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전진하는 이유

단상

by 김성호

꽤 인지도가 있는 취재원과 만난 자리에서 "요즘 회사가 황색언론으로 가느냐"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연해졌다.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졌으나 신뢰가 쌓인 사이였기에 애써 표정을 감추고 "무슨 말씀이세요"하고 물었다. 그러니 관련기사 얘기가 돌아왔다.


말인즉슨 내 기사를 틈틈이 찾아 읽는데 몇달 전부터 네이버 기사 하단에 나오는 관련기사가 민망한 수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이 얘기구나' 싶어 답답하였다.


기사 하단에 다섯 꼭지씩 걸리는 관련기사는 기자가 아니라 회사가 결정한다. 지난해 12월 15일까지는 기자가 직접 선정해 관심 있는 기사를 노출할 수 있었지만 회사가 그 권한을 가져가버렸다. 선정된 기사 제목과 수준이 모두 낯뜨거워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참이다.


어디 스트레스뿐인가. 파이낸셜뉴스라는 조직의 명예가 실추되고, 일선에서 일하는 기자들의 자긍심이 박살나는 일이다.


아무리 클릭이 돈이 된다지만 팔아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백이 훌쩍 넘는 기자 가운데 불편을 감수하고 관련기사를 선정해 넣던 기자가 열이 채 못되었다. 그들 같은 기자가 더 나오도록 문화를 바꾸고 분위기를 쇄신하진 못할 망정, 그런 기자들의 기사에까지 수준이하 기사를 얹어 몇푼 더 버는 것이 과연 이득이 되는 일인가 싶다.


타사 관련기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우리만한 곳이 없다. 파이낸셜뉴스의 이름을 나부끼며 자랑스럽게 일해온 내가 누구보다 가슴이 아프고 낯이 뜨겁다.


이제는 기사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민다. 기분이 더러워서 나조차 내 기사를 보지 않는 형편인데, 면전에 대고 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계속 나타나 잊고 살기도 어렵다. 좋은 독자일수록, 신뢰하는 취재원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럴 때면 한없이 무력해지는 느낌이다.


조직이 잘못 가는데 속으로 욕이나 하는 건 남아의 자세도, 기자의 자세도, 회사원의 자세도 아니다. 그리하여 가능한 모든 통로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기자협회와 노조, 신뢰하는 선배들에게 요구하고, 사내게시판에 실명으로 글까지 썼다. 그러나 넉달 째 바뀐 건 없다.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이도,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이도 없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몹시도 실망스럽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할 부분도 있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는 건 그만큼 내 기사를 열심히 찾아보는 독자가 있다는 뜻이다. 다음엔 여전히 내가 고른 관련기사가 노출되고 있는데, 네이버로 내 기사를 보는 건 아예 내가 쓴 기사만 모아놓은 기자페이지에서 기사를 찾아보기 때문이란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일인지.


아주 적은 수이지만 관련기사를 써 넣는 기자도 있다. 나는 그런 기자의 수만큼 이 회사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쓴 기사 아래 저질기사가 주렁주렁 달리는 현실조차 바꾸지 못하는 신세지만, 그래서 더욱 멀리 전진해야 한다. 내걸린 저질기사로 실추된 명예와 자긍심을 회복할 길은 더 나은 취재와 기사뿐이기 때문이다.



2021. 4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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