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비채택, 11월 6일 열린음악회 1404회
가족들과 모여앉아 저녁을 먹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TV에서 나오는 노랫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쾌지나 칭칭나네 쾌지나 칭칭나네” 유명한 국악인 남상일 씨가 흰 옷을 입고 나와 목청껏 소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절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신이 난 노랫가락 뒤로 국악밴드 이드 멤버들이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밝게 웃으며 공연하는 이들 앞에서 관객들은 두 팔 벌려 호응을 했습니다.
6일 저녁 6시30분께, KBS 열린음악회 생방송이었습니다.
‘뭐지?’하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요 며칠 TV며 라디오, 신문을 가득 채운 건 이태원 참사이지 않았습니까. 민간인들의 죽음에는 이례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나서 국가애도기간이란 생소한 애도를 진행한 게 바로 얼마 전까지의 일이 아닙니까. 그 동안 음악가들이며 온갖 공연예술가들의 일상이 일시정지 되지 않았습니까.
나랏돈으로 지불되는 행사가 죄다 취소된 탓에 이들의 벌이도 똑 하니 끊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안 된 일이니까 하고 제가 아는 가난한 음악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가난한 이도 취소된 제 일을 받아들이고 강제적인 애도에 기꺼이 동참한 시기였습니다.
재난주관방송사, 공영방송 자랑하는 KBS, 이래도 되나
KBS는 공영방송이자 국가 중추의 재난주관방송사가 아니었습니까. ‘쾌지나 칭칭나네’에 이어 나오는 노랫가락들은 이민호, 하태석, 송준영 PD며 구은정, 김솔이, 김수진, 진정은 작가며 진행자인 이현주 아나운서, 출연자들, 그밖에 결정권은 없어도 발언권은 있을 방송관련 종사자들로부터 무언의 동의를 거쳤던 것이었는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가호는 무엇이 그리 아름다운지 ‘Beautiful Night’을 노래했습니다. 놀 줄 아는 멋진 밴드 크라잉넛은 마땅히 열린음악회의 엔딩을 장식할 만한 밴드이지만 오늘만큼은 반길 수가 없었습니다. “신나게 놀아보자”고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오늘만큼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보다도 유독 신났던 열린음악회의 선곡들, 그 중에서도 대미를 장식한 이들의 흥겨움을 제 무딘 감성은 좀처럼 따라잡질 못했습니다. 세상일에 무딘 제 어머니조차 “오늘 방송 좀 지나치네” 할 만큼 오늘의 흥겨움은 도를 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화면 아래엔 조그마한 글씨로 20대부터 50대까지의 참사 사망자 수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제작한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오늘 밤이 쾌지나 칭칭납니까. “쾌재다,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물러가는 구나”해서 ‘쾌지나 칭칭나네’라고 전해져 온 노래가 아닙니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유래가 사실이 아니고 ‘강강술래’처럼 전통놀이에 민족적 자긍심을 덧붙인 것이라 풀어 설명했으나, 이 노래가 지극히 씩씩하고 즐거운 것이란 걸 부인하진 않았습니다. 연구원 설명에 따르면 ‘쾌지나 칭칭’은 ‘하늘에는 별도 총총’의 뒤에 따라 붙는 후렴구라 했습니다.
별이 총총 난 맑은 하늘에나 맞춰 부를 노래를 온 나라가 근심하는 지금 공영방송 황금시간대에 부르는 것이 맞는 일입니까.
지금 이 순간 '쾌지나 칭칭'나는 건 누구인가
분향소엔 여적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례는 끝났지만 국가가 막무가내로 지정한 애도기간이 종료됐다지만 그래서 슬픔이며 애도조차 멈추어야 하는 겁니까. 쾌지나 칭칭나네 하며 일어서 춤을 추어야 하는 겁니까. 온 나라가 미쳐서 돌아가는 듯한 이 방송을 보며, 정말 이상한 게 이상하게 여기는 나인지, 이 방송을 내보내는 공영방송인지, 애도기간을 지정하고 끝낸 뒤 치워버리는 나라인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KBS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참사 이전에 한 번이라도 이태원의 안전문제를 깊이 제기한 적이 있습니까. 이미 일어난 비판에 숟가락만 얹는 정도의 중계보도와 외신의 뒤꿈치도 따르지 못하는 수준의 저널리즘을 수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애도기간이 끝났으니 즐기고 놀면 그뿐이라는 태도까지 보이는 모습에 시청자인 저는 배신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가는 제 수신료가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모두가 애도를 해야 한다며 정해진 축제며 공연을 취소해버리던 지방정부 및 공공기관들의 모습과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흥겹고 놀고 즐기자고 외치는 공영방송 사이에서 무력한 저는 무엇이 인간이 따라야 할 도리인지를 잊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웃고 즐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공영방송이고 재난주관방송사며 국민들로부터 수신료를 받아가면서도 매번 부족하다 외치는 방송국이라면 책임과 품격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 뿐입니다. KBS 덕분에 저는 앞으로 '쾌지나 칭칭나네'하는 노랫가락 조차 마음 편히 듣지를 못할 것만 같습니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