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받는 나라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by 김성호

베트남엔 증오비며 증오탑이 많다. 증오를 비와 탑으로 새겨서까지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것이다. 증오심이 얼마나 깊으면 그리 할까 싶다가도 사연을 살피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증오비와 증오탑 일부는 한국을 향한다.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학살 때문이다. 맹호부대 주둔지 뀌년에도 그런 곳이 여럿이다. 채명신 장군이 이끄는 국군 맹호부대는 이 지역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사건을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는다. 1966년 낌따이촌과 떠이빈사 고자이마을, 쯔엉탄마을 등지가 대표적인 피해지다.


낌따이촌 학살은 1966년 1월 9일 벌어진 참극이다. 이 마을에서 베트콩 병사가 쏜 총에 국군 한 명이 죽으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부대는 곧장 마을로 진입했다. 그리고는 주민들을 공터로 모이게 했다. 모인 주민 43명이 포박되어 한 가옥에 갇혔다. 군인들은 그 안에 수류탄을 까서 던졌다.


일부 주민이 목숨을 건진 덕에 진상이 드러났다고 했다. 전쟁 뒤 이곳에 집단묘지가 세워졌고 1985년엔 증오비까지 건립됐다. 한국군에 대한 원한이 그곳에 새겨졌다. 몇년 전 그 증오비가 철거되고 사당과 위령비가 새로 건립됐다고 했다. 이따금씩 찾는 이들이 있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틀에 걸쳐 낌따이촌을 찾았으나 기념관과 사당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주민에게 물어도 보았으나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나는 담장 밖에서 비석에 적힌 문자를 읽어내렸다. 비석엔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의 이름과 생년이 적혀 있었다. 참극이 있었던 1966년 기준으로, 일흔이 넘는 노인부터 세 살 아이까지 스물이 넘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일곱이나 되었다. 그들에게 수류탄을 던진 인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알 수 없는 나는 꽃이나 잔뜩 사서 여기저기 놓아두고 돌아올 뿐이다.


허탈하게 마을 입구로 돌아 나올 때 공사 중인 터에 선 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로 두 팔을 뻗고 가슴팍을 드러낸 여성과 그를 둘러싸고 엉겨 붙은 사람들의 형상이다. 앞엔 'chứng tích căm thù'라 적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증오의 증거'란 뜻이 될 거다. 이 마을의 증오는 증오비가 철거된 이후에도 서슬 퍼렇게 남아 나의 조국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왜 죽는지조차 몰랐을 이들의 죽음에 오늘의 한국이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단 사실이 무참하게 와서 닿는다. 그 앞에 흘리듯 새어나오는 핑계는 처참하기까지 하다. 결국 증오는 증오하는 이들의 것으로만 남겨졌을 뿐이다. 외면된 증오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오로지 증오를 맛본 이들만이 안다. 인간은 그렇게 불행해지는 것이다.



2022. 9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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