없지 않다. 산중의 왕으로 한반도를 호령했다는 호랑이의 멸종에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은 과연 없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호랑이 되살리기 프로젝트



            

▲ 호랑이여 영원하라 책 표지ⓒ 글항아리


책 <호랑이여 영원하라>는 세계 곳곳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와 그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소개한 책이다. '호랑이여 영원하라Tigers Forever'는 대형 고양잇과 전문가로 꼽히는 앨런 라비노비츠를 중심으로 호랑이 보호를 위해 싸우는 각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멸종위기종 보호사업이다.


기업과 국가, 환경보호 단체 등이 폭넓게 참여, 호랑이의 개체수 증가와 인간과의 공존 등 당면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 걸쳐 조직화된 전 세계 최대범위의 멸종위기종 보존사업으로 손꼽힌다.


책은 이 사업을 널리 소개하고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1994년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로 활동해온 스티브 윈터와 보도사진가로 이름 높은 샤론 가이너프가 미얀마,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 전 지역을 오가며 호랑이 서식과 보호사업 실태를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책에는 오직 인간과 호랑이의 공존을 위해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쏟아부은 각계 인사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겼다.


독자는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 밀렵조직과 총격전을 벌이고 정부, 때로는 반군과의 협상까지 마다 않는 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인류가 호랑이라는 종을 멸종시키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전세는 여전히 열세다. 앨런 라비노비츠에 따르면 "경기 종료(호랑이 멸종)는 얼마 남지 않았고, 승산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종료 휘슬이 불리기 전까지 전 세계 모든 활동가들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 손에 들기 벅찬 두꺼운 사진집인 이 책을 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 두고 지난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읽었다. 어느 날은 보호구역 대원들이 호랑이를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밀렵꾼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또 어느 날은 운동가들이 반군 지도자와 목숨을 건 협상에 나서며, 다른 어느 날은 환경운동 지도자들이 부패 공무원과 사업체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법정에 서기도 한다. 호랑이를 제 땅에 살게 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읽어나가는 게 단지 도덕적으로 바람직함을 넘어 재미 있고 흥미로우며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바깥에 전하고자 나는 이 글을 썼다.


한국이 호랑이 멸종위기를 불러온 주요 국가였다니...

            

▲ 호랑이여 영원하라 실라를 죽인 범인은 대가로 100달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 스티브 윈터


책을 읽으며 처음 놀란 건 한국이 등장한 대목에서였다. 당연히 호랑이가 살았던 나라로, 혹은 호랑이 보호사업이 진행될 나라로 언급될 줄 알았으나 이 나라의 첫 등장은 그보다 훨씬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책에 따르면 한국은 1970년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6톤이 넘는 호랑이 관련 물품을 여러 경로로 수입했다. 밀렵된 호랑이뼈가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만 3.7톤의 뼈가 수입된 것으로 기술됐는데 이는 호랑이 500마리의 뼈를 모은 양이다.


호랑이뼈는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공인되지 않은 한약품으로 널리 거래된다. 중국에선 여전히 거래가 활발하고 이는 호랑이 보호사업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부자들이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구입하는 호랑이 가죽도 밀거래시장에서 공공연히 거래되는데 운동가들은 밀거래 시장을 파악하고 고발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모든 나라에선 호랑이를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호랑이 밀렵조직의 대립이 일상화돼 있는데 상당수 국가에서 밀렵조직과의 무력충돌이 빚어지곤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단연 인도네시아 타만 림보 동물원에서 벌어진 '실라의 죽음' 사건이다.


타만 림보 동물원은 금요일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관리 직원이 토요일 아침에 다시 출근하는데, 그사이에 침입 사건이 발생하곤 했다. 동물원에 침입한 자는 관람객에게 사랑받던 18년 된 암컷 수마트라호랑이 실라Sheila에게 진정제가 든 고기를 먹여 약에 취하게 했다. 그런 다음 실라의 배를 가르고 내장만 남겨둔 채 나머지를 모두 가지고 사라졌다. 나는 동물원에 침입해서 호랑이를 밀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 밀렵꾼은 버스를 타고 실라의 신체 각 부위를 옮기던 중 체포되었고, 실라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실라를 죽인 대가는 고작 100달러였다. -169, 170p


호랑이의 멸종을 막기 위해선 보호구역을 24시간 순찰하는 보호대를 유지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여전히 호랑이 가죽과 뼈를 원하는 시장이 있기에 이와 같은 보호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밀렵은 다시 성행한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케린치 세블랏 국립공원은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지난 2000년 설립된 특수경비대는 2012년까지 12년 동안 밀렵조직과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지난 12년 동안 산림 감시대 '호랑이 팀'은 작은 동물용 올가미 4590개와 호랑이용 올가미 139개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밀림에서 제거했다. 케린치 세블랏 국립공원 내 호랑이 수는 2006년 136~144마리 정도에서 현재 166마리로 늘어났다. 그러나 호랑이 팀은 규모가 아주 작다. 비무장 산림 감시원이 24시간 쉬지 않고 밀렵의 위험에 맞서 약1만3700제곱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공원 전역을 순찰하고 있다. -189, 190p


호랑이 보호는 밀렵과의 전쟁


▲ 호랑이여 영원하라 2011년 1월 인도 찬드라푸르 인근에서 호랑이 가죽을 매매하려다 체포된 밀렵꾼들. ⓒ 스티브 윈터


상당수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보호자들은 열세에 처해 있다. 태국 후아이카캥 보호구역이 대표적이다. 존경받는 원로 야생동물학자 세웁 나카사티엔은 이 지역 활동가와 산림부의 요청으로 보호구역 총책임자로 인명됐으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총책임자로 임명된 직후 세웁은 공원 전역을 유린하는 밀렵꾼을 추적한 끝에 그 배후에 군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 경찰이 보호구역 내 벌목에 불법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그는 국영TV 채널을 통해 이를 보도하게 했고 이후 살해위협에 시달렸다.


세웁에게는 자금과 인력, 뒤를 봐줄 고위층 인사의 지원이 턱없이 모자랐다.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는 밀림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이 사랑하던 동물이 계속 죽어가는 현실을 보며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1990년 9월 1일, 한밤중에 세웁이 살던 오두막에서 총성이 울렸다. 세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1p


밀렵꾼과 부패관료들의 위협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많은 환경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호랑이를 보호하려는 운동가들도 정부와 기업 등으로부터 고소고발에 시달린다.


환경보호운동가들과 함께 쿠드레무크 철광산 회사 폐업 판결을 얻어낸 후, 산제이 구비는 해당 회사를 지원해주던 산림부 관리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고소를 당했다. 이런 식으로 환경보호운동가를 괴롭히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9년이 지나서야 송사는 대부분 해결되었다. -271p


반면 밀렵꾼에 대한 처벌은 가볍기 짝이 없다. 인도야생동물보호협회에 따르면 1974년부터 2010년까지 적발한 호랑이 관련 범죄 885건 가운데 유죄선고를 받은 사건은 16건, 입건된 피의자는 41명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밀렵행위로 검거된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다. 밀거래를 진두지휘하는 조직 두목은 안전한 곳에서 아랫사람을 조종해 밀렵하고 거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검거돼도 가벼운 처벌만을 받고 범죄수익도 환수되지 않는다.


인도 최악의 밀렵조직 두목 산사르 찬드가 대표적 사례다.


산사르 찬드는 인도 야생동물 거래량의 반을 장악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인도 최악의 밀렵꾼'이라고 불릴 정도다. 산사르 찬드는 16세에 처음 체포되었다. 현재 나이는 55세로 야생동물 관련 재판 기록만 57건이며, 그가 이끄는 밀렵조직원은 사리스카 밀렵에도 관련되어 있었다. 2006년 인도 중앙 수사국에서 심문을 받고 산사르는 네팔과 티베트에 있는 거래처 4곳에 호랑이 470마리를 팔아넘겼다고 자백했다. 산사르는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 계좌조차 없는데도 2010년에는 델리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을 비롯해 부동산 45군데를 소유하고 있었다. -275p


약자를 위해 싸우는 다른 많은 전선과 마찬가지로 호랑이 보호 운동가들이 처한 현실 역시 녹록치 않다. 법은 멀리 있고 자주 부당하게 적용되며 정의는 흐릿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생태학자 리드 노스의 다음과 같은 말이 호랑이여 영원하라 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환경보호운동가, 생물학자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경제학자, 개발업자, 산업주의자, 벌목 회사 간부, 축산업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만 커질 겁니다. 이들 중 누가 생물의 다양성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호랑이는 지난 100년 전 아시아 지역에 10만마리 정도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야생상태에서 살고 있는 호랑이는 3900마리 정도다. 호랑이여 영원하라 사업은 향후 10년 간 개체수를 5000마리 이상 증가시키는 걸 목적하고 있다. 이 책 <호랑이여 영원하라>는 이 사업을 알리고 후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 호랑이여 영원하라 야생상태의 호랑이를 안전하게 찍기 위한 카메라트랩을 설치하는 고양잇과 전문가 앨런 라비노비츠ⓒ 앨런 라비노비츠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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