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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Mar 22. 2023

'버드맨' 날아오른 아카데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마이뉴스 게재,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야기

[김성호의 씨네만세 37]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레이디 가가의 헌정공연 눈길


▲ 버드맨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야말로 날아오른 <버드맨> ⓒ 버드맨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이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참신한 스타일로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평단과 관객까지를 거침없이 풍자한 이 도발적인 작품은 작품, 감독, 촬영, 각본의 주요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장장 4시간에 걸친 시상식의 주역이 되었다.


배우 마이클 키튼과 에드워드 노튼은 각기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과 <위플래쉬>의 J. K. 시몬스에 밀려 후보지명에 그쳤지만 2014년 최고의 작품에 기여했다는 기쁨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만족감을 전해줄 것이다.


<버드맨> 이외에 두각을 나타낸 작품으로는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위플래쉬>를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시상식 전부터 미술 관련 부문의 강력한 후보로 손꼽혔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후보지명된 9개 부문 가운데 미술, 의상, 분장, 음악의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해당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취를 보인 작품임을 인정받았다.


한편에선 신예감독 다미엔 차젤레의 <위플래쉬>가 남우조연, 편집, 음향상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3년 선댄스 영화제 단편부문에 출품되어 심사위원상을 받은 동명작품을 토대로 제작된 이 영화는 규모있는 후보들을 밀어내고 세 부문에서 수상하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수확했다. 오는 3월 12일 한국 개봉을 앞둔 이 영화가, 지난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그러했듯, 오스카발 바람을 타고 흥행몰이를 할 수 있을지 영화팬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영화인의 축제

  

▲ 에디 레드메인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디 레드메인 ⓒ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아카데미상은 미국의 영화산업 관계자와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MPAS)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할리우드의 자본력이 세계 영화시장을 압도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부터는 칸·베를린·베니스 등 유럽 유수의 영화제를 능가하는 국제적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영화인에게 아카데미 수상의 의미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별도의 상금도 주어지지 않는 34cm 높이의 금장 인간입상일 뿐이지만 오스카를 거머쥐는 것은 영화인으로서 최대의 영예로까지 여겨진다.


2015년 제87회까지 이어오는 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은 참 많은 화제를 뿌리며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왔다. 수많은 스타를 더욱 빛내주었고 다양한 기술부문 시상을 통해 상대적으로 소외받아왔던 기술인을 자극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편견과 뿌리깊은 인종 차별, 베트남·이라크 전쟁 등 사회·정치적 화두를 끊임없이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리틀 피더의 대리수상 사건이 유명하다.


1973년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말론 브란도는 북미 원주민 인권운동가 리틀 피더를 통해 오스카 트로피를 대리수상했다. 그녀는 원주민 전통복장으로 시상식장에 나타나 원주민에 대해 왜곡된 묘사를 자행해온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비판했는데 현장은 이를 불편하게 여긴 영화관계자들의 야유로 가득찼다. 한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대리수상이 금지되었음은 물론이다.


유난히 오스카와 인연이 없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알 파치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의 도전도 화제를 모았다. 이들에 대한 아카데미의 외면은 상업적으로 지나치게 성공한 영화인에 대한 질투, 뉴욕 영화판에 대한 할리우드의 견제, 시상식 보이콧에 대한 응징 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기도 했다.


4전5기 끝에 오스카를 거머쥔 줄리안 무어

  

▲ 줄리앤 무어 <스틸 앨리스>로 4전5기 끝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앤 무어 ⓒ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1981년생 젊은 작가 그레이엄 무어가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각색상을 차지하며 또 하나의 성공드라마를 써내려갔다. 또, <부기나이트> <애수> <파 프롬 헤븐> <디 아워스>로 네 번이나 연기상 후보로 지명된 바 있는 줄리안 무어는 <스틸 앨리스>로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드디어'라는 단어가 절로 나오는 그녀의 수상은 마리옹 꼬띠아르, 로자먼드 파이크, 펠리시티 존스, 리즈 위더스푼 등 그 어느 때보다 쟁쟁한 후보들과의 경쟁 끝에 얻어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4전5기의 줄리안 무어는 먼저 있었던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미국 배우 조합상(SAG) 등 권위있는 시상식을 싹쓸이하며 오스카 수상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에서 광기어린 연기를 펼친 로자먼드 파이크와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현실적인 연기로 호평받은 마리옹 꼬띠아르의 존재는 줄리안 무어를 끝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여우주연상 못지 않게 치열했던 남우주연상 부문에선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이 활짝 웃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언어학자를 연기한 줄리안 무어와 루게릭병(ALS)으로 고통받는 물리학자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주연상 수상은 지난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앓는 실존인물을 연기한 매튜 매커너히의 남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로도 해석된다.


이에 앞서 제62회에서는 뇌성마비로 왼발을 제외하고 몸의 모든 부분이 마비된 크리스티 브라운을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제66회에선 에이즈 환자를 연기한 톰 행크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다. 특히 이번 남우주연상은 장애와 싸우는 인물을 연기한 영국배우의 수상이라는 점에서 제62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연상케 했다.


기대를 모았던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이 수상에 실패한 것을 두고서는 2009년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비교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 대신 <밀크>의 숀 펜에게 오스카를 준 것처럼 잊혀졌던 배우 마이클 키튼이 밀려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물 간 배우, 코미디언이나 액션스타에 엄격한 아카데미의 보수적 잣대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이와 같은 해석에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 J. K. 시몬스 <위플레쉬>를 통해 오스카 조연상을 거머쥔 J. K. 시몬스 ⓒ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조연상에선 이변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예측했던 것처럼 남우조연상은 <위플래쉬>의 J. K. 시몬스, 여우조연상은 <보이후드>의 패트리샤 아퀘트가 차지했다. 남우조연상 후보 가운데서는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이 다크호스였으나 2014년도 최고의 악역으로 꼽힌 J. K. 시몬스의 존재감이 독보적이었다는 평가다. 지난 80회부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다크나이트>의 히스 레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크리스토프 발츠가 연속 수상한 것에서 보듯 상대적으로 악역에게 관대한 아카데미의 취향도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버드맨>과 함께 9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보이후드>는 여우조연상 수상에 그치며 입맛만 다셨다. 무려 12년의 시간 동안 주인공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 이 독특한 영화는 시도의 참신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특별히 좋은 작품들이 많았던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녀의 양육과 개인적 삶을 오가며 치열하게 살아간 엄마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연기한 패트리샤 아퀘트 만큼은 무난히 조연상을 얻어냈다. 장성한 자녀의 독립을 마주하고 상실감에 차마 어찌할 줄 몰랐던 그녀의 연기를 본 사람이라면 이 수상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 패트리샤 아퀘트 <보이후드>가 배출한 유일한 수상자, 여우조연상 패트리샤 아퀘트 ⓒ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잊을 수 없는 헌정공연, 레이디 가가의 <사운드 오브 뮤직> 메들리


총 24개 부문에 걸쳐 진행된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그 유명한 메들리를 멋드러지게 소화한 레이디 가가의 퍼포먼스다. 순백의 드레스와 풍성한 머리모양으로 멋을 낸 레이디 가가는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으로 50년 전 줄리 앤드류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매혹적인 공연을 완성했다.


기행에 가까운 패션과 발언으로 논란을 몰고 다니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줄리 앤드류스에 대한 헌정 공연을 멋드러지게 완수한 순간은 좀처럼 잊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양 팔뚝과 손목, 등과 어깨에 새겨진 문신이 순백의 드레스와 기묘한 조화를 이뤘는데 기립한 청중들과 열창하는 가수, 헌정을 받는 전대의 스타가 이룩한 조화 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이 공연의 끝에서 이어진 줄리 앤드류스와 레이디 가가의 포옹은 지난 50년간 미국 문화계가 이룩한 성장이 얼마만큼 깊고 넓은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밖에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아시아에서 크게 흥행한 <인터스텔라>는 시각효과상을 받았고, 주제가상은 <셀마>의 'Glory', 외국어영화상은 <이다>가 차지했다. <빅 히어로>와 <드래곤 길들이기2>의 2파전이었던 장편애니메이션상은 디즈니의 승리로 끝났고, 로라 포이트러스의 <시티즌포>가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예상 외의 흥행으로 여러 부문에서 수상가능성이 점쳐졌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변을 일으키지 못하고 음향편집상 한 개 부문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번 시상식은 CJ E&M과 CJ CGV를 통해 한국 영화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CJ그룹의 영화전문방송 채널CGV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 정지영 전 SBS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생방송되었다. 이동진 평론가는 CJ CGV의 '이동진의 라이브톡', CJ 헬로비전의 '이동진의 영화추천' 등을 통해 CJ와 인연을 맺어왔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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