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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Nov 21. 2022

이보다 쉬운 경제학 책은 찾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 게재,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30]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


경제만큼 가까이 있지만 멀게 느껴지는 단어가 또 있을까. 금리가 어떻고 환율이 어떻고 하는 뉴스를 보아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경제학 서적이란 대체로 두껍고 불친절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책을 집어 들었다 해도 내용이 어려워 끝까지 읽기가 어렵다. 애써 읽어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심지어는 내가 읽은 책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이 끊이지 않고 출판되기까지! 이쯤되면 당연한 의문이 든다. 대체 이놈의 경제학은 어디서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거지?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딱 맞는 책을 한 권 소개한다. 한 뼘 남짓한 크기에 두께는 백 페이지를 조금 넘는, 경제학 전반을 다룬 책으로는 짝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다.


벌써부터 혹하면 곤란하다. 파리8대학 유럽연구소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저명한 학자 질 라보가 지난 300여 년 동안 경제학 담론을 지배한 네 가지 흐름을 친절하고 쉽게 정리해 담았다.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라는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 경제를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의 특징을 설명하고 차이를 드러낸다. 간결한 문장과 쉬운 단어, 적절한 예시의 사용으로 경제학에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완독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다.

             

▲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 책 표지ⓒ 서해문집


책은 크게 네 개 장으로 구성됐다. 애덤 스미스부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칼 마르크스, 칼 폴라니로 대표되는 경제학의 네 가지 주요 관점이 각기 하나의 장을 채웠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경제를 시장으로 바라본 애덤 스미스와 순환으로 이해한 케인스,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살핀 마르크스와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출발한 폴라니의 관점을 설명하고 그로부터 불거진 차이를 서술한다.


저자는 경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을 '표상'이라 정의하고, 그에 따라 경제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책은 이들 중 어느 한 표상에 우위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 표상의 시각과 한계를 서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게끔 돕는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마음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이기심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 애덤 스미스, 1776년


첫 장에선 현대 경제학의 근간이 된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론이 소개된다.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표상으로 어떠한 규제도 없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그 자체가 최상의 경제를 만든다는 시각이다.


이 표상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격은 상황에 따라 변동하며, 스스로 모든 불균형을 해소한다고 본다. 이 표상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이들은 국가가 자유로운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조치에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모든 개입은 가격의 자유를 왜곡해 결과적으로 시장실패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에 있다. 소비자는 상품을 사기 전엔 품질을 알 수 없고, 모든 경쟁제품을 상품구입 이전에 비교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시장은 가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 판매자의 담합행위에 무능력하고 공급량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재해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없다. 투기가 유발하는 시장실패나 실업문제도 자유주의 경제학의 오랜 골칫거리다.


두 번째 표상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시각이다. 그는 자유주의 경제학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개입해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거래'의 단계에 멈춰 있던 경제학에 '순환'이라는 표상을 새로이 제시했고, 그로부터 대공황의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그에게 있어 경제는 재화가 순환됨으로써 유지되고 확장된다. 이런 순환이 막혔을 때 실업이 발생하고 기업이 도산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자본을 투입해 순환을 도와야 한다. 이 같은 시각에 입각해 연구를 거듭하던 케인스는 국가의 투자가 시장에 투입한 재화를 훌쩍 뛰어넘는 이익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일명 승수효과다.

 

시장경제에서 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던 케인스는 매우 중요한 발견을 했다. 정부가 경제에 투자한 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지출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케인스는 공공투자의 '승수'효과를 밝혀냈다. 1유로를 지출했을 때 국가 생산은 2유로, 3유로 혹은 5유로까지 늘어난다. 이 현상은 돈의 순환으로 설명될 수 있다. 국가가 1000만 유로를 들여 대학을 설립하면 건설 현장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기업의 수입이 즉각적으로 1000만 유로 증가한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노동자가 벌어들인 소득을 지출해서 식당이나 상점의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상점 주인은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원자재를 더 많이 구매하며, 시설을 더 넓힐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돈이 다시 순환하고, 그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 본문 55p


승수효과를 고려하면 국가의 개입은 실업을 비롯한 시장실패에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과 주요 국가들은 케인스가 제시한 표상을 받아들였다. 중앙은행이 금리와 환율을 조절하고 부유층에게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며 때로는 직접 투자도 마다치 않는다. 국내 기업을 지원하고자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고 수출기업에 각종 세제혜택을 주기도 한다.


물론 순환이란 표상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세수가 국가의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며, 국가의 지출이 돈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필수적인 증세조치는 거의 언제나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다음은 칼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나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달리 부가 폭력에서 나온다고 이해했다. 자유로운 거래에서 형성되는 잉여자본이 경제발전을 이끈다고 생각한 이들에겐 충격적인 시각이었으나 문자 그대로 착취당하던 노동자에겐 대단한 파급력을 불러 일으켰다.


마르크스는 대부분의 거래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다고 보았다. 그는 영국의 산업혁명은 농지에서 쫓겨나 도시에서 노동력을 팔아야 했던 빈농과 세계 곳곳의 식민지에 대한 착취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교역 역시 평등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누군가에겐 늘 부당한 거래가 강요된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스르며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낳는 상황까지도 방치한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분업화될 수밖에 없는 노동이 노동자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킨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한다.


마르크스의 표상을 받아들인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국가의 개입으로도 고쳐질 수 없는 체제라고 주장한다. 규제완화가 불러온 투기열풍이 거품을 키우고 마침내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 일이 반복되며, 실업은 단일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문제로 불거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란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마르크스의 표상은 여전히 돌아볼 가치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 착취가 자본주의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은 이윤(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 불렀다)을 낼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일 원천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해야만 이윤을 낼 수 있다. 기계, 원자재, 토지로는 부족하다.
- 본문 79p


마지막 표상은 칼 폴라니의 것이다. 칼 폴라니는 시장이 경제의 중심이 되는 상황이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임을 역설한다. 그는 시장은 비양심적이고 맹목적인 경향이 있으므로 인간과 자연의 운명을 시장에 전적으로 내맡기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칼 폴라니의 표상은 경제의 중심에 자연과 인간을 놓아두는 것으로, 이를 파괴하며 스스로를 지탱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반기를 든다.

 

스스로 조절하는 시장은 순수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다. 그런 시장은 한 사회의 인간과 자연을 쓰러뜨리지 않고는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을 파괴하고 그의 주변을 사막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 1944년


칼 폴라니의 표상을 따르는 이들은 실업과 가난 등 당면한 문제의 해답으로 성장을 꺼내드는 학자와 정부를 거세게 비판한다. 지속적이며 영원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 뿐더러 환경오염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인의 파괴, 불필요한 제품 생산, 지나친 광고소비 등의 문제점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식량, 기후 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성장일변도의 기존 체제를 유지할 경우 문명의 지속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칼 폴라니의 표상이 내놓은 경고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진 칼 폴라니의 표상은 오늘에 이르러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실패는 폴라니의 경고에 힘을 싣는다. 공유경제, 사회적 일자리 창출,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도농복합도시 등 지속가능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책은 위 네 가지 표상을 통해 경제를 대하는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드러낸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경제라는 거대하고 모호한 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시선이 각자가 이들 표상을 받아들인 정도에 따라서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위 네 가지 표상을 하나씩 설명하고 각각이 처한 현실과 한계를 드러낸다. 책의 의미심장한 배치에서 느껴지듯 질 라보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그 위에 국가의 개입이 이뤄지는 현재의 체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시킨 칼 폴라니의 표상을 통해 오직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 너머에 인간과 자연을 중심에 두는 다른 방식의 경제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다. 당신이 받아들인 표상이 곧 경제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이 될 것이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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