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 복직도 됐고 소송도 이겼고 문제됐던 일들 모두 잘 정리되었다고. 신경써줘 고맙다며 한 번 보자는 말씀, 듣는 내내 마음이 즐거웠다. 어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요즘, 좀처럼 만나보기 힘들었던 승리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엉망진창이었다. 넓게 펼쳐둔 전선 하나하나가 모두 다 부서졌다. 사실 따져보면 내 전선도 아니었으나, 마땅히 돼야 할 것들이 짓밟히고 망가지고 무시받다 버려졌다. 꼬일대로 꼬인 내 삶을 짊어지고 남들의 문제 한 가운데로 들어가 그야말로 좌충우돌, 2년을 보내었다.
수술실CCTV 문제는 그중 관심이 컸던 분야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연달아 발의되고도 한 차례 논의 없이 폐기된 법안이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두 개나 나왔다.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논의됐고, 이번주 또 한 번 논의를 앞두고 있다.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회 보건복지위 가장 뜨거운 현안이라 말하는데,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어쩌면 통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술실CCTV법은 마취돼 수술을 받는 환자가 원할 경우 수술장면을 녹화해 두게끔 법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수술실CCTV가 없는 곳이 수두룩하고, 있더라도 병원이 내줄 의무가 없어 크고작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유령수술과 성추행 등 의료범죄뿐 아니라 의료소송에서 의료진 과실을 따지는데도 객관적 증거인 CCTV 영상이 큰 도움이 된다. 의료사고 취재 때마다 수사기관 관계자와 환자 유가족들이 의료진의 증거인멸 시도를 개탄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았는데, 수술실CCTV가 있다면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수술실CCTV가 모든 면에서 옳다고는 할 수 없겠다. 다만 잦아들 줄 모르는 의료범죄와 갈수록 자본에 잠식되어가는 의료환경, 일부 의료범죄자의 몰상식한 태도들을 볼 때 수술실CCTV와 같은 적극적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란 걸 부인할 수 없다.
득을 보는 이는 많고 해를 입는 이는 적다. 심지어 득은 중하고 해는 득에 비해 무척이나 가볍다. 국민 여론 역시 수술실CCTV법에 우호적이다. 뜻과 표가 모두 한 곳을 가리키는데 고작 한 줌 기득권의 반대 앞에 고꾸라질 이유가 없다.
환자 몰래 집도의를 바꾸고, 마취된 환자를 겁탈하고 조롱하며, 명백한 잘못을 은폐하는 의사들이 거듭 적발된다. 어쩌다 제 몫을 하는 드문 언론인이 있어 그들의 잘못을 추적해 보도해도 밖으로는 소송 압박을, 안으로는 온갖 질책을 감수해야 하기 십상이다. 전문가 집단인 의료인을 상대로 객관적 증거조차 불충분한 상태에서 고발기사를 써낼 수 있는 기자와 언론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의료는 합리적 의심이란 말도 성립하기가 어려운 분야다.
하지만 수술실 안에 CCTV가 있다면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감시 없는 권력은 썩게 마련이다. 그럼에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건 권력 그 자체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수술실 안 권력도 다를 바 없다. 수술실CCTV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실은 그 법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인 것이다.
가끔은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에 움추러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수확에 대한 기대 없이 씨를 뿌리던 어느 농부와, 승리에 대한 확신 없이 전장에 나서던 어떤 군인을 생각한다. 오직 돼야 할 것은 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길을 나섰던 그들은 얼마나 멋있었던가.
수술실CCTV 법제화에 큰 힘을 싣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일을 추진하다보면 수술실CCTV 설치처럼 높고 두터운 기득권의 벽을 만나기도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며 “기득권에 굴복하면 변화는 요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칠 때마다 되새겨봄직한 문장이다.
그간 취재한 모든 내용을 낱낱이 기사화하지 않는 건 내가 아직 한국 국회와 의료계, 수사기관과 공직자들에게 최소한의 기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부디 이 기대가 꺾이지 않기를, 마땅히 이겨야 할 이들이 승리하고, 돼야하는 과업이 완수될 수 있기를!
2021. 4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