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한국 재난보도가 나아갈 방향

언론사 입사준비 1

by 김성호

오늘 날 언론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특히 전파성, 속보성, 광역성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방송매체들은 재난상황 발생시 막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공영방송사 KBS를 방재기관으로 지정하고 재난방송을 하도록 법제화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난 94년의 성수대교 붕괴참사부터 95년의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한 결 같았다. 원칙이 없었고 선정적이었으며 쉬이 분노하고는 빨리 잊었다. 물론 재난보도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그도 잠깐 뿐이고 곧 다음 참사가 일어날 때까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침몰참사와 관련하여 보여진 언론의 보도행태는 지난 참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첫 날 탑승자 전원구조의 오보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생존자들에게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자의 모습이 도마 위에 오르더니 크고 작은 왜곡과 조작보도가 줄을 이었다. 화면과 지면 위에는 진실과 풍문이 뒤엉켜 전해졌고 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수시로 뒤바뀌어 전달됐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죽어가는 그 절박한 시간 동안에 대한민국의 언론은 대체로 무능했고 천박했으며 비겁하였다. 그들은 진실을 전하지 않았으며 위안받아야 할 이들을 위로하지도 분노해야 할 곳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번 참사에 있어 그들은 언론이 아니었다. 세월호 침몰참사는 언론의 참사이기도 했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여준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진실을 전하는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언제나 진실을 담보해야 한다. 인터넷과 SNS의 혁신적인 발달이 정보의 전방위적이고 신속한 전달을 가능케 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언론을 찾는 이유는 언론이 다른 매체와는 달리 진실을 담보하는 매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순한 정보라 할지라도 언론의 보도과정을 거치면 대중들은 그 정보를 실체적인 진실로 받아들이기 쉽다. 따라서 언론은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을 우선적으로 판가름하고 오직 진실만을 전하려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재난상황 발생시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큰 가치는 속도가 아니다. 정확성이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빠르게 보도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에서 보여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정부가 내놓은 발표와 보도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재난보도의 관행이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확인과 검증작업 없이 이를 그대로 보도한 것은 언론의 신뢰성을 근간부터 흔드는 중대한 오점이었다.


언론이 보인 두 번째 문제는 그들이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으로 많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낳았고 간접적으로는 배를 포함해 이 나라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수많은 이들을 잠재적 피해자로 만든 초유의 사태였다. 어느 날 제주도로 가기 위해 배를 탄 수많은 사람들이 선박회사와 선장, 감독기관과 관제센터, 구조시스템 등이 총체적으로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언론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안을 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주요 언론에 의해 보도된 유가족들의 모습은 대부분 이성을 잃은 채 분노하거나 체육관에 무기력하게 쓰려져 있는 장면들 뿐이었다. 이들이 진척되지 않는 구조작업에 불만을 갖고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나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정부의 사태수습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할 때에 언론은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이번 사건에서 우리들은 모두가 유가족이었다. 죽은 것은 그들의 가족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의 부모이고 친구이며 아이이기도 했다. 죽은 이들이 오직 그들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었기에, 그들을 죽인 것이 그저 침몰한 세월호 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추악하고 비틀린 것들 때문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었기에 이 사건은 그저 그 어느 날 세월호에 올랐던 불행한 이들의 문제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러므로 언론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만 했다. 그것이 곧 우리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세 번째 문제는 그들이 분노해야 할 곳에 분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참사가 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뒤엉켜 나타난 문제임에도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청해진 해운 및 그 뒤에 있는 세력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여론재판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재해를 방지하는 국가의 시스템이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고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역시 그 무능함을 만천하에 공개한 지금 이 시점에서 언론이 몇몇 대상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주도한 것은 무책임하며 비겁한 태도였다.


언론은 일차적인 책임추궁에 앞서 인명구조상황 및 구난정보를 중심으로 보도를 진행해야 했고 몇몇에 대한 책임추궁보다는 재발방지를 위한 원인규명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중심으로 여론을 형성해 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언론이 분노해야만 했다면 그 대상은 결코 지금의 그들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참사에서 언론은 섣불리 분노하고 그 분노를 잘못된 곳에 오래 머물러 두었다. 바로 이것이 언론이 보인 세 번 째 잘못이다.


나는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언론이 보인 위 세 가지 문제점이야말로 재난보도에 있어 언론이 지켜내야 했던 원칙들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엄정한 기준 아래에서 진실을 전하는 것이다. 지난 94년 삼풍 백화점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몇몇 언론은 하루만에 두 배로 늘어난 실종자 집계를 수정발표했었다. 정부발표만 믿고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꼭 20년의 시간이 지나 세월호 참사에서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잘못된 관행이 고쳐지지 않은 것이다.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현재의 구난상황에 대한 실질적인 보도를 진행하는 것 만이 재난상황에서 진실이 담보된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길이다.


둘째는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언론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감각세포 만큼이나 쓸모없고 위험하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와 유가족들의 마음을 찢어놓는 망언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기자협회나 방송협회 차원에서 일반적인 보도준칙을 시급히 확립하고 이에 따라 개별 언론사들이 내부적인 규정을 마련하여 구성원들을 교육하는 과정이 마련된다면 건강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피해당사자와 소외받은 이들의 입장에서 위안을 줄 수 있는 보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분노해야 할 곳에만 분노하는 것이다. 일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여론재판을 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성역없이 고발하며 차후 대책을 수립하는데 일조하는 보도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모두에 앞서 구난상황과 피해복구 등에 대한 보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94년의 성수대교 붕괴참사부터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참사를 겪어왔지만 언론을 통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나 유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심지어는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이후 재난보도와 관련한 구체적 논의가 있었음에도 준칙이 마련되지 않아 또 다시 지금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일회적인 분노가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분노를 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재난보도와 관련해 우리 언론의 나아갈 방향이라 생각한다.



2014. 5. 19. 월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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