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로필

단상

by 김성호

논문기사를 쓰다보니 학력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오는 이가 많다. 달을 가리키면 달은 아니라도 하늘쯤은 봐줘야지 어째서 달 가리킨 손가락 길이부터 따지고 드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손가락이 좀 매력적이란 거지. 자꾸 관심을 가지니 누구나 볼 수 있게 기자페이지 프로필에 추가해뒀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오션폴리텍 항해과라고.


항해는 글과 관계가 깊다. 전설적인 기자 리영희 선생님께서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하고 군생활을 거쳐 기자로 일하셨다. 언론계에 몸담고 수년이 지나도록 존경할 기자 하나 만나지 못하고 헤매던 나는 배 위에서 리영희 선생과 처음 만났다. 리 선생이 한길문학 1990년 5월호에 발표한 '이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이란 글은 한동안 선실 벽면에 붙어 있다가 지금은 내 서재 한 켠에 내걸려 있다. 그 곁엔 내가 써낸 하자 있는 평론과 기사들이 함께 걸려있는데, 가끔 나는 내가 썼던 졸문들과 리 선생의 글을 번갈아 읽어보며 내 글이 얼마나 더 나아져야 하는지를 가늠해보곤 하는 것이다.


하찮다 시시하다 무시하던 일이 전력을 다해도 감히 감당키 어려운 무게가 된 데는 리 선생의 영향이 크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한국 기자이자 글쟁이인데, 내가 그처럼 항해과를 나왔다는 걸 자랑하지 않기란 몹시 어렵다.


글을 쓴다는 건 제가 지닌 사상과 가치관을 밖으로 표출하는 일이다. 사실을 확인하고 팩트로 말하는 게 기자의 업이라지만 제 색깔이 묻어나지 않는 취재만 하고 기사를 쓴다면 창피해야 마땅하다.


취재와 기사는 주체를 반영한다. 어떤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답을 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가 모두 기자의 선택이다. 다른 사고를 해야 다른 취재를 할 수 있고, 다른 삶을 살아야 다른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바다로 나간 뒤 더 멋진 인간이 된 글쟁이 몇을 알고 있는데, 내게 오폴 항해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단 걸 알고부턴 그들의 뒤를 따르길 갈망하였다.


왜 아니겠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정복할 수 없는 바다를 불안 속에서 항해하며, 목표를 잃지 않으려 거듭 자기를 돌아보고, 커다란 자연과 마주해 자신의 작음을 매일 깨닫는 과정들이 가장 나약한 작자마저도 제법 쓸만한 인간으로 뒤바꿔놓고야 마는 것이다.


기자는 열린 인간이어야 한다. 어제 옳았던 것이 오늘은 아닐 수 있고, 오늘 틀린 것이 내일 맞을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닫힌 세계에선 법칙이라 불리던 것이 열린 조건에선 너무나 쉽게 뒤집힌다. 기자라면 그 모든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냉철하게 시비경중을 판단하는 자질을 갈고 닦아야 한다. 인간을 초라하게 만드는 바다에서 오직 제가 배운 지식에만 의지해가며 시시각각 닥쳐오는 오만가지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항해사의 태도야말로 기자가 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이 들어 새로운 세계에 입문해 하늘과 물표, 각종 장비로 항해하는 법을 익혔다. 각 나라의 법령과 국경을 넘어선 곳에서 적용되는 규칙들, 그 규칙조차 통하지 않는 상황들을 직접 겪어내며, 낯선 세계에 익숙해져야했다. 그 과정은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끔 이끌었다. 넓은 바다로 나아가 귀한 배움을 얻을 자격을 주었으니 오폴 항해과를 최종학력으로 적어두는 건 자랑스런 일이다.


깔짝 공부하고 배움 없이 대충대충 다니다가 졸업장만 챙겨 나온 첫 학위에 비하자면 입학부터 학과생활, 졸업과 승선까지의 과정도 훨씬 더 험난하였다. 그 과정을 스스로 선택했고 끝내 낙오되지 않고 마쳤단 건 나라는 인간이 누구인지를 증명한다.


자, 이제 설명이 되었는가.



2021. 4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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