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와 사회는 제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어떤 사건은 들추어 강조하고 어느 사건은 애써서 외면한다. 대체로 주목받는 역사는 자랑스러운 것이다. 번성한 문명, 승리한 전쟁, 성공한 혁명 따위다.
과거며 기억은 정원과도 같아 관심을 가지고 돌볼 때 비로소 가치를 발한다. 언급되지 않는 과거는 물주지 않은 꽃나무처럼 조금씩 비루해지다가 마침내는 사라지고 만다. 오직 기록되고 회자되는 역사만이 시간의 심판을 가로질러 생존할 수 있다.
요컨대 자랑스럽지 않은 과거는 기록되지 않음으로써 소멸한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다.
한반도 남쪽에 터를 잡고 한국말과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며 한국 국적을 보유한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바다는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가. 십중팔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순신이며, 다음이래야 장보고의 청해진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데다 에너지 수입이 필수적인 국가이며, 왕성한 수입수출로 먹고 사는 해운강국이기도 한 한국이 바다를 기억하는 방식이 고작 이와 같다.
우리가 바다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단편적이며 일시적인 사건으로만 바다를 기억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바다가 우리에게 자랑스러웠던 기간이 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반도가 자랑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밖에서 유래하지 않은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벼농사며 소주 증류술 역시 바닷길을 통해 남방에서 전래됐다. 최소한 양자강 이남에서 전해온 것으로 보이는 볍씨화석들은 선사시대부터 이미 바닷길을 통한 교역과 이주가 이뤄졌음을 증명한다.
한반도 바다의 첫 전성기는 언제인가. 전성기니만큼 역사가들은 그 시대를 분명히 기록하여 두고두고 새기게 하였다. 통일신라가 서서히 저물고 있던 9세기 초 한 걸물이 반도 서남해 바다를 장악했다. 완도 청해진을 근거로 1만이 넘는 병력을 운용한 장보고다. 그의 등장 이후 왕성하던 해적활동과 노예매매가 근절됐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는 북으로는 산둥반도, 서로는 해주와 양주에서 활동하는 재당신라인들까지 규합하며 당대 동아시아 바다를 발해인과 나누었다.
장보고 암살 뒤 반도의 바다가 주목받은 건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개경 벽란도를 중심으로 무역에 나선 고려는 역시 해운이 번성했던 송과의 교역에 적극 나섰다. 멀리서는 서아시아 대식국부터 인도와 태국, 베트남 지역 국가와도 교역이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인재를 등용했던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과거제가 치러진 것도 교역 덕분이다. 산둥반도에서 건너온 쌍기가 고려에서 병을 얻어 머물다가 고려왕 광종의 눈에 들며 과거제 도입을 건의한 것이다.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지만 그조차 하지 않았다면 고려의 수명은 훨씬 더 짧아졌을 게 분명하다.
벽란도 이후 한반도에서 바다의 역사는 황폐한 수준으로 몰락한다. 정화의 원정 이후 항구를 꽁꽁 닫아버린 명나라를 따라 조선 역시 바다를 없는 거나 다름없이 취급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항만을 폐쇄하고 바닷일 하는 이를 천대했으니 그 결말이 어땠을지는 자명하다. 조선의 해양사라면 기껏해야 연해 어로행위나 난파된 외국인과 역시 난파된 조선 어민의 이야기 따위가 고작이다. 프랑스며 미국의 상선과 전함이 연근해를 오가며 측량에 나서도 할 수 있는 거라곤 육지서 포며 화살을 쏘는 게 고작이었다.
같은 시기 베트남은 계절풍을 이용해 위아래로 긴 해안을 자유자재로 오갔고 남으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를, 북으로는 중국 북경과 상해를, 동으로는 동경을 오가며 서양인과도 활발하게 접촉했으니 한반도의 역사가 크게 정체된 이유가 바다를 버린 조선의 선택에 있다.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중국은 물론 서양인들과도 교역했던 일본 역시 근대를 기점으로 조선에 크게 앞서 나갔다.
불행히도 역사는 조선의 과오를 기록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저 번성했던 신라와 고려의 바다를 기록하고, 지극히 예외적이었던 조선 바다의 영웅을 기념할 뿐이다. 조선의 바다는 기껏해야 가난한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조운선이 세곡을 실어 나르던 통로로만 기능했을 뿐이다. 이 시기 장보고와 고려인들이 그랬듯 바다로 나아가 세계와 통했다면 지금 우리의 미래가, 지난 몇 세기의 고난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가 마땅히 기록해야 할 건 바로 이와 같은 일이다.
2022. 8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